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소개
이웃을 향한 애정과 일상의 체험들을 녹진하게 그려낸 이 시집은 골목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고단한 삶에 공감하고 위안의 손길을 내민다. 열린 골목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삶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시인의 시심이 깊고도 넓다. 2023년 5월 30일 간행.
시인 소개
추필숙
동시집으로 『얘들아, 3초만 웃어봐』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 『일기장 유령』, 청소년 시집으로 『햇살을 인터뷰하다』 『어제, 생일』 등이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시작품 「얘들아, 3초만 웃어봐」가 수록되었으며, 오늘의동시문학상과 방정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추필숙책방을 운영하면서 글방지기와 책방지기로 살고 있다.
■ 작품 세계
추필숙 시인의 『골목 수집가』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분명하고 시집의 마지막 장에 이른 독자의 지점은 명확하다. 마주한 골목은 정감이 어려 있으며 그곳에서의 삶은 가난할지언정 비루하지 않다. 또한 골목 위의 존재는 연대의 가능성으로 충만하고 골목 곁을 지키는 마음은 따뜻하다. 물론 골목 안의 ‘나’는 조금은 위태로울지라도 골목을 살아간 시간만큼 골목 밖에서도 새로운 삶을 추인하는 강한 의지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골목은 우리가 가 닿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자리이자 시가 현존하는 장소인지도 모를 일이다. (중략)
골목을 떠나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 역시 또 다른 삶의 골목을 마련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삶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알기 위해 씨앗을 “묻고/햇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씨앗」). 길을 열어 새로운 골목을 맞이하는, 마중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하늘 한 페이지가 넘어가”기 위해서는 “삶은 언제나 끝에서 시작”(「늦 꽃」)한다는 말처럼 골목 끝을 골목의 시작으로 전유할 수 있어야 한다. 골목에의 정주(定住)가 골목에의 안주(安住)가 되지 않도록, 존재의 내밀함이 꽃 피어나도록 “엎어지고 포개지고 다시 물러나고 흩어”(「11월, 해파랑길」)짐의 세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열린 장 속에서 어떤 골목이 새로 마련될지 알 수 없기에 그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골목을 경험해본 존재라면 흔들림 없이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추필숙 시인의 시는 말하고 있다.
―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골목 수집가』는 추계 추 씨 추필숙 시인이 발품 팔아 엮은 사람책이다. “골목 서사의 명맥”(「담담 살롱」)을 집대성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삶의 행간에서 벌어지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현장 사연들을 잘 간추려서 담담하게 담았다. “오래된 골목은” “방향에 대해서 까다롭게 구는 법이 없”(「열린 결말」)으며, “담과 담으로 이어진 골목”은 “내 이야기와 네 이야기”(「담담 살롱」)가 담긴 추억의 오솔길이다. 수집한 골목 비사(祕史)를 털털하게 털어놓는 ‘담담 살롱’ DJ 추의 구수한 입담. 추필숙의 시심은 깊고 넓다. 그윽하고 평온하다. 방앗간과 우체통의 인연. 배꼽과 골밀도의 상관관계. 허리와 무릎 소리. 미장원 소파에 앉은 노파들이 전하는 이야기와 소문. 고양이와 가로등과 접시꽃 옵션. 못에 찔린 바퀴. 낙서와 금 간 담벼락. 인기 캐릭터 펭수 아닌 노을 방앗간 집의 줄어든 평수(坪數) 이야기. 사돈의 팔촌 같은 아파트가 아닌 이웃사촌인 골목의 사연을 음악처럼 전하는 시인 추필숙은 말한다. 굴곡진 막다른 골목일지라도 판도라의 상자 속 희망처럼 ‘열린 결말’이 있다. ― 김춘남(시인, 한국동시문학회 이사)
■ 시집 속으로
골목 수집가
추필숙
오늘은 민무늬 골목에 다녀왔어요
골바람이
앙상한 몰골로 골목을 지나가네요
사족이 덕지덕지 붙었으나
끊어낼 수 없는 잔소리 같은 모습으로요
한때는 잡초를 사족이라 생각했어요
더러 쉼표처럼 싹을 틔운다고 반긴 적도 없지는 않았지요
오후엔 꼬리가 아홉이라는 가로등이
주인공으로 나올 막장 드라마가
이 골목을 배경으로 찍는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무명이 길어 공백을 견디기 힘들다는 바로 옆 골목은
내일 가보려고 해요
조금 전 모퉁이에서 만난 유모차 한 대
백미러도 없는데 자꾸 곁눈질하며 아직도 지나가요
빈 상가 앞에서
골목의 주인처럼 앉아 있던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생선 꼬리에 대해 캐물어요
신발가게 여자가 끄는 신발엔 자꾸 돌이 들어가나 봐요
한 발로 서서 다른 한 발을 탈탈 털어내네요
그러고 보니
민무늬도 무늬라는 걸
조금씩 옮겨 다니는 골목의 무늬라는 걸
골바람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