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9)-맥주 세 병 안주 하나
- 숫자에 유의하라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수필에 숫자나 근거 없는 수치를 가능하면 쓰지 말라. 수필문에서는 때로 통계나 수치를 논거로 들어 설득을 하는 수가 있다. 통계나 수치를 논거에 잘 활용하면 훌륭한 설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논거에 도입한 수치가 근거도 없고 부정확한 것이라면 쓰지 않은 것만 못하다. 별종이 아니라면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숫자를 보며 머리가 아팠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글쓰기에서도 숫자가 너무 많이 나오면 독자의 뇌세포는 꼬이게 마련이다. 글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거나 명확하게 하기 위해 쓴 숫자가 오히려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사실 문장 표현이 조금 어색하거나 잘못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읽는 사람이 전후 문맥을 살펴 필자의 뜻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숫자의 경우 사정이 달라진다. 국가 예산이나 대기업 매출액을 기록할 때 0을 한 개 뺐다고 생각해 보라.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이 된다. 단위가 틀리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간에 있는 숫자가 틀리는 경우는 글을 쓴 사람을 제외하고는 잘못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오류를 막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가급적 숫자를 쓰지 않는 것이다. 초보 글쟁이일수록 숫자를 나열하려는 강박감을 갖기 쉽다. 반드시 써야 한다면 거듭 확인하는 게 둘째 방법이다. 숫자에 뇌세포를 온통 집중해야 한다. 숫자와 관련된 표현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두 배’ ‘세 배’ 같은 배수만 나오면 헛갈리는 사람이 많다. ‘몇 kg 늘었다’ 또는 ‘몇 % 늘었다’고 할 때는 잘 계산하다가도 말이다. ‘배수의 덫’이라고 할까.
다음은 뚜렷한 근거도 없는 수치를 막연하게 도입하여 신뢰감이 떨어진 문장의 예이다. 과연 300년이라는 한정적인 수치를 써서 계급의 유무를 구별지을 수 있을까? 이 경우, 봉건 시대까지만 하여도 계급의 구별이 뚜렷하였다와 같이 반론의 여지가 없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역사와 관계되는 수치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역사적 현상은 확정적인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 과거 우리는 생활이 어려운 나머지 경제 성장에 주력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약 4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2)는 과거의 시점이 언제인지도 불분명하고약 40년이라는 수치의 정체가 묘연하다. 차라리 수치를 앞에 써서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와 같이 쓰는 것이 좋다.
(3) 2년 전보다는 1년 전이, 1년 전보다는 지금이 여러 면에서 더 개방되어 있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예문 (3)은 ‘해가 다르게 사회가 개방되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을 지닌 문장이다. 굳이 수치를 쓸 필요가 없는 문장에 억지로 수치를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유치하게 보일 수 있다.
숫자를 쓸 때 거듭 확인해야 한다. 공정성 문제가 나올까 봐 안건 모두를 위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했다.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했다.) 한 대학이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으로 선정되는 데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다룬 기사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과반수 이상’은 잘못이다. 과반수는 ‘반을 넘는 수’를 뜻하기 때문에 ‘이상’과 같이 쓸 수 없다. 아래 예문도 마찬가지다. 이사회에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사회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여기서 ‘과반수’와 ‘절반(2분의 1) 이상’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이사회 구성원이 20명이라면 과반수는 최소 11명이고, 절반 이상은 최소 10명이다. 물론 이사회 구성원이 21명이라면 과반수나 절반 이상은 최소 11명으로 같다.
%와 %포인트도 구별해야 한다. 정당 또는 후보자의 지지율이나 펀드의 수익률을 나타낼 때 한 문장에서 두 단위가 함께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을 정도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는 비율 또는 변화의 정도를 나타낼 때 사용한다. 기준을 100으로 할 때 비교 대상이 얼마냐를 따지는 것이다. 은행의 순이익이 2006년 13조5000억원에서 2007년 15조원으로 증가했다면 증가율은 약 11%다. 은행의 수입 41조원 중 이자수입이 31조원, 비이자수입이 10조원이라면 이자수입의 비율은 75%다.
%포인트는 %단위끼리 비교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에서 정당의 지지율이 1월에 30%이던 것이 2월에 20%라면 “한 달 만에 10%포인트 떨어졌다”고 쓴다. 만일 여기서 10% 떨어졌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30%의 10%인 3%가 떨어졌다는 뜻이 되므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학자금 대출금리가 지난해 6.6%에서 올해 7.6%로 높아졌을 때는 “1.0%포인트가 올랐다”고 표현한다. 실제 상승폭을 따지면 6.6%의 15%가 오른 것이다. 이처럼 숫자와 관련된 표현은 잠시만 딴생각을 하면 틀리기 일쑤다. 다음 예문을 보며 %와 %포인트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아두자.
법원에 따르면 합의부 가사사건 182건 가운데 74.7%인 136건이 조정을 통한 화해로 해결됐다. 이는 2006년 같은 기간 30.9%(139건 중 43건)의 조정 화해율에 비해 43.8%포인트 높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