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리얼리즘적 양상과 그 특성(6)
결 론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시 연구 차원에서 리얼리즘을 문제 삼는 이유가 참다운 시에 대한 올바른 해명에 있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할 것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리얼리즘시의 전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문학 외적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와 왜곡된 자유 민주주의의 이념들과 대결하여야 했으며, 문학 내적으로는 샌티멘탈리즘이나 기교주의, 순수서정시나 난해시와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리얼리즘 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리얼리즘시가 이런 위상을 확보하기까지 몇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과 한계가 있었다. 먼저 서술적인 기법을 통해서 시의 대중화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고, 다음은 시적 주체의 시정신에 있어서 사회변혁과 저항이라는 당대적 이데올로기에 부응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시적 기교나 언어적 수사보다도 이야기 중심의 서술구조를 통해 시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후자는 시적 주체의 리얼리즘 정신의 반영을 통해 시가 개인적인 효용성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거나 , 정치, 사회와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 시는 언어의 중요한 특성인 언어적 함축성의 실현에는 실패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카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의 신경향파 리얼리즘시는 당대적 현실의 적확한 묘사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적 형상화나 미학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편내용주의에 빠졌다거나 이념만 있는 뼈따귀 시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 후기에 가서 이용악, 백석, 안용만 등의 리얼리즘시나 1980년대 이후의 민중시에서 이런 측면들이 많이 극복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리얼리즘이 시의 한 요소만으로 이룩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리얼리즘시는 아무래도 당대 사회현실의 핍진한 형상화와 무관할 수 없다. 실상 리얼리즘시의 문제는 ‘시가 얼마나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살려는 마음과 결부되는가’의 문제와 ‘정당한 현실인식이 시 장르의 속성에 호응하면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로 귀착된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시의 본질적 속성을 떠나 리얼리즘시로서의 가치에 부응하기 위한 기본적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는 리얼리즘시의 준거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 생각된다. 리얼리즘을 성취하는 방법적 원리의 탐구는 리얼리즘시의 이해를 돕는 지름길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원리는 이미 작품 속에 실현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실감을 위한 진실성의 추구, 시적 주체의 형상화, 산문적 확장과 시적 응축, 전형성의 추구 등의 항목을 들 수 있다. 리얼리즘 시인은 현대성의 추구나 미적 가공 기술의 혁신 자체를 일차적 비중으로 두지 않는다. 당대의 생생한 현실을 주체와의 긴밀한 상관 관계 속에 드러내다 보면 내용이나 형태면에서 새로움 또한 자연스럽게 확보된다는 게 리얼리즘적 창작 태도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살펴볼 때, 리얼리즘시의 양상과 특성이 현대시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데 미흡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당대를 살아가는 시인들의 리얼리즘시를 제대로 인용하지 못했고, 인용된 시가 너무 과거 현대와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리얼리즘시의 창작에 있어서 기본적 요소 또는 방법적 원리를 네 가지로 가정해 놓고 논고를 펼치다 보니 다양한 작품의 인용에 오르지 못했다. 섣부러게 리얼리즘시의 표준이나 준거 제시한다는 일에 큰 부담을 느낀다. 본고를 리얼리즘시의 양상과 특성을 사색하는 성격쯤으로 봐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