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중국 영화 <아부시약신(我不是藥神, 영문명: Dying to Survive, 이하 '약신'이라고 함)>이 상영하였다. 약신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중국에서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병 치료가 어렵고 비싼' 현실을 주제로 한 영화다. 일부에서는 중국판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라고 평한다. 이런 영화가 본토 영화 보호 기간(매년 여름 1~2개월 외화 상영 제한)에 극장가를 찾는다면 답은 이미 정해진 게 아닌가?
필자는 아직 약신을 관람하지 않았다. 단, 영화 속 주인공 실존 인물에 대한 당시 검찰원의 불기소 결정서와 일부 취재자료를 참고하였다. 본문은 스포일러 대신 영화와 현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중국 법적 규정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따라서 본문 내용은 영화 관람 전과 후, 모두 참고해도 좋다.
현실적인 영화
약신은 영화다. 중국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제작진은 인물 설정, 줄거리 등에서 적잖은 타협을 했을 것이다. 흥행을 위한 희화화도 많을 것이다. 이것이 중국 영화의 현실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평상심을 유지한 채 상영관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다음, 약신 관람 시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개념이다.
첫째, 만성 골수성 백혈병(慢性粒細胞白血病), 백혈병 중 생존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한다. 약신 환자들이 걸린 혈액암이다. 생존율이 높지만 약물치료에 돈도 많이 든다.
둘째, 글리벡(格列衛),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스위스 Novartis사 제품)로 중국 내에서 2014년 기준 23,500위안/병에 판매되었다고 한다. 통상 한 달간 복용량을 한 병으로 계산하면 일반 가정에서 부담하기 힘든 비용이다.
셋째, 제네릭 의약품(仿製藥), 오리지널 의약품(原研藥)을 모방하여 만든 의약품으로 카피약, 복제약으로도 불린다.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제네릭 의약품은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권 보호기간이 만료되어 합법적으로 생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불법으로 생산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인도는 규제가 느슨하고 제약기술이 발달하여 전 세계 제네릭 의약품 25%를 생산하는 세계의 약국이다.
영화 줄거리는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아래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판 약신을 알아보자.
영화 같은 현실
약신(藥神) 말 그대로 약의 신과 같은 존재, 현실에서 암 환자들은 루융(陸勇) 씨를 약협(藥俠)으로 칭한다. 루 씨의 SNS 계정 역시 약협루융으로 되어있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 루 씨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다.
2002년, 당시 34세 루 씨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 후 2년 동안 글리벡 구매에 들인 돈만 56.4만 위안, 비용 절감, 정보 공유를 위해 루 씨는 비슷한 사정이 있는 암 환자 QQ 그룹을 만들었고 심지어 그의 부친은 아들 치료비 마련을 위해 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암 때문에 가족을 잃은 자책감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인도 Natco사의 Veenat을 접하게 된다. 글리벡 제네릭 의약품인 Veenat은 효능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4,000위안/병이었다. 2004년부터 7년간 Veenat을 복용한 루 씨, 자신이 효과를 보자 그룹 내 암 환자들에게도 추천해줬다. 입소문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암 환자들이 루 씨를 찾았고 그들의 부탁으로 인도 Natco사로부터 약품 구매대행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외화 이체, 영어 소통, 택배 배송 등 번거로운 상황을 감안하면 확실히 대부분 중국 암 환자들이 직접 인도에서 구매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2011년, 암 환자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루 씨는 추천 약품을 인도 Cyno사의 Imacy로 교체하였다. 해당 약품은 초기 가격 750위안/병에서 3년 뒤 200위안/병(글리벡 1/120 수준)까지 내려갔다. 인도 Cyno사는 온라인 판매 위주 회사로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약품을 발주하고 중국 내 계좌에 대금을 이체하면 택배를 통해 약품을 배송하는 방식을 취했다. 2013년 3월, 은행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로 인해 Cyno사는 더 이상 중국 내 계좌로 직접 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루 씨는 Cyno사와의 거래를 위해 타오바오 사이트에서 500위안의 가격으로 타인 명의 신용카드 3장을 구매하고 암 환자들이 해당 카드에 이체한 대금을 다시 Cyno사측 중국 개인 계좌에 이체하였다. 경찰은 신용카드 관리 방해죄 혐의로 루 씨를 형사 구류하였고 조사를 통해 가짜 약품 판매죄를 더하여 검찰에 넘겼다.
사법정의 실현
루 씨는 구치소에 135일 갇힌 후 검찰원의 불기소 결정에 따라 무죄가 확정되었다. 검찰 기소 과정 중 암 환자 근 1천 명이 공동 서명으로 루 씨 형사처분을 면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건인 만큼 검찰원은 불기소 결정서와 함께 법리해석서도 발표하였다. 가짜 약품 판매죄 혐의로 기소되어 불기소처분된 사건은 흔치 않다. 담당 변호사의 노력으로 사법정의 실현을 이끈 사건이기도 하다.
가짜 약품 판매죄(銷售假藥罪, 중국 형법 제141조)는 판매한 약품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죄질에 따라 최고 사형, 재산 몰수형까지 처벌하는 중죄다. '가짜 약품'은 국가 비준을 거치지 않고 생산, 수입한 약품도 포함한다. 상기 Veenat, Imacy는 중국 법상 모두 가짜 약품이다. 단, 루 씨의 행위는 '판매'가 아니다. 루 씨는 속칭 구매대행, 실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암 환자를 도와 대량 구매를 통해 치료비용 절감을 실현하는 것이며 영리적 행위가 아니다. 때문에 루 씨 행위는 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신용카드 관리 방해죄(妨害信用卡管理罪, 중국 형법 제177조의 1 제1항)는 죄질에 따라 최고 10년 이하 징역, 20만 위안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규제 행위는 1) 위조된 신용카드의 소지, 운송, 2) 타인 신용카드 불법 소지, 3) 허위 신분증명으로 신용카드 발급, 4) 위조된 신용카드 혹은 허위 신분증명으로 발급된 신용카드를 판매, 구매, 제공하는 등 네 가지다. 루 씨의 경우 타인 신용카드 불법 소지 행위에 해당한다. 단, 루 씨는 500위안의 가격으로 타인 신용카드 3장 구매하였고 그중 1장만 사용한 등 경미한 수준이기에 그 행위는 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
보석(取保候審) 기간에만 백여 명의 기자들이 루 씨의 집에 다녀갔다고 한다. 관영매체 CCTV도 그의 사례를 수차례 소개하였다. 백혈병 환자들 사이에서 그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로 통한다. 칭화대학 암관련 세미나에 초청되어 암 환자 대표로 발언하기도 했다. 고가 약품의 대명사인 글리벡은 중국 여러 개 성, 시에서 의료보험에 포함되었다. 윈난성(雲南省) 모 제약회사는 루 씨를 통해 인도 제약회사와 제휴할 것을 요청하였고 모 여행사에서는 그의 홍보를 통해 인도 의료관광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루 씨가 무죄 확정된 지 3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그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 약신이 상영하였다. 자의든 타의든 그는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영웅으로 남을 것인지 상인으로 전락할 것인지 그의 선택이다. 백혈병 환자들이 루 씨를 약협으로 떠받드는 것 역시 그들의 선택이다. 비록 백혈병이라는 암과 태어난 환경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