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길(1926.2.8.~1948.9.23.) 중위 포트레이트> 2021년 켄트지에 연필화, 곽재환 作.
<제주 4.3 항쟁과 문상길 중위>
그가 돌아 왔다. 하늘에서,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불과 2년 9개월 만인 1948년 5월.
그 푸른 하늘 아래에서 제주 산야를 피로 물들이며 무고한 주민 수천여명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그 피의 댓가로 대령에 진급한 연대장 박진경.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할 군인이 오히려 국민을 이다지도 무참히 살해하다니, 이런 빌어먹을...
진급 파티가 있던 그날밤.
참을수 없는 분노로 민족 반역자 박진경을 단죄하고 당당하게 대한민국 제1호 사형수가 된 중대장 문상길!!!
그가 하늘의 재판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72년만의 귀환이다.
임하댐 건설로 고향은 수몰되었고 가족은 모두 떠났지만, 그가 살던 집은 마령리에서 검암리로 옮겨져 있었다.
그곳은 전면이 나무널로 모두 막혀 마치 영혼이 머무는 집 처럼 보였는데,
그곳에서 지금 살고 있는 쥔장 전세호씨가 원혼을 부르듯 먹으로 석장승을 그리고 있었다.
그 부르는 소리가 까치 구멍을 통해 들렸던 것일까?
아, 그가 돌아 왔다. 우리곁에.
2020년 8월 23일 글 / 곽재환
다음은 문중위가 살던 고택으로 나를 인도한 안상학 시인의 시다.
<기와 까치구멍 집>
내가 한 일은 다만
1948년 그 사내가 안동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
제주 도민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암살한,
국군이 국민에게 결코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던
대한민국 제1호 사형수 문상길 중위
고향이 어디인지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향년 스물셋 사내, 고향은 안동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내력을 찾아낸 것
임하댐 수몰된 안동 마령리 이식골
남평 문씨 종갓집 막내아들, 그 사내가 살던 곳
그 사내가 떠난 곳,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곳
사내처럼 사라진 마을, 흉흉한 소문 떠도는
쉬쉬대며 살아온 일가붙이들 산기슭에 남은 곳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의 사진 몇 장 찾은 것
소년처럼 해맑은 사내의 마지막 웃음
두 손 철사로 묶인 채 나무 기둥에 결박당한 몸
가슴에는 휘장 대신 표적, 흑백사진 붉은 피는
두 눈 가린 채 목이 꺾인 사내의 최후 진술;
내 비록 미군정 인간의 법정에서는 사형을 받고 사라지나
공평한 하늘나라 법정에 먼저 가서 기다릴 것이다
내가 한 일은 다만 그 사내가 살던 집을 찾아낸 것
당당하게 살아남은 그 사내의 흔적
300년 문화재 기와 까치구멍집 건재한 사내의 생가
수몰을 피해 남후면 검암리로 옮겨 앉은 남평 문씨 종가
그를 기다린 40년 고향을 뒤로하고
1988년 옮겨 앉은 낮선 땅 32년, 기다리고 기다린
72년 만에야 불귀 주인 소식 전해들은 까치구멍집
무자년 사내가 가고 72년 만에 내가 한 일은 다만 그의 흔적을 찾은 것일 뿐, 고작 대문간에 막걸리 한잔 올리고 그의 죽음을 전하는 일이었을 뿐, 그 사이 하늘나라 법정에서 받아놓았을 그 사내의 판결문을 이 집 우체통에 전해주는 일은 그날 이후 남겨진 모든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음복주를 마셨다. 경자년 경칩 무렵, 복수초가 까치구멍집 화단에 피어 있는 날이었다.
ㅡ 시 / 안상학
<기와까치구멍집> 경북 민속문화재 69호. 경북 안동시 남후면 검바우길 28-3. 문상길 중위 생가. 임하댐으로 수몰된 마령리 이식골에서 이축했다.
현재 서향으로 배치된 전면이 모두 널로 막혀 있다. 집주인은 문화재 단청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전세호씨.
내부에서 본 까치구멍.
집주인 전세호씨가 그린 석장승, 이외 여러점이 있다.
앞줄 우측 맨 끝이 생전의 문상길 중위
제주 4.3 당시 제주도 주민
제주 4.3 당시 군경에게 붙잡혀 심문 받고 있는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