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만 만들고 손놓고 있었던 인스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딸래미가 도와준다고 팔을 걷어 붙이니 힘이 났다. 워낙 바쁘게 사는 중이라 시간이 되겠나 싶은데 돕겠다고 성화를 부리니, 솔직히 해 낼 자신이 없던 차에 모른척 묻어가기로 했다. 이 참에 잘 배워 혼자 할 수 있도록 해 볼 작정이다.
오늘 첫 글을 정리해서 줬는데 딸래미의 반응에 유난히 신경쓰고 살살 대면서 아부, 의존하는 느낌이 사알짝 올라왔다. 바쁜데 일시킨다 싶어서이기도 한데, 그간 치유의존하고 눈치게임하던 버릇의 연장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원래 내 성정으로는 내 느낌대로 거침없이 쳐 내던 스타일이었는데, 그 밑에 숨어있던 내면아이의 의존심이 시동이 걸리고 나니 의식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구나 싶다.
공주님처럼 왕비님처럼 남편 그늘에서 사모님만 하던 지인이 개인 사업장을 열었다. 사업장 구하는 것에서 부터 임대계약, 인테리어 진행까지 지근거리에서 지켜 보는 동안, 속 천불 나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고용한 사람, 도와주러 온 사람을 부리고 활용할 줄 몰라 질질 끌려 다니니, 몇 일이면 끝날일이 한달가까이 걸려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나 몰랐던 건가. 위축되어 있다보니 저렇게 변한건가 헷갈리기 까지 했다. 내심으로 나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간 해 왔던 가락이 있어 실지로도 잘 하기도 할거다.
그런데 오늘 딸래미 눈치보는 나를 보며, 나약한 퍼스널리티로 의지하고 싶어하며 휘둘렸던 지인의 모습이 겹쳐져 피식 실소가 터졌다.
아 진짜. 이거 뭐냐. 내 꼬라지도 하나 다를게 없는데 속 천불났던 거야? 어이없네.
반성은 잠시, 이내 의존하며 매달렸던 경험이 있었기에 속 천불 나는 중에도 그녀의 답답함과 속상한 사정을 이해하고 들어 줄 수 있게 된거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금방 전환할 수 있었다. 나도 똑같다, 충고할 자격도 못되면서 충고하려 했다는 자책이나 죄책감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 큰 변화다. 자책으로 우울해 하며 보낼 수도 있었을 시간이 이런 단순한 관점전환하나로 유익한 경험이 되는 신비한 마음의 마술.
가볍고 상쾌한 기분이 몰려온다. 해낸 내가 뿌듯하다.
딸래미와 톡대화로 촉발된 의존심, 나약함, 눈치게임의 마지막 결론은 "주인이 주인노릇 못하면 될 일도 안된다. 주인은 주인다워야 한다."이다.
뻔한 얘기같지만 2인자, 보조자 역할에 고정된 삶을 살아 온 여성들에게는 어마무시한 난제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 왔다 자부하는 나도 심층의 결핍이 터지니 다를바 없는데, 같은 역활만 반복해 온 여성들이야 말해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