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돔의 땅, 배낭여행 1
배낭여행은 평소에 꿈꾸던 일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중에 요르단에서 비로소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 어느 청명한 날에, 여행에 필요한 침낭과 비상식량, 물과 함께 비상약 등을 배낭에 챙겨 넣고,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암만(Amman)의 압둔에 있는 집을 나섰다. 그렇게, 에돔의 땅인 도벨, 셀라, 보스라 등 2박3일간의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아침 일찍 써르비스라고 부르는 구간택시를 타고 다운타운(downtown)으로 가고 있었다. 현지인을 진솔하게 만나는 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효과적임은 이미 경험한 바다. 운전사가 말을 걸었다. 어딜 가냐 하기에 따필레를 간다 했더니, 그 동넨 왜 가요? 거기 사람들 정신없어요! 라며 겁을 준다. 정말 그럴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따필레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왼쪽의 젊은이는 전화기에 매달려 있다. 금방 탄 친구도 서먹서먹하긴 마찬가지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의 대체적인 진행방식이다. 얼마 지나자 오른 쪽 젊은이가 말을 걸어왔다. 자기는 이르비드에 사는 칼리드(26)라며 따필레 병원에 근무한다고 했다. 직장이 마음에 든단다. 가끔 한국TV를 보는데 부럽다며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요르단에서 Korea TV, KBS World나 Arirang TV 혹은 CGN 시청이 가능하다. 우리나라가 많이 알려져 있다는 데에 약간의 자부심이 생겼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버스는 1시간여를 달린 후 '술타니휴게소' 앞에서 잠시 멈췄다. 아침식사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다.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팔라펠 샌드위치'를 샀다. 다시 버스에 올라 3시간여나 달려서 타필레 종점에 내렸다. 따필레는 성경의 지명 중 하나인 도벨로 알려져 있다.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신1:1)
따필레에서 한때 십자군의 성이었다는 작은 성(城)을 찾아 나섰다. 이국땅에서 걷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다. 특히 현지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얼굴이 동양인이다. 흔히 “씨니, 씨니(Chinese)”하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마련이다. 그들은 일본, 중국, 한국 혹은 필리핀인들을 혼동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고등학생들이라고 했다. 일행이 함께 있으면 그중에 치기(稚氣)로 말을 걸어오는 녀석이 있게 마련이다. 군중의 배경을 든든하게 믿는 것이다. 요르단도 샤이(차)나 까흐와(커피)를 즐겨 마시는 문화다. 노점인 음료수가판대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젊은 상인은 반색하며 좋아한다. 도로 풍경을 스냎하며 성 근처의 도벨 철공소를 지날 때, 공장에 있던 이들이 어디서 왔냐며 호기심을 보인다.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화가다. 종이가 있으면 초상화를 그려주마!” 했더니 금방 대령이다. 주인의 얼굴을 크로키(croquis) 화법으로 재빨리 그려주었다. 현지인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요긴하게 활용하는, 주님이 주신 달란트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트고, 성(城)에 관해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의 말로는 약 4~5백년 된 오스만 터키시대의 성이라고 했다. 고맙다며 초상화를 받아든 털보, 무함마드 나지브는 대화를 마치자마자 기도하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그들과 작별하고 천천히 발을 옮겨 전망이 좋은 비탈 끝자락에 세워진 아주 작은 석조건물을 둘러보았다. 흥미가 낙엽처럼 굴러 떨어졌다. 고대로 더 거슬러 올라가야 관심이 갈 텐데, 짧은 역사와 작고 단조로운 성벽이었던 것이다.
마침, 따필레에서 봉사활동중인 코이카(KOICA)대원 김형남이 현지인과의 미팅을 마치고 찾아왔다. 이미 전화로 연락을 해 놓았던 바다. 곧바로 그의 기숙사로 가서 지도와 사진 등 가까운 지역에 관한 자료를 받은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앗쌀람 알레이꿈, 평안하십시오!”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10:11~13) 이 말씀은 배낭여행의 지침서다. 아침의 구간택시 기사 ‘아이만’의 말은 틀렸다. 따필레 사람들도 참 따뜻하고 친절했다.
다시 셀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비탈길을 내려가다 만난 셀라 유적지의 카페 주인도 무함마드였다. 재빠르게 그의 초상화를 그리며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셀라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지금부터 적어도 4,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옆에 있던 젊은이는 4,850년 전이라고 메모해 주었다. 가이드 훈련을 받은 모양이다. 무함마드의 친구가 와서 시샤(물담배)를 피운다. 그는 아흐마드라고 했다. 요르단에서 한 사람 건너면 무함마드요 또 한 사람 건너면 아흐마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유력한 가문의 이름인 셈이다. 셀라는 바위라는 의미이며 셀라지역은 매우 광범위한데, 이렇게 셀라의 유적지 한곳을 방문한 것이다.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왕하14:7)
카페 주인 무함마드가 하룻밤 자고 가라는 걸 굳이 뿌리치고 길을 나섰다. 짧은 기간에 더 많은 곳을 방문하며 사람을 사귀고 싶었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아흐마드가 승용차로 왕의 도로까지 태워주었다. 배낭에 넣고 다니는 모나미153볼펜의 유래를 소개하며 선물했다. “하딜 깔람 쑤나아 휘 꾸리야!”(이 연필은 한국제품이다.) 그는 고맙다며 백미러에 걸려 있던 묵주(마쓰바하=altar)를 걷어서 선물로 답례한다. 비취색이 영롱한 33개의 알이 박힌 묵주다. 'Give and take!' 값으로 치자면 내가 더 비싼 것을 받은 셈이다. 아흐마드와 헤어지고 왕의 도로에 올라섰다. 버스가 지나가면 손을 들어 세우려고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보스라를 향해 남쪽으로 걷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휘익 지나치던 지프차 한 대가 갑자기 후진하며 다가와 차문을 열고 타란다. 보스라에 산다는‘이싸’(Jesus)라고 했다. 그는 물과 음료수를 주면서 친절을 베푼다. 이 친절에 감동하지 않는다면 무정한 사람이겠지? 방금 선물 받은 비취색묵주를 그 차의 백미러에 걸어 주면서 “하딜 하디예 일락!”(이것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했더니, 너무나 좋아하면서 보스라의 자기 집에서 자고 가란다. 그러나 일정에 따라 그와 헤어지고 보스라의 유적지로 발길을 옮겼다. 셀라와 마찬가지로 보스라 또한 에돔의 중심도시로 알려져 있다. 한편, 선행을 통한 구원론에 의해 형성된 모슬렘의 친절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지만, 요르단 사람들의 친절에 고맙다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觀-
배낭여행: 에돔의 땅 2
낮과 밤의 경계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아랍인들은 흰색 실을 땅바닥에 놓고 색의 분별이 가능하면 낮이고, 흰색 구분이 안 될 때부터 밤이라고 한단다. 그렇다면, 보스라의 폐허나 다름없는 유적지를 기웃거리는 동안은 아직 낮이었다. 해는 막 붉은 노을을 만들며 서쪽으로 넘어가려는 때였다. 일몰(日沒)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앵글을 돌릴 때 몇몇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그들과 몇 마디 주고받으며 셔터를 눌렀다. 아이들이 외국인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나.
어둠이 내려앉는 이국의 작은 마을! 이젠 잠자리를 찾을 시간이다. 벽촌이나 다름없는 곳이어서 숙박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재워줄 곳을 찾거나, 없다면 아무데나 침낭을 펴고 하룻밤 묵을 심산이었다. 마을 끝까지 천천히 걸으며 두리번거리다가 잠시, 길가의 마지막 집 계단에 걸터앉아 따라온 아이들과 대화중에 사단(事端)이 벌어졌다. 지프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젊은이 하나가 내렸다.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갈 거냐? 몇 마디 주고받았다. “나는 다나(Dana)로 갈 계획이지만, 지금은 아무데서나 잘 거다. 숙박시설이 없다면 온 대지가 모두 나의 침대가 될 수 있다”라고 했을 때 “뭐라구? 이건 당신의 안전에 큰 문제다!”라며 그 젊은이는 큰 눈을 부릅떴다. 아랍인들의 눈은 대개 동양인 보다 큰 편이다. 그는 다나까지 태워다 준다며 지프차에 나를 밀어 넣었다.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필레의 김형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다나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다나 호텔 사장인 슐레이만과 친하다고 들었던 터였다. 다나는 요르단에서 보존하는 자연휴양림(Dana Nature Reverse)으로 이번 배낭여행의 종착지로 정한 곳이다. 다나를 향하는 길은 어둑어둑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시커먼 짐승 하나가 비탈을 내리 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에 있던 모하메드, 워터스, 아흐마드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들에서 잔다면 저런 맹수나 독사에 의해 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독사에게 몰린 사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배려로 다나호텔에 도착한 건 어둠이 내려깔린 늦은 저녁이었다. 이미 연락을 받았던지 호텔 앞에는 제복차림의 관광경찰이 나와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권을 제시하고 간단한 절차를 거쳐 7호실에 투숙했다. 하룻밤을 보내면 다나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귀가하리라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이름 모를 풀벌레가 머리맡에서 찌르찌르르 쉬지 않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만약, 계획대로 노숙을 하고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더라면 매우 힘들 뻔했다. “여호와이레!” 의도치 않았지만, 아주 쉽게 목적지까지 도착했던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자임을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을 둘러보며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외부로 나가는 교통편이 없다. 다나에서 암만으로 가는 대중교통은 새벽 6시, 한 번뿐인데 이미 떠나버렸던 것이다. 그냥 걸어 나갈 수없는 외진 곳이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좁은 지역인 다나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되었다. 보스라에서 다나까지 멀기도 했지만, 대중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던 걸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마을의 역사는 약 500년 정도 되었노라고 호텔에서 슐레이만이 설명했다. 비탈길을 따라 서쪽으로 15키로 쯤 내려가면 성서시대에 구리광산이었던 훼이난(부논)이 있다고도 했다. ‘자발 아따타’라는 깎아지른 바위산이 동쪽을 병풍처럼 둘러있는데, 마을의 부족이름도 ‘아따타부족’이라고 했다는 설명도 듣는다. 서쪽은 깊은 계곡이고, 마을의 양쪽도 역시 높은 바위산들이 호위하듯 둘러서 있다. 말하자면 천연의 요새(要塞)같은 지역이다.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문밖을 나섰다. 좁은 길은 모두 박석으로 깔았고 건축물은 모두 석조였다. 지형지세나 마을의 형태로 보면 역사가 꽤 오래 되겠다고 추측되었다.
좁은 골목길에 나귀를 탄 텁석부리 젊은이가 올라온다. 마르하바!(안녕!) 습관처럼 먼저 말을 붙인다. 그는‘칼리드 M. 알리’라 했다. 함께 따라오던 매끈한 젊은이는 할라비(시리아의 알렙포 사람)로 이름이‘술탄 S. 살라딘’으로 건축기술자라 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다나(Dana)마을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재건축(remodeling)이 한창이라고 했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후, 부논을 향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음으로는 쉽게 갈 것 같았지만, 구불거리는 비탈길을 1km쯤 내려가다가 포기하고 되돌아섰다. 나이 60이 되면 해마다 죽고, 70이 되면 달마다 죽고, 80이 되면 날마다 죽는다더니, 체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논(Punon, 민33:43)은 이제 참고서적으로나 확인해야겠다.
마을로 다시 올라와 배낭을 호텔 7호실에 재차 맡기고, 근처 구석구석을 돌아보기로 했다. 약 350여명의 주민이 살던 마을이지만, 대다수는 동편 언덕너머의 알카데시아 마을로 집단이주를 했고, 현재는 숙박업과 관련된 소수만 산다고 했다. 마을에서 동북방향으로 약 500미터 쯤 올라가면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있다. 우물은 잘 정돈돼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외지에서 들어온 승용차 몇 대가 서있고, 수로에서는 크고 작은 아이들이 물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마을의 식수와 농장의 수원지였다.
에돔의 도시인 도벨(따필레) 셀라 보스라와 다나의 도시형성 요건들을 정리해 본다. 1, 대상로(隊商路)인 ‘왕의 도로’에서 멀지 않아 접근성이 좋다. 2, 방어가 용이하다. 삼면은 깊은 계곡이어서 한 방면만 잘 지키면 된다. 3, 사철 흘러나오는 지하암반수가 풍부하다. 4, 먹을거리 공급이 가능한 배후지(농지와 목축지)가 가까이 있다.
생명수의 강(물)이란 천국의 필요조건 중 하나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계22:1~ ) 짧은 배낭여행을 통해서 요르단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얼마나 친절한지를 체험해보았다. 감사하다! -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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