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덥기도 하고 비도 오는데 안녕하신지요?
기다리시던 집단상담모임 안내합니다.
여는 글 읽고 오셔서 나누겠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제대로 된 믿음, 끈질긴 건강
문은희_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 소장, 심리학박사, 계간 「니」 편집장
몸이 튼튼한 사람은 어지간한 병에 걸려 쓰러지지 않는다. 수술받고도 회복이 빠르다. 마음이 튼튼한 이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운 일을 맞이하더라도 잘 견디고 좌절하지 않는다. 상처난 곳이 아물고 나면 더 단단해지듯이, 어려운 일을 잘 이겨낸 사람은 한 단계 올라서듯 더 튼튼히 성숙하고 문제해결능력이 풍성해진다. 우리 사회는 변화가 빠르고 경제구조가 안정적이지 않아 경제위기를 당해 파산하거나 사업에 실패한 이들이 생겨나곤 한다. 이런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마음의 건강상태에 따라 대응하는 자세가 달리 나타난다.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스스로 끊기도 하고, 아이들을 버려두고 가출하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생기기도 한다. 바깥 조건이 더 나빠도 견디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다.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탓이다.
<무조건 참아야 하느니라(?)>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서 겉보기에 나무랄 데 없는 학생이 있었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늘 1등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학생이 어느 순간에 자살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안타까워하던 그 학생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의 중심부에 있던 우리 교포 젊은이의 경우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하는 누나의 말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함께 자라며 서로 아끼고 사랑했다 하면서도 “내 동생은 내가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결국 마음의 건강에 대해 살펴볼 눈이 없었던 가족들이, 삶을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아들과 동생의 마음상태를 모르고 지나친 것이다.
어린 시절 내 아버지에게 영어로 좋은 말을 가르쳐달라고 한 적이 있다. “Try, try, and try again!”이라는 아주 쉬운 말을 가르쳐주셨다. 상담을 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너무나 쉽게 자신의 생각과 뜻을 접어버리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쉬운 말이 다시 생각난다. 자라난 친정과 전혀 다른 시댁에서 자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살면서, 서로 다른 생각과 태도가 충돌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집에서 자란 형제자매도 서로 다른데 하물며 아주 다른 배경에서 자랐고 또 남성과 여성의 다름까지 보태졌으니, ‘다르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이 당연한 일이다.
남성중심으로 판단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의견의 차이를 대면할 때마다 여성들이 참고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맹목의 참음은 끈질김과는 다른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남편이 더 옳아 서로의 의견을 절충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남편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인간 남편도 인간 아내도 부족한 사람이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때로는 남편이 옳을 수 있고 또 때로는 남편의 생각보다 자기 생각이 더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순종하며 줄창 살아온 여인들이 많다.
<남편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옛날옛날 구약시대도 남성중심사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남성 아브라함과 남성 이삭과 남성 야곱보다, 하나님의 뜻을 오히려 때때로 여성들이 지키고 이어온 것을 볼 수 있다. 부족한 인간 남편에게 순종하기보다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건강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한 보기로 리브가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남편 이삭은, 사냥해온 고기를 좋아해서 큰아들 에서를 사랑했고, 그를 축복하려 했다. 그러나 리브가는 이미 태중에서 “형이 아우를 섬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직접 듣고 기억했기에 남편의 말을 거역할 수밖에 없었다. 옳은 뜻으로 사는 것에 우리는 끈질겨야 한다. 수천 년 지나 남녀평등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보자. 남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서, 남편의 힘이 두려워서 자기의 판단을 쉽게 버리고 있지 않은가?
어디 갈 곳이 없어서 무지막지한 욕설과 폭력의 가정에서 숨죽이고 사는 여성들이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살고 있는 교양있는 집안으로 보이는데 속사정은 엉망인 것에 놀라게 된다. 그 속에서 참으며 살아온 여성들의 공통점은 “어찌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태도이다. 남편의 행동은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여겨 포기하고 그런 대로 연명해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를 ‘욕설과 폭행을 견디고 무시당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낮춘 것이다. “나는 이런 욕설을 들을 사람이 아니다. 나는 얻어맞고 살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딸로,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를 포기한 어리석은 처사이다. 묵묵히 참고 사는 것이 남편 삶의 값어치도 낮추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딸인 자신을 사랑하며 평생 동행하는 남편을 하나님의 아들로 승격시킬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결혼생활 11년 동안 구타당하며 산 여성을 만났다. 맞고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남편에게 표현한 일이 있는가 물었다. 그랬다고 했다. 그런데 맞고 나서 도망도 해보았고 경찰에 신고도 했으나 결국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갔다고 했다.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 “정색을 하고 분명하게 말해보라”고 했다. 며칠 후에 다시 연락이 왔다. 남편이 또 때리려는데 손목을 잡고 “나 이제 맞고 살지 않겠다”고 정색하고 말했더니 정말로 때리지 않더라고 했다.
<지레짐작하지 말 것, 포기하지 말것>
안될 거라고 짐작하고 지레 포기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일이다. 자신의 느낌, 생각 그리고 판단을 분명하게 표현해보지도 않고 ‘이 사람은 어차피 그러려니’ 생각해,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사람에게 자기를 이해시킬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이라 공평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끈질기게 서로를 알리고 알려 하고, 이해하고 이해받으려 하고, 설득하고 설득 당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포기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끈질기게 노력하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제대로 예수 사람으로 사는 길이 좁은 길이듯이 하나님의 자녀로 건강하게 사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좋은 남편 만난 팔자좋은 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좋은 남편과 함께 사는 삶을 만들어가는 끈질긴 여성이 있을 뿐이다.
폭력을 피해 집에서 나와 쉼터에 머무는 여성들을 보면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데에 끝이 없다. 물론 나쁜 사람을 만나 살아온 험한 사정이 딱해서 긴 이야기를 들어주며 부둥켜안고 함께 울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 탓하고 팔자타령하는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상담이 끝나면, 건강을 찾는 것을 돕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이들 가운데 또 다시 비슷한 남자를 만나 불행을 반복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완전한 사람은 없기에 서로에게서 건강할 가능성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포기하고 참기만 해서는 진전이 있을 수 없다.
리브가같이 건강하고 성숙한 판단을 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적극으로 해야 한다. 결점이 있고 완전하지 못한 사람들을 탓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리브가는 하나님의 높은 뜻을 이루는 데 꾸준히 노력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고, 부족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에 노고를 아끼지 않고 뜻이 이루어질 소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끈질긴 건강을 누릴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마음의 건강이란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내려주신 선물이니 어찌 우리가 감히 포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