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교회는 오늘, 곧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 다음 금요일인 오늘을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뜻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로 지냅니다. 그러는 가운데 특별히 교회는 오늘 모든 성직자들이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본받아 교회의 참된 일꾼, 하느님의 포도밭의 성실한 일꾼으로 충실히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 성심 대축일인 오늘을 ‘사제 성화의 날’로 정하고 모든 성직자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예수 성심, 곧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뜻하는 이 말은 오늘 복음이 전하는 광경,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가장 극적이며 동시에 가장 절정에 이른 사랑의 모습으로 전해집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최후의 순간을 전하는 요한복음의 말씀으로서, 요한 복음사가는 다른 공관 복음사가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십자가 상 죽음의 모습과 그 모습에 담겨진 의미를 보다 상세하게 전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단말마의 한 마디를 남기고 예수님은 숨을 거두십니다. 공관복음사가들이 이 모습을 전하고 예수님의 죽음의 순간에 대한 묘사를 멈추는 반면 요한 복음사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수님이 다른 십자가 처형의 죄인들과는 달리 다리를 부러뜨리는 당시의 관습을 거슬러 그 분의 옆구리에 창을 찔러 그곳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 모습이 구약의 시편의 말씀, 곧 시편 34편 21절의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었음을 말합니다. 구약의 메시아에 관해 예언된 말씀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모두 이루어졌음을 말하는 이 같은 모습은 동시에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표징적 모습을 통해 최초의 인간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하와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제 2의 아담인 예수님의 옆구리로부터 새 하와, 곧 교회가 탄생하였음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이 모습에 대하여 다른 학자들은 여기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물을 세례성사의 표징으로, 그리고 피를 성체성사의 표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의 모습에 관한 다양한 해석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는 바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모든 이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자 모든 이의 죄를 씻는 제사의 피로 바치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옆구리에서 흘리는 피와 물의 형상으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온 존재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온전히 내어놓은 희생적 사랑의 모습.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최후의 순간은 바로 이 사랑의 모습을 가장 극적이면서도 가장 절정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이 오늘 제 1 독서의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 안에서 젖먹이 아이를 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역시 표현됩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호세 11.1.4)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마치 젖먹이 아이를 품에 안고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사랑하고 계심을, 호세아 예언자의 표현 그대로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젖을 물려 먹을 것은 주는 그 모습으로 그 사랑을 묘사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은 인정의 끈으로, 그리고 사랑의 줄로 끌어당기는 어머니의 사랑 바로 그 사랑이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마음임을 오늘 제 1 독서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편 오늘 복음과 제 1 독서가 전하는 하느님의 이 같은 사랑은 오늘 제 2 독서의 사도 바오로의 말씀 안에서 다시금 확인되는데,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교회의 보네는 편지 글 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은총을 주시어,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에페 3,8-9.16-17)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은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주시는 분이며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각자의 내적 인간이 하느님 당신의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여 믿음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게 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 믿음의 기초를 삼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의지하고 믿고 바라야 할 분은 바로 하느님 그 분이시라는 사실, 오늘 말씀이 전하는 이 같은 진리를 오늘 화답송의 이사야서의 말씀이 다음의 간략한 한 문장으로 잘 정리하여 이야기합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이사 12,3)
우리의 힘, 우리가 기댈 굳은 의지처가 되어 주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 그러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구원의 샘이 바로 하느님 그 분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샘으로 가 영원한 목마르지 않을 물을 길어 마시는 것, 바로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최후의 순간,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가 바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구원의 샘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오늘 영성체송은 이 같은 말씀의 핵심을 잘 전해줍니다. 요한복음을 인용한 오늘 영성체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곳에서 생명의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요한 7,37-38)
목마른 이들은 누구나 와서 마실 수 있는 시원한 물을 주는 샘이 되어 주시는 분, 그 샘에서 생명의 물이 간물처럼 흘러나와 누구든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 이 같은 하느님의 사랑이 다음의 말씀으로 우리 모두를 부릅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지각을 완전히 뛰어넘는 초월적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복음 말씀이 전하는 예수님의 사랑, 곧 예수님의 성심에 우리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될 때,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자 원천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힘든 삶의 여정 속에 하느님을 믿고 바라고 희망하여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 믿음의 뿌리를 내림으로서 마치 나무가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려 땅속의 모든 양분을 흡수하여 무럭무럭 자라나듯이 여러분 역시 하느님 사랑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림으로서 여러분 모두가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언제나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특별히 모든 사제들이 그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전달자, 사랑의 선포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에페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