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행>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3>
♤ 성배(聖杯) 이야기
성배에 대한 신앙과 성배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은 중세 이후 그치질 않았는데 논란의 핵심은 도대체 성배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한때는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이 가지고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었다. 그런데 발렌시아 대성당에 모시고 있는 성배는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져왔고 3세기에 성 로렌조(St. Lorenzo)가 다시 발렌시아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 후 발렌시아 성배는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한 무어인들의 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인근의 바위 동굴 속 ‘성 요한 수도원’ (Monastery of San Juan de la Pena)’으로 옮겨져 간직되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이 발렌시아의 성배를 조사해본 결과 1세기 중동지역, 시리아(Syria)의 안디옥(Antioch/현재는 터키)에서 나는 돌로 만든 것으로 밝혀져서 진짜 성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발렌시아의 성배가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역대 교황들은 이곳까지 와서 일부러 그 성배를 가지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한다. 아무리 교황이지만 위대한 오리지널 성배를 직접 손에 들고 마치 예수께서 말씀하시듯 ‘이는 내 피의 잔이니 받아 마셔라’고 말하는 것은 꿈을 이루는 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6년 7월 9일에는 교황 베네딕트 16세(BenedictusⅩⅥ)가 찾아와서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한편, 이탈리아의 제노아(Genova)에도 성배가 있는데 에메랄드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성배(聖杯)는 십자군이 유대의 가이사라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에서 많은 돈을 주고 사왔다고 하는데 가이사라 마리티마는 헤롯(Herod) 대왕이 건설한 항구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 Aviv)와 하이파(Haifa) 사이에 있던 도시였으나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도시다.
그런데 십자군들이 에메랄드 성배를 가지고 오는데 마차의 바퀴가 부서지는 등 사고가 잇달아서 성배가 마치 고향을 떠나서 타지로 가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십자군들은 신성한 힘이 있는 성배가 그런 하찮은 사고를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파리로 가져왔다고 한다. 파리에 보관하고 있던 그 성배는 나폴레옹이 전쟁의 패배로 실각하여 엘바섬으로 귀양가자 이탈리아 제노아(Jenoa)로 옮겨진다. 그런데 에메랄드로 만든 줄 알았던 성배가 초록색 유리로 만든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제노아는 계속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성배(聖杯)의 이야기는 서유럽,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널리 퍼져있는데 영국의 전설적인 왕의 이야기인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King Arthur & The Knights of the Round Table)’ 이야기 중에서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인 파르지팔(Parsifal)이 성배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페라의 대가 바그너(Wagner)는 1850년에 음악극(Musikdrama) 로엔그린(Lohengrin)을 작곡하여 초연하는데 로엔그린은 파르지팔의 아들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성배(聖杯)와 성창(聖槍)을 수호하는 ‘성배의 기사’, 혹은 ‘백조의 기사’로 묘사된다.
작품 속에서 로엔그린은 백조가 끄는 배를 타고 나타나 억울한 누명을 쓴 엘자 공주를 위하여 결투에 나서는데 한번 창을 휘두르자 당시 최고의 기사로 칭송받던 텔라문트가 힘없이 쓰러진다.
바그너는 말년인 1882년에는 음악극 ‘파르지팔(Parsifal)’도 작곡하여 초연하는데 작품 속에서 파르지팔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성배(聖杯)와 성창(聖槍)의 수호자로 묘사된다.
발렌시아 대성당에 모셔진 성배는 10여 가지나 되는데 어느 것이 진짜라는 표시는 없지만 수많은 황금빛 잔 중에서 유독 소박해 보이는 잔이 진짜처럼 보이는데 바로 그 안디옥(Antioch)의 돌로 깎은 성배이다.
<2> 발렌시아 성문(Torres)
북문(Torres de Serranos) / 북문의 뒷모습 / 후문(Torres de Quart) / 성문 위 통로
발렌시아 구도시로 가려면 성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성벽은 모두 없어지고 성문만 두 개 남아있다.
예전에 북문으로 불렀다는 ‘세라노스 문(Torres de Serranos)’은 거의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데 어마어마하게 크고 멋지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쳐들어왔을 때 견고한 이 발렌시아 성벽에 막혀 결국 되돌아갔다고 하는 튼튼한 성이었는데 성벽은 흔적도 없고 성문만 남은 것이다.
성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구시가가 되는데, 성문의 뒷면은 두 번째 사진처럼 다섯 개의 구멍이 있는 이상한 모습이다. 측면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그 입구에서 표(2€)를 끊으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양쪽 탑은 중간부분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건너다닐 수 있고 벽 안쪽은 방들이 있는데 원래는 무기고로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감옥(監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성문 위로 올라가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제법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는데, 대부분 이름 있는 볼거리들은 구시가지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모두 걸어 다니면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은 ‘콰르트 문(Torres de Quart)’이라고 하는데 후문 격으로 매우 좁지만 높다랗고 웅대한 모양이 볼만하고, 북문은 모가 났는데 이 문은 둥근 원기둥 모양이다. 특히 이 문의 둥근 벽면에는 옛날 전쟁 당시 대포와 총탄 세례를 받은 자국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역사의 증거물이다.
나는 작은 문을 통해서 구시가로 들어섰는데 좁은 골목길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붐비는데 좁은 골목길 틈새로 너무나 아름다운 첨탑이 보이기에 물어보았더니 ‘산타카타리나 수녀원의 종탑’이라고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