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전정하고 난 후 봄이 오자 두 사람의 손길이 스쳐 간 나무는 시위라도 하는 것인지 소량의 꽃이 피더니 열매를 달지 못했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아픔을 알려 주려고 했던 걸까. 격년결과(隔年結果)로 해거리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머니는 꽃이 적게 맺고 열매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절화(折花)를 가까이하다 보면 이미 잘려 나온 것에 대한 연민이나 안쓰러움이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일이다 보니 감내해야 하는 감정이라 그 다음 예술적 승화를 생각하며 작업에 임한다. 하지만 매화나무 전정을 할 때는 절화에서 느끼는 것 보다 그리 편치는 않았다. 나무의 상황을 보고서야 살아있는 것에 대한 연민이 가슴에 와 닿았다. 때로는 나무의 정전이 당연하다 할지 모르나 어머니와 함께 한동안 마음 졸인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가지를 치는 일을 선뜻 나서서 하지 못할 것 같다.
한 해의 봄을 침묵으로 보낸 매화는 해거리를 한 후 다시 봄을 맞았다.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닿았던 것일까. 지난해 봄, 잎만 무성하던 매화나무에 가지마다 볼록하게 꽃이 맺히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어머니의 시름을 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매화는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전지한 자리에도 직선으로 향한 가지가 세상 높은 줄 모르고 위로 뻗고 있었다. 새순이었다.
<하지윤 >
『문학공간』 시인상.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가협회. 엣세이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