김기림金起林씨와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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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범, 장이욱, 김기림, 선우휘, 조윤제, 장만영, 김경린, 신석정, 김광균, 양병식, 이봉구,
박인환, 백 철, 박기준, 송지영, 박목월, 김용묵, 이현구, 이하윤, 서정주, 황순원, 홍효민,
조지훈, 박두진, 최태응, 조연현, 이 한, 이진섭, 김원규, 김광주 <등장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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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을 잃고 있었던 거다. 물리화학을 하겠다던 꿈은 날로 암담해지고 물리화학으로 월급을 타는 직업인으로 전락해가고 있었던 거다.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꿈의 좌절에서 실로 쓸쓸해서, 고독해서, 외로워서, 걷잡을 수 없는 낙오감에서, 그 포기에서, 시가 나오기 시작했던 거다.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 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에 굳어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에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이렇게 자기 모습이 드러났다. 「소라」라는 나의 첫 번째의 작품이다. 그냥 이렇게 나와버린 거다. 말하자면 내가 나의 모국어로 해방 후 맨 처음 쓴 시가 된다. 1946년경이다.
나는 나의 고향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에서 8세 때 그 이웃에 있는 용인군 이동면 송전공립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하고, 다음 해 9세 되던 봄 서울로 올라와 1년을 놀고 다음 해 서대문에 있는 미동 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을 했다. 이곳에 다닐 때 아동 문집에 가을이라는 글(산문)이 뽑혀서 활자화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경성사범학교 보통과 2학년 때 조선인 학생들이 모인 조선어연구회에서 일년에 한번 내는 프린트 문집 반딧불에 시 두 편을 발표한 일이 있다. 제목은 「봄」. 같은 호에 같은 학년이었던 선우휘는 「에티오피아 소년에 주는 시」라는 제목으로 매우 격렬한 뜨거운 시를 발표했었다. 그것에 비하면 나의 시 2편은 모두 매우 서정적인 아지랭이 같은 작품이었다. 이 경성사범학교 조선어연구회는 요샛말로 지도교수가 도남(陶南) 조윤제(趙潤齊) 선생이었다. 전국 방언조사 등 조선어연구회는 당시로선 대단히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