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선거권, 청소년 참정권 보장의 첫걸음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은 누구나 소중하며 존중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진가는 다수가 공동체의 운영과 결정에 참여하여 능동적인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발휘된다. 민주사회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모두가 동등하게 본인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사회이다. 따라서 민주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투표는 가장 중요한 국민주권으로 시민이 가진 강력한 도구이며,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참정권 확대를 통해 청소년들의 사회 참여를 촉진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다. 18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의 모든 권리를 담은 국제적 약속으로 1989년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생존·보호·발달·참여의 4대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참여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존중받을 권리로서 아동들이 학업이나 노동, 인권 등 자신들의 삶과 관련된 제도에 그들의 생각을 반영하도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선거연령은 1948년 만 21세에서 1960년 만 20세, 2005년 만 19세로 조정되어 왔다. 작년 12월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이제 만 18세 청소년들도 투표할 수 있다. 2020년 총선부터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 약 14만 명을 포함하여 학교 밖 청소년까지 18세 유권자 총 53만여 명이 새내기 유권자가 된 것이다.
선거권 개정은 정치·사회의 민주화, 교육 수준의 향상, 다양한 매체를 통한 정보 교류 등으로 만 18세 청소년들이 독자적 인지능력을 갖추고, 정치적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졌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선거권 확대가 어려웠던 이유는 청소년이 미성숙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을 거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기성세대들의 오해와 편견이다. 이미 청소년은 다양한 사회 참여를 통해 그 능력을 검증받아 왔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청소년은 우리나라의 주인이었다. 청소년들은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과 민주화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다. 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 세월호 진상 규명 집회,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 등에 이르기까지 현실 정치나 사회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와대의 각종 국민 청원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요즘에는 청소년들이 집단화하여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이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만 18세 선거권은 늦은 시작일 뿐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린다. 다양한 참정권 가운데 선거는 국민의 삶과 직결되고, 사회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만 18세 선거권으로 인해 우리 청소년들은 그들의 권리를 더 깊이 고민하고, 정치적 행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미성숙한 존재,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며, 미래 세대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동등한 시민이다.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의 사회참여 역량은 ‘청소년특별회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청소년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청소년특별회의, 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운영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 청소년특별회의는 청소년기본법에 의거하여 해마다 개최되는 회의로 2004년 시범회의를 거쳐 2005년 제1회 회의 이후 올해 15회를 맞이하고 있다. 전국의 청소년과 전문가들이 정책과제를 발굴하여 정부에 제안하는데, 그동안 정부에서의 제안과제 수용률이 평균 90%에 달한다. 이는 청소년의 제안과 정부의 정책 추진 요구가 일맥상통하게 추진되었음을 알려주며, 청소년들이 제안하는 정책과제가 현실적이고 타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은 대학입시에만 집중해 왔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투표권 행사, 선거 운동, 정책 검토 등의 선거와 관련한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식 위주의 정치교육은 민주시민을 양성하는데 한계가 있다. 단순히 선거권 나이를 낮추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청소년을 위한 민주시민교육과 정치교육이 필수적이다. 청소년들이 정치 참여와 선거권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선거권자로서의 판단과 선택이 존중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학교와 사회가 일상적으로 정치교육을 꾸준히 전개해야 한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 원칙이 소개되고, 이 원칙에 따라 수업이 전개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강제 또는 교화 금지, 논쟁성의 유지, 정치적 행위능력의 강화 3원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입식 정치교육을 지양하고 학생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관점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수업시간에 현실 정치에 대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토론하는 실질적 정치 수업도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흥사단 교육운동본부가 2015년부터 진행해 온 청소년 민주시민교육 모델인 ‘민주피아 프로젝트-영화를 통한 가치 덕목’은 교사의 일방적 가르침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함께 배우고 학습하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실질적인 교육이 진행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매뉴얼을 제시하고 보급해야 할 것이다.
제21대 총선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18세 선거권은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첫걸음이다. 민주정치를 활성화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청소년들의 의사 표명 활동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 더불어 학교와 지역사회, 정치 단체들의 유기적인 활동도 요청된다. 청소년을 주체적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배려해야 한다. 나아가 참정권은 모두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이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인 진화와 이를 주도할 잠재력을 가진 만 18세 청소년, 새내기 유권자의 등장에 주목해야 한다.
* 글 : 이은주 (교육운동본부 민주피아 전문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