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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었네요.
이게 다 소녀전선 때문입니다.
스타듀 밸리 때문이기도 하고요
스텔라리스 때문이기도 하죠.
오블리비언도 책임이 있습니다.
네, 소설 잊어먹고 놀았어요.
아이작은 나머지 둘이 자는 동안 망가진 로봇들의 잔해를 뒤져서 부품들을 꺼내고 있었다. 새벽 1시였다. 하워드가 하얀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가져오자, 그는 고마워하면서 커피를 받아서 후후 불고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커피가 평소랑은 다른 맛이었다.
“하워드, 이 커피 뭐야?”
“아, 프루루트양이 인형들을 볼트 수리에 투입시키면서 식품 제조기에서 만들던 음식을 개선시키거나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는데, 그 새로운 커피도 그 때 만들 수 있게 된 거랍니다. 주인님께서 드신 커피는 카페 모카라는 건데, 우유와 초콜릿 시럽을 넣은 에스프레소랍니다. 늘 드시던 카페 아메리카노하고 다른 맛일 겁니다.”
늘 똑같은 맛의 커피만 마시던 아이작은 소녀에게 고맙게 생각하면서 또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탁자의 앉아 커피를 음미했다. 그동안 하워드는 주인이 해체한 로봇과 끄집어내진 내용물들을 구석으로 옮겼다.
“그 커피가 마음에 드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제가 커피 맛을 볼 수가 있어야지요. 그렇다고 애들에게 마시게 할 수도 없죠. 아이들이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자잖아요?”
“애들은 잘 자?”
“그럼요. 달원숭이 쟁글스 꿈을 꾸면 좋겠네요. 그런데 이 망가진 로봇들과 고철들은 뭔가요? 로봇 해체공장이라도 차리실 건가요?”
“아, 낮에 시저의 뭐시긴가 하는 애들이 프루루트 인형 분해시키고 돌아갔던 거 알지?”
“그럼요. 군단병이라는 자들이 아가씨 인형을 조각내서 불태웠죠. 그래서 아가씨가 화내고 올 거라면서 그들에게 가려 하기에 말렸고요. 그 이후 하루 종일 인형들을 도와주다가 잠이 들었지요.”
확실히 그 때 그녀는 윗집 층간소음에 항의하러 가는 아랫집 사람같이 짜증내는 표정으로 인형 하나 들고 그들에게 따지러 갈 거라면서 가려고 했었다. 200년 된 볼트 하나를 복구시킬 수 있는 외계인이라도 다섯 싸움꾼들 상대로는 위험할 것이다. 고치는 건 잘 해도 싸움을 못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세이커가 한 말대로라면 그들은 고대 로마를 흉내 내는 약탈자들이니 더더욱 위험하다. 그녀가 노예로 팔려가기라도 하면? 죽기라도 하면? 그녀 친구들이 그녀를 찾으러 올 수 있는데 프루루트에게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보호자로 생각할 아이작은 더더더욱 위험할 것이다.
“그래서, 숲을 돌아다니는 놈들을 탐지할 레이더를 만들려고”
“아! 외적이 침입할 때 그들이 어디서 오는지를 안다면 막기가 쉽죠.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레이더를 써서 독일군 공습을 저지한 것 같이요!”
“쳐들어오지 않고 돌아가면 더 좋겠지만”
아이작은 커피를 마시고 남은 커피를 보다가 허리에 찬 레이저 피스톨을 봤다. 그는 이 무기를 쓸 상황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무심코 남은 잔을 비웠다.
“주인님, 그렇게 빨리 마시면...”
“콜록, 크헉!”
뜨거운 커피는 천천히 마시는 게 좋다.
한편, 밤하늘이 지붕을 덮은 숲의 어딘가에서 시저의 군단 병사들이 모닥불을 중심으로 모여 도마뱀 구이나 조각내서 구운 다람쥐, 비린 냄새가 나는 빨간 소시지 같은 음식들을 먹으면서 쉬고 있었다. 모닥불 장작더미 속에는 아까 잡아서 찢어 갈긴 인형도 있었다. 숲을 정찰하고 오라는 백인대장의 명을 따라 숲에 들어온 이들은 원래는 열 명이었지만, 깊은 숲으로 들어오면서 만난 NCR 탐사대와 싸우다 부대원의 반을 잃고 도망쳤다. 병사 개개인의 기량은 군단 병사들이 높았지만, 칼을 든 군단병이 달려들기 전에 NCR 군인들은 소총을 들고 그들을 쏴 맞췄으니 열세로 도망가야 했다. 과거에 모하비에서 싸울 때의 NCR은 훈련도도 낮고 보급도 부족해서 시저의 군단에게 우세했지만, 2차 후버 댐 전투 이후로 군단이 지도자를 잃는 큰 피해를 입어 물러간 동안에 모하비에서 NCR이 철군하면서 무리한 확장으로 소모한 힘을 회복했고, 군단은 모하비를 침공했지만 번번이 패하기만 했다. 그 이후 군단 안에서는 내전이 일어나려 했는데, 모하비 황무지 남쪽에서 지평선을 가득 채운 나무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정찰대가 보고했고, 군단은 서로를 맞대던 머리를 남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NCR의 탐사대를 만나게 돼서 산발적인 교전이 숲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모닥불에 모여 쉬고 있는 이들은 숲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짐을 정리하는 군단병들은 술은 깨뜨리고 약물은 모닥불에 던져버렸다. 군단에서는 향락을 금지하기에 이런 걸 가지고 있으면 산 채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벌을 받는다. 아래 병사들이 짐을 정리하면서 버릴 것들을 버리는 동안, 십인대장은 남들 몰래 담배를 품속에 넣었다. 십인대장이 품을 손바닥으로 툭툭 하고 두드리면서 몰래 끽연을 하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즐거워하고 부하들에게 들키지 않았을까 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병사들은 모두 모닥불에 모여 있었다.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십인대장은 의심받지 않기 위해 부하들에게 돌아갔다.
숲의 그늘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눈은 그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아이작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밖을 경계할 레이더를 만들어서 밤을 샌 것도 있고, 레이더를 만드는 도중 뜨거운 커피를 무심코 원샷을 해서 입안이 데인 것도 있고, 그것 때문에 아침밥을 먹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 가지에 비교하면 큰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가 밤새서 기계를 만드는 동안 프루루트의 인형들이 숲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그려오고 군단병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서 미행까지 완벽하게 한 걸 프루루트가 알려줬다.
“주인님은 밤새 고생만 하셨군요. 인형들이 그 솜만 들어간 팔다리로 그렇게 능력이 좋을 줄은 몰랐네요?”
“난 지금까지 뭘 한 건지 모르겠어. 짜증나!”
입에 마스크를 차고 한손으로 턱을 괴면서 식탁에 앉아있는 그는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는 둘을 보고 있었다. 세이커가 먹는 건 사과 양배추 스튜, 프루루트가 먹는 건 야채수프. 볼트 밖에서 가져온 것들로 만든 음식이었다. 볼트의 식품제조기 대신 볼트 밖의 것들로 요리를 해서 먹자는 건 하워드의 생각이었다. 인형들이 밖에서 구해온 게 식물뿐이라 하워드가 최선을 다해서 만든 식사였는데, 다행히 둘의 입에 맞는지 좋아하면서 먹는 걸 보니 그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워드, 음식 만들면서 방사능 같은 건 안 나왔었어?”
“제너럴 아토믹스의 방사능 탐지 센서는 멀쩡하답니다. 기쁘게도 방사능은 없었지요. 주인님께서도 드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그러게, 다음에는 안 뜨거운 커피를 마셔야겠어.”
“그럼 식품제조기에 아이스커피를 넣는 걸 고려해보도록 하죠!”
그러면서 하워드가 떠나자, 아이작은 빈 머그컵을 잡고 흔들거리다가 마시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마스크 때문에 입이 닿지도 않았고, 입 안에 마셔지는 건 기체뿐이었다. 그는 커피맛 공기를 만들어서 통조림에 넣어 팔면 장사가 잘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그는 그렇게 ‘공기 커피’를 마시고 음미하는 행동을 하면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둘을 봤다. 서로 이야기하면서 국물을 흘릴락 말락 하고 있었다.
“엔클레이브라는 말은 캐러밴 대장에게 들었어. 황무지 사람들은 다 죽이려 했다던데”
“응. 인형들이 얻어온 이야기가 이런 볼트 지은 것도 걔들이었대. 엄청 나쁜 애들이었었대”
“그러다가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이라는 애들이랑 NCR이 서로 손잡고 엔클레이브 이기고, 이제는 서로 싸우고 그런다네.”
“응! NCR은 좋은 사람들 같아, 세이커가 거기서 왔으니까”
“그렇지는 않아.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어”
볼트 밖은 200년이 지나는 동안 많이 변했었다. 황무지의 생존자들이 모여서 돌연변이들을 물리치고, 실험쥐들이 실험쥐를 죽이려는 과학자들을 물리치고, 그리고 이제는 살아남은 생존자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아이작이 그런 걸 들으면서 많은 문제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외부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바깥사람들도 대단하네. 그리 고생을 했는데도 살아남고”
“NCR이 운이 좋은 거죠. 하마터면 엔클레이브가 황무지를 정화한다면서 다 죽을 뻔 했었는데, 누가 엔클레이브 기지까지 쳐들어가서 걔네들을 다 물고기 밥으로 만들었다나 봐요 나머지는 NCR하고 브라더뭐시기가 싸웠고요”
그 이야기는 바깥 세계에서 ‘아로요의 선택받은 자‘전설로 이야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엔클레이브는 다 사라진 거야?”
“그렇지는 않아. 살아남은 애들이 동쪽으로 도망갔다고 하더라고오.”
“여기 안 온다니 다행이네”
프루루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숟가락을 놓고 눈을 감은 다음 집중을 하듯이 ‘으으음’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에, 그 엔클레이브 마크, 여기서도 본 적 있다?”
“뭐? 어디?”
“이거 먹고 갈래”
프루루트는 숟가락으로 반쯤 남은 수프를 휘휘 저었다.
프루루트가 말한 엔클레이브 마크라는 건 12개의 작은 별들이 영어 ‘E’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모여 있는 과거 미국의 국기와 비슷하게 생긴 마크였는데, 프루루트가 기둥 상태로 있던 창고(프루루트 방으로 이름지었다) 옆 무기고였다. 불이 안 들어오는 통로를 따라서 온 무기고 문에는 그녀가 말한 엔클레이브 마크가 있었다. 그녀 말로는 아이작과 세이커를 데려온 파워아머도 무기고에 있던 거라고 말했다. 아이작은 그 말을 듣고 “연료 전지만 충분하다면 그걸 입고 안전하게 밖에 나갈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하면서 무기고의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난간부터 단까지 철판으로 된 디딤판이 넓은 계단이 아래로 뻗어있었다. 그 아래로는 자동차를 세로로 다섯 대는 세울 정도의 공간이 있어 보이는데, 어두워서 그런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프루루트 방보다 더 큰데요? 파워아머가 수백 대는 있을 거에요”
“여기 불 켜는 스위치는 없나요? 계단이 끊어져있다면 내려가다가 떨어져 죽을지도 모를 높이군요”
“그럼 이따가 올까? 인형들을 불러서 여기를 수리하게 하면 불도 켜지고 계단도 고쳐질 거야!”
“아가씨 말에 찬성. 어두운 건 질색이야.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다고!”
아이작은 그리 말하면서 무기고 안을 보려고 하지 않으려 했다.
“아저씨, 귀신 무서워해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그래”
“주인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이야기를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외계인도 있는데 귀신이라고 없을까?”
그러자 세이커와 하워드는 계단 난간에 붙어서 창고 밑을 내려다 보는 프루루트를 봤고, 아이작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기고에서 프루루트의 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통로에 불이 켜지더니, 공구상자나 밧줄 뭉치, 장난감 자동차같은 잡다한 것들을 각자 머리에 이고 인형들이 마주오던 이들을 지나치고 무기고로 달려갔다. 인형들이 무기고 계단을 내려가는지 일정한 간격의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그 소리가 멈추고 바닥에 금속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저기, 저 인형들 괜찮은 걸까?”
프루루트는 무기고로 가는 통로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돌아오면 고쳐줘야지. 실이 부족한데 어쩌지?”
“제가 볼트 안에서 실을 찾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제 센서에 실이 감지되지 않다면, 그 때는 저도 어쩔 수 없겠지요.”
“먹을 건 해결했지만 그런 건 어디서 구할지 모르겠네.”
볼트 안의 식량 문제는 해결했지만, 다음 문제는 생필품 문제가 되었다. 인형들이 청소할 때 쓸 대걸레나 세제도 모자라고, 실이나 옷감도 부족하다. 비누도 다섯 개밖에 남지 않았다. 인형들이 고치러 달려간 무기고의 전력을 고치려면 공구나 부품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아까 들고 간 공구상자도 들어있는 도구는 오래된 것들이었다.
“밖에 가게에서 사오면 안돼?”
“밖에는 숲이잖아, 어디에 가게가 있겠어?”
“세이커, 너 밖에서 캐러밴 상단에 있다고 했었지?”
“네, 그런데요?”
아이작의 생각에는 NCR이나 시저의 군단이 숲에 집적대니, 세이커가 속해 있던 상단처럼 그들을 따라온 상인들이 있을 거니 그들에게서 물건을 얻어오자는 거였다.
“밖에 가서 상인들에게 물건 사러 가면 되잖아? 그러니까 나가보자”
쉽게 말하자면 볼트 밖에 장보러 나가보자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