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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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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민족 역사(조선시대 및 그 이전) 스크랩 고조선의 갈석산을 찾아서(제2회) <본래의 갈석산에 대한 기록들>
사람이 하늘이다 추천 6 조회 546 14.11.19 11:37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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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4.11.19 14:42

    통일이다님 반갑습니다. 갈석산을 두 번이나 다녀오셨다니 부럽군요. 혹시 중국에 거주하시나요? 안내를 해주시겠다니 너무 고맙습니다. 한번 기회를 만들어봐야겠습니다.

  • 14.11.19 16:39

    문헌사학의 정도를 걷는 아주 견실하고 제대로된 사학논고라 생각됩니다. 모처럼 정독해서 읽었습니다. 계속 건필하시길...
    아래는 구한말 출간된 <大東歷史>라는 사서에 보이는 위만 관련 기사인데 출처불명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내용이 기이?하고 디테일해서 참고삼아 올립니다.
    "연(燕)의 투항인 위만(衛滿)을 박사(博士)로 삼아 서쪽 변경을 지키게 했다. 애초에 연(燕)의 진개(秦介)가 침공해 서쪽 땅 2천리를 취하고 만번한(滿藩汗)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 연(燕)이 관리를 두고 장새(障塞)를 쌓았는데, 진(秦)이 연(燕)을 멸하고 장성(長城)을 쌓아 요동(遼東)에 이르게되자 연(燕)과 진번(眞藩)이 비운 그 땅으로 관새(塞)를 삼아

  • 14.11.19 16:39

    외곽경계(外徼)에 속하게 했다. 한(漢)이 일어나 노관(盧綰)을 연왕(燕王)으로 삼았는데, 진번(真番)이 쌓은 장현(鄣縣)이 멀어서 지키기 어렵게되자 그를 버리고, 다시금 요동(遼東)의 옛 요새(故塞)를 보수하여 패수(浿水)까지로 경계를 삼았다. 진번(真番)의 땅은 다시 조선(朝鮮)에 복속되었는데, 이에 이르러 노관(盧綰)이 한(漢)을 배반하자 한(漢)이 병력을 보내 그를 공격하니 노관은 흉노(匈奴)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 신하인 위만(衛滿)은 망명도주하되 무리를 모아서 상투를 틀고(椎䯻) 동이의 옷차림(夷服)을 하고 동쪽으로 달려서 관새(塞)를 빠져나와 패수(浿水)를 건너 투항해 왔다. 관후한 용모와 아첨하는 말(阿容諛言)로 왕의

  • 14.11.19 16:40

    @얼캐쉰 뜻에 잘 영합하니 왕이 총애하여 매우 후하게 대우했다. 하대부(下大夫) 단통(單通)이 왕에게 간하여 말했다. “독초의 맛이 오히려 달고, 벌레(微蟲)의 피해가 틈을 냅니다. 위만(滿)의 사람됨이 공겸(恭謙)이 지나치게 과하여 반드시 속이 간험(奸險)하리니 신용해선 안됩니다.” 왕이 노하여 말했다. “만(滿)이 길이 막히고 형세가 외로워 적심(赤心)으로 투신해 왔거늘 오히려 의심을 하면 어찌 인물을 용납하겠는가? 너는 여러 말 하지마라.” 단통(通)이 물러나오며 탄식하였다. “천년신기(千年神器)가 반드시 망우(亡虞)의 가시손(棘手)에 각축되리라.” 위만이 이를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기회를 틈타 왕을 설득했다. “신(臣)은

  • 14.11.19 16:45

    @얼캐쉰 연(燕)에 오래 살아서 요북(遼北)의 지리를 소상히 알고, 또한 한(漢)과 호(胡)의 사정에 익숙하니, 바라건대 변경에 나가 진수하며 감히 견마(犬馬)의 노고를 다 하고자 합니다.” 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경이 이 임무를 맡으면 서북은 근심이 없으리로다.”하고는 곧 박사(博士)로 삼아 규(圭)를 하사하며 땅 백리를 봉(封)하여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이에 위만(滿)이 진(秦)의 옛 공성(空城)인 상하장(上下鄣)에 거주(居)하였다. [요동(遼東) 락랑현(樂浪縣)에 운장(雲鄣)이 있다] 以燕降人衛滿爲博士使守西鄙. 初燕秦介之入寇也取西方之地一千里至滿潘汗爲界燕爲置吏築障塞及秦滅燕築長城至遼東以燕眞番空其地爲塞屬之外徼

  • 14.11.19 16:41

    @얼캐쉰 漢興封盧綰爲燕王(漢封盧綰在哀王二十年漢太祖五年己亥)爲眞番築鄣縣遠難守棄之復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按浿水在遼東之西遼河甚衆浿水其一也)眞番之地復屬於朝鮮至是綰叛漢漢遣兵擊之綰亡入凶奴其臣衛滿亡命聚黨椎䯻夷服東走出塞渡浿水來降阿容諛言善逮王意王寵遇甚厚下大夫單通諫王曰毒草之味反甘微蟲之害生隙滿之爲人恭謙太過中必奸險不可信用王怒曰滿途窮跡孤以赤心來投反生疑忌何以容物汝勿多言通出歎曰千年神器必角於亡虞之棘手滿聞之大懼乘間說王曰臣久在燕深知遼北地理且諳漢胡之情願出鎭邊疆敢竭犬馬之勞王大喜曰卿當此任西北無憂矣乃拜爲博士鍚圭封之百里守西鄙於是滿居秦故空城上下鄣[遼東樂浪縣有雲鄣]

  • 작성자 14.11.19 21:01

    <대동역사>는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쓰신 역사서이군요. 적어주신 글의 내용이 흥미롭기는 하나 출처불명이라 아쉽네요. 그리고 적어주신 원문에는 진개가 서쪽 땅 1천리를 취했다고 했는데, 해설에는 2천리로 되어 있군요. 어느쪽이 맞나요?

  • 14.11.19 22:50

    @사람이 하늘이다 인용한 <대동역사>는 단재선생이 아니라 정교(鄭喬)라는 분이 폅집한 역사서로 알고있습니다.
    진개 침공은 확인해보니 원문에는 1천리로 되어있는데 아마도 해석중에 2천리로 잘못 옮긴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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