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남자
제 1장,
강준세는 참으로 편안한 마음이 되어 아침에 눈을 뜬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온 것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좁은 오피스텔에서 지낸 지난 오년간이 되살아나면서 넓은 방안을 휘 둘러보는 것이다.
이 집으로 이사를 와서도 이렇게 여유롭게 한가한 시간을 가지고 방안을 둘러볼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정상궤도에 올라 사업은 앞으로 창창하게 뻗어나갈 것이다.
그동안의 모든 어려움과 시련들은 이제 옛일이 되고 앞으로 회사를 더 확장하면서 직원들도 늘려나갈 계획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는 준세의 말에 어머니는 아무런 것도 묻지 않으시고 살고 있던 집
을 팔아 선뜻 내 놓으시고 고향으로 낙향을 하신 것이다.
전 재산인 하나뿐인 크지 않은 작은 단독주택이었다.
준세는 그 돈으로 자신이 몸을 담을 작은 오피스텔을 얻고 모든 것을 투자해서 회사를 꾸민 것이다.
직원이라야 달랑 세 명 뿐인 작은 사무실을 얻어 시작을 한 광고회사였다.
젊음과 패기만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픔을 잊기 위해서 일에 몰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잊고 미친 듯이 일에 매달리고 싶었던 강준세였다.
그러나 세상일은 마음먹은 대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 년도 가지 않아 자금은 고갈이 되고 일도 들어오지 않아 몸과 함께 마음도 지쳐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배인 서정희의 힘이 없었다면 그 힘든 시간들을 견디어 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실장으로 있는 서정희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상업광고를 전공하고 졸업을 하고 나서 공개체용으로 입사한 대기업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 서정희를 데려오기까지 준세의 친구인 민석재의 힘이 컸던 것이다.
민석재는 서정희와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연인관계는 아니었다.
민석재의 약혼녀와 서정희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같은 대학을 다녔을 정도로 친한 친구였다.
민석재의 아내 이은원은 약대를 나와 현재도 자신의 약국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다.
민석재는 혼자 살아가는 정희가 생활에 팍팍하지 않아 혹여 몇 달씩이라도 밀릴 수 있는 월급만을 바라고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정희의 실력을 인정하고 정희를 포섭하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이다.
대기업에 공체로 입사를 한 정희로서는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민석재의 약혼녀 이은원의 힘이 컸다.
이은원은 자신의 약혼자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적극 돕는 성품인 것이다.
어차피 결혼을 해도 자신의 약국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두 사람의 생활을 할 수 있기에 이은원은 남자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넉넉한 성품을 타고난 여인이다.
그렇게 해서 세 사람은 똘똘 뭉쳐 작은 사무실을 얻고 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모든 자금은 강준세의 담당이고 일거리를 찾아오는 사람은 민석재 그리고 모든 일들을 맡아서 하는 서정희로 나누어 각자 열심히 뛰고 또 뛰었지만 그렇게 모든 일들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서정희는 일을 시작하자 아주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매사가 정확하고 일을 하는데 있어 빈틈이 없는 성품인 것이다.
처음 일 년 동안은 강준세가 가지고 있는 자금으로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이 들어오지 않자 자금이 고갈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 사람의 점심 식대만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지출이 된다.
일이 있건 없건 점심은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강준세는 아침에 차 한 잔만을 마시고 나가기 때문에 점심을 거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서정희는 그런 모든 사정을 알고 매일 자신이 집에서 직접 점심을 준비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 이렇게 수고를 해서 어떻게 하지?”
“대표님!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지요.
어떻게 하든 최대한 지출을 줄이고 일을 찾아 나서야 할 때입니다.
누구 눈치보고 체면을 차리고 할 때가 아니니 신경을 쓰지 마시고 어서 점심을 드시고 발로 뛰세요.“
서정희는 강준세를 꼬박 대표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준다.
“고마워!
내 반드시 서정희씨의 그런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노력을 해서 고생한 보람을 얻게 해 주겠소!“
강준세는 민석재와 발로 뛰고 또 뛴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만큼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집을 판돈이 이제 거의 바닥이 난다.
그러나 일감이라고는 자잘한 정도밖에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으로는 세 사람의 입에 풀칠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강준세는 처음의 의욕과는 반대로 지쳐가면서 자꾸만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그러나 서정희는 그런 강준세를 그대로 주저앉히지 않고 독려와 용기를 주면서 당근과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서정희 역시 이 정도에서 포기하거나 물러서는 성품이 아니다.
“대표님!
어떤 장사든지 그 고비는 다 있는 것입니다.
이 정도를 넘어서지 못하고 주저앉는다면 앞으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지요.“
서정희는 옹골찬 표정으로 두 남자들을 본다.
그들은 삼겹살을 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것도 음식점이 아닌 자신들이 일을 하고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서정희가 준비를 한 술좌석이었다.
“선배님!
그리고 대표님!
반드시 이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면 우리에게도 서광이 비쳐들 것입니다.“
“고마워!
서정희씨가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는 벌써 두 손을 들었을 것이오.
그러나 솔직히 이제는 자금이 바닥이 나서 어찌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오.“
민석재는 결혼을 연기하면서까지 일에 매달리고 있었으나 더 힘들어져 가는 상황을 그저 한숨으로 토해내기만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으로는 결혼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아무리 여자의 수입이 있다고 해도 생활을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표님!
우선 이것으로 다시금 움직여 보지요.
그래도 안 된다면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융자를 받겠습니다.“
서정희는 통장을 내 놓는다.
강준세는 통장을 얼른 받지 못하고 서정희를 말없이 바라본다.
선뜻 받을 수 없는 돈이다.
일 년이 넘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었다.
“무엇을 망설이세요?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선 우리의 사업을 살려야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자금이 없이는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서정희씨!
고맙소!
내 반드시 서정희씨의 이런 노고와 정성을 갚아나갈 것이오.“
강준세는 다시 굳은 결심을 한다.
서정희의 통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적금을 들었던 것을 만기가 되어 찾았고 워낙에 알뜰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저축을 해 왔던 모든 금액이었다.
그렇게 강준세는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 나선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서정희의 정성과 노고를 생각하면서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발로 뛰고 또 뛰는 것이다.
그런 고생을 하늘도 감동을 시켰을까 일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늘어나는 거래처에서는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작은 곳이었지만 성실하고 일처리를 깔끔스럽고 만족스럽게 해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씩이나마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점차로 일은 늘어나고 있었다.
간신히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밥술이나마 먹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서정희의 통장을 채워 넣으려면 어림없는 일이었지만 더 이상 서정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강준세는 힘이 난다.
강준세와 민석재는 희망이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면서 더욱 열심히 거래처를 늘려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작은 일감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신용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모든 열과 성의를 다해 조그만 문구 한자라도 정성껏 만들고 성실하게 광고물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서정희의 섬세하고 세심한 손끝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그렇게 삼 년여를 그들은 함께 동고동락을 하면서 고생을 해 나갔다.
그런 고생이 있고 나서 강준세는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선배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강준세는 감히 연락도 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선배로부터의 연락이다.
“이봐!
자네 광고회사를 차렸다며?“
“선배님!
회사라기보다는 그저 아직은 구멍가게에 불과합니다.“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광고회사를 차렸다면 내게 연락이라도 할 일이지.
사실 얼마 전에 자네 이야기를 들었네!“
“죄송합니다.
연락을 드릴만한 처지가 못 되어서........“
“아무튼 평판이 매우 좋은 것을 보니 실력은 갖추고 있는 것 같은데 어때?
우리 회사 일을 하나 내 줄까?“
“네?
선배님!
감사드립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번에 새로 출시할 라면인데 자네가 한번 만들어봐 주겠나?
요즘 아이들 말하는 것처럼 웰빙식품이라는 것이 강하게 풍겨나도록 해 보란 말이야!“
“네!
자신이 있습니다.“
“좋아!
이번 일만 성공을 시켜준다면 내 자네를 얼마든지 뒤를 밀어 줄 수가 있네!
우리 회사 일만 자네가 가져다 한다 해도 아마 감당하기 벅찰 것일세!“
강준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대기업의 일만 맡을 수 있다면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강준세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계약을 체결한다.
세 사람은 처음으로 환호성을 터트린다.
그리고 밤낮으로 매달려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내어 일에 착수한다.
첫 일감으로 큰 건수는 아니었으나 이번 것을 계기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은 신중을 기하고 참신하고 사람들의 눈길과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낸다.
라면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느끼한 맛이 전혀 없고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 새롭게 개발된 제품인 것이다.
그들은 참신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짜낸다.
라면을 담을 봉지와 광고를 위한 광고물이었다.
계약일보다 조금 앞당겨 완성을 하고 선배를 만난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선배와 마주 앉는 강준세는 이마와 손에 땀을 쥔다.
자신의 사업에 사활이 걸린 문제인 만큼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준세의 설명과 함께 작품을 들여다보던 선배는 대 만족을 한다.
“좋았어!
역시 내가 알았던 강준세의 실력이야!
일단 윗선의 결재를 받고 연락을 해 줄 것이네!“
그리고 기다리던 며칠을 피가 마르고 간이 졸아드는 기분이었다.
시간의 초조함과 기다림의 순간들이 피를 마르게 하는 것이었다.
며칠 뒤에 만족스러운 오케이 사인과 함께 돈이 입금이 되었을 때 세 사람은 누구라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강준세는 대기업의 일을 조금씩 량을 늘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년 전의 일이다.
일 년 전부터는 그 기업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 강준세는 직원을 늘리고 회사를 확장한다.
그리고 서정희와 민석재의 밀린 월급과 서정희의 돈을 이자를 계산해서 모두 갚은 것이다.
이제는 직원이 수십 명에 이르는 큰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혼자 좁은 오피스텔에 살던 것을 탈피해서 삼십 오평짜리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것이 한 달이 넘었다.
처음으로 마음 놓고 하루를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그동안 어머니께 단 한 번도 생활비는커녕 용돈조차 보내드리지 못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려 항상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강준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고 샤워를 한다.
모처럼 만에 어머니를 찾아 뵐 것이다.
오년이 넘는 세월동안 명절이나 제사가 아니면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려는 것이다.
항상 자식을 먼저 생각하시는 어머닌 그동안 많은 고생을 하시며 살아오셨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온다.
강준세는 그렇게 아파트를 나선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