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 부활이 내 부활인가?(고전15:20, 요15:4-5)
2024.3.31 부활절,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부활에 대한 짦막한 동영상을 먼저 보고 말씀을 시작한다.
** 영화 "예수"에서 부활하시는 장면 : https://www.youtube.com/watch?v=onzjJ0YvU7w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절이다. 십자가는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고, 부활은 그 죽음마저도 이겨내신 사건이다. 이 복된 부활절에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 모두와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 지역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부활(復活, Resurrection)이란 글자 그대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심은 특징이 있다. 그것은 죽음 이전의 모습으로 살아나셨지만, 그 이전의 몸과는 달리 영원히 썩지 않는 신비한 몸으로 변하여 살아나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일반적인 몸과 구별하여 “부활체”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던 나사로(요11장)나 임사를 체험한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살아난 후에 모두 다시 죽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타종교에서 주장하는 환생이라는 것과도 다르다. 타종교에서 주장하는 환생은 죽은 자가 다른 몸이나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전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났으되, 영원히 썩지 않는 신비한 부활의 몸으로 살아나셨다. 인류의 역사에서 부활체로 살아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렇기에 오직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죽음마저도 완벽하게 이겨내신 분만이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신의 죽음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존재는 다른 사람의 죽음의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예수님의 부활을 대해서 말할 때, 어떤 사람은 이런 종류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이 지금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의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예수님의 부활을 나(우리)의 부활이라고 할까? 바로 이 점이 부활절인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하고, 믿음으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적용하며 살아가야할 핵심이다.
예수님이 부활이 내 부활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영적으로 볼 때, 예수님과 성도들은 한 몸(One Body)이기 때문이다(골1:18, 골3:15, 엡5:23, 골2:19, 예수님은 머리, 성도들은 지체). 이것이 신약성경의 교회의 개념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인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나,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the first fruits)”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이것을 오늘 설교의 또 하나의 본문인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은 포도나무의 원줄기와 가지에 비유하셨다. 언뜻 생각하면, 부활절과 포도나무 비유가 무슨 연관이 있을지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포도나무 비유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날(고난주간 목요일)에 미리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죽기 전에 미리 주신 말씀들은 실제로 죽음과 그 이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믿게 하기 위함이셨다(요13:19, 요14:29, 요16:1, 요16:33, 막13:23, 마24:25). 이는 부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예언의 말씀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13:19)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포도원의 농부라고 하셨고, 예수님 자신은 참포도나무이고, 우리들은 원줄기에 붙어있는 가지라고 말씀하셨다(요15:1-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이 말씀은 쉽게 말하면, 주님과 우리는 한 나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주님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성도들은 그 몸의 지체라는 개념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라는 말씀과도 상통한다. 그렇기에 포도나무의 원줄기 이신 예수님의 죽음은 곧 가지 된 나(우리)의 죽음이고, 원줄기이신 예수님의 부활은 곧 가지 된 나의 부활인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께 붙어있는(=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이 장차 예수님의 부활체처럼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것은 부활뿐만 아니라 승천과 재림도 역시 동일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들을 통해서 이렇게 강조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4-7)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한 몸이고, 한 나무이기에 예수님의 부활이 곧 내 부활이라는 것을 명확히 깨달았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해 진다. 그것은 우리는 포도나무의 원줄기인 예수님께 잘 붙어있는 것이다. 십자가에 딱 붙어 있으면, 십자가 때문에 주님의 능력은 내 능력이 된다. 생명의 원줄기인 예수님께 굳게 붙어 있으면, 예수님의 생명은 내 생명이 된다.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힌다. 반대로 원줄기에 붙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님은 이 점을 강조하신다(요15:4-5). 다시 한 번 믿음으로 본문 말씀을 읽어 보자.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께 잘 붙어있는 것인가? 믿음이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듯이, 구원의 유지도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긴다(롬10:17). 이것을 주님은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지금까지 말한, 예수 부활이 내 부활인 이유와 풍성히 열매 맺는 방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한 몸이고, 원줄기와 가지처럼 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2) 그렇기에 우리는 원줄기에 계속해서 잘 붙어있으면 된다. 그러면 풍성한 열매가 많이 맺힌다.
3) 그런데 이처럼 원줄기에 계속해서 잘 붙어 있는 방법은 믿음이다.
4) 그리고 이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부터 온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5)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듣고, 묵상하여 그 말씀을 내 안에 거하게 해야 한다. 또한 내 마음에 거하는 그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님께서 이루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들이 부활의 첫열매되신 예수님처럼 영원한 부활체의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하기 위해생명의 원줄기이신 예수님께 굳게 붙어 있자. 그 첫걸음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영접하는 일이며(요1:12), 그 후에는 날마다 말씀 안에 거하면서 끝까지 믿음의 길을 쭈~욱 가야한다. 만약 이 믿음을 상실했거나, 약해진 사람은 즉시 방향을 돌이켜서 주님 품에 다시 안겨야 한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부활이 나(우리)의 부활됨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