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 버나드 쇼 / 신정옥옮김 / 범우사
희곡이다. 대화를 눈으로 읽으면서 무대를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으리라는 욕심을 가지고 책을 들었다. 그러나 내 머리속은 뭔가 이상한 것으로 가득차 있는 듯 도무지 무대를 그려볼 수 없다. 대신 마치 영화의 한 컷 한 컷으로는 그려볼 수 있었다. 무대나 영화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마는 연극을 현장에서 본 기억은 다섯손가락을 이용하더라도 아마 한참 남을 것이다. 대신 영화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이용해도 모자란다. 그만큼 나는 연극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이야기다.
말이라는 것이 한 사람을 평가하기에 적절한 것인지
가르치는 자와 가름침을 받는자의 차이는 무엇인지
무엇을 가르쳐야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즉 교육의 본질을 다루는 것인지
히긴스는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듣고 출생지 등을 알아 맞춘다. 간단하게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 더 자세하게 지역을 나누어 구별할 수 있으며, 교육의 정도까지 맞출 수 있는 전문 음성학자이다. 그가 구분할 수 있는 모음의 수는 일반인의 그것에 비해 몇배(가물가물)나 더 많다.
갑자기 비가 퍼붓는 날, 처마끝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히긴스가 한 마디를 던진다.
39. 이 애는 길바닥의 천한 영어를 쓰고 있어요. 저 영어로야 저 애가 죽는 날까지 빈민굴에 갖혀있게 되는 거요. 보시오, 선생. 나는 3개월 안에 저 애를 대사관의 정원 파티에서 공작부인으로 행세하도록 할 수 있어요.
또 다른 음성학자인 피커링 대령과 내기를 한다.
일라이자 둘리틀이 그들의 내기 대상이다. 그녀는 빈민굴 출신으로 올바른 영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거리에서 꽃을 파는 일을 한다. 그녀의 꿈은 꽃가게에 취직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구사능력을 갖는 것이다. 그녀는 히긴스의 연구실로 찾아가 가르쳐 줄 것을 청한다. 히긴스는 그녀를 6개월 동안 격식에 맞는 교양있는 바른 말을 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추도록 교육을 한다. 목표는 사교 모임에 참석하여 공작부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내기를 한다. 피커링대령이 비용을 지불한다. 물론 그들은 돈 걱정이 전혀 없는 부유한 상류층 사람이다. 실험이 시작된다.
125. 그건 계급과 계급, 영혼과 영혼이 벌어진 깊은 틈을 메꾸는 일이라고요.
히긴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음성학 분야서 볼때 말을 통해 계급을 넘나들 수 있으며, 영혼도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뿐만아니라 상류계급에 속한 사람이라도 바른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맞은 품격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144. 그들이야 멍청한 것들이라, 태어나면서부터 지위에 맞게 품격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배우지도 않지.
일라이자는 총명한 처녀이기에 히긴스가 가르쳐준 것들을 소화해냈을 뿐만아니라, 교양분야에서도 도저히 6개월안에 배웠다고 할 수 없을 만큼의 지식과 기술(?)을 익혔다. 일라이자는 그들의 자랑이 되었다. 그녀는 공작부인처럼 행동했으며, 히긴스교수에게는 누구보다고 나은 최고의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
약속된 6개월이 지나고 그들은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되었다. 그곳에서 또다른 음성학자는 신데렐라처럼 나타난 일라이자를 헝가리의 왕족으로 분석했다. 히긴스가 옆에서 꽃파는 아가씨라고 말해도 통하지 않을만큼 완벽하다.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 히긴스와 피커링대령이 나누는 대화 자리에 일라이자도 함께 한다. 그들의 대화에 일라이자는 없다. 온통 게임에서 승리한 이야기뿐이다. 일이 잘 끝나서 좋다는 이야기일뿐 일라이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없다. 그들의 대화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문득 발견한다. 교육을 받기 전 그러니까 변하기 전, 거칠지만 스스로 삶을 꾸렸던 그녀는 지금의 환경에서는 스스로의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150. 난 꽃을 팔았어요. 나 자신을 판 건 아니라고요. 그런데 선생님, 날 숙녀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젠 나 말고는 아무것도 팔 것이 없잖아요.
그녀는 히긴스의 집을 뛰쳐 나온다. 그리고 집 앞에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성이던 프레디를 만난다. 프레디는 몰락한 상류계급의 청년으로 첫 만남에서 그녀에게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밤을 보낸다.
바른 말을 가르치는 히긴스는 가르치는 내용과는 다르게 무례하다. 반면 피커링 대령은 사려가 깊다. 독신주의자인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남다르게 생각하고 있으나 표현을 하지 못한다. 그것이 더욱 그녀를 향해 괴팍한 표현을 하게 했는지 모른다.
178.
피커링: 아, 그건 단지 그분 버릇이잖아. 뜻이 나쁜 건 아니지.
리자: 저도 꽃파는 애였을 때도 나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제 버릇이었죠. 그랬었는데 결국은 큰 차이가 생기게 된 거죠.
179. 대령님이 절 '둘리틀 양'이라고 부르셨어요.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자존심을 알게 된 것이었어요.
180. 숙녀와 꽃 파는 소녀와의 차이는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대우를 받느냐에 있다.
히긴스의 입장에서는 그녀를 특별히 괴팍하게 대한 것은 아니었다.
187. 나쁜 태도, 좋은 태도, 또는 특별한 태도를 가지는 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태도로 대하는 거야.
인간을 목적으로 삶아야하는데, 두 신사는 일라이자를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녀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험이 대상이 아니었다. 히긴스의 어머니는 이를 일찌감치 간파한다. 그리고 아들을 심하게 나무란다. 수단으로 떨어져버린 자신을 발견한 일라이자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히긴스부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161. 그애가 겁먹게 했구나.
다른 측면으로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개와 고양이만큼 소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며, 남여 사이에서 남자가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것을 그에 걸맞는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히긴스를 통해 전하려는 것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그 반대도 의미가 있다. 이런 문제는 어떠한 교육을 통해서라도 가르칠 수 없는 일반화시킬 수 없는 분야리라 생각한다.
다른 곁가지로 일라이자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히긴스의 충고를 따라 일약 거부가 된다. 그러나 그는그 위치가 버겁기만하다.
대중은 그녀의 사랑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관심이 많았나보다. 관심이 회자되자 작가는 후일담이라는 코너를 원본에 끼어 넣었다고 한다. 작가는 프레디와 사랑을 이루기를 것으로 후일담에 적었으나, 무대에 올려지거나 영화로 만들어진 버젼들은 대부분 히긴스와 맺어진다고 한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하여 각색된 영화 [My Fair Lady]도 그렇다. 결국 신데렐라를 대중은 좋아하는 것이다.
심리적 행동의 하나로 교사의 기대에 따라 학습자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을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1964년 한 실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피그말리온은 1912년에 발표된 희곡이다.
피그말리온이라는 말은 그리스신화에서 등장한다. 여기에는 두가지 버젼의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키프로스섬의 피그말리온이라는 왕이 아름다운 조각상을 사랑하게되어, 신에게 사람으로 만들어달라는 이야기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여자를 싫어하던 조작가가 여인을 조각하다가 그 조각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신에게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한다. 두가지 이야기 모두 사람으로 변한 조각과 결혼한다는 이야기이다. 버나드 쇼는 두번째 이야기을 근간으로 한 듯하다. (2018.11.3 평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