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8막59장 (6부)
"정"이는 결혼후 얼마만에 일본 교토로 이사를 갔다.
한서방의 직장이 일본 교토의 회사로 발령되었고 기계설비의 선진국인 일본에서 많은 경험과 지식을 배우라는 하명을 받고 "정"이는 한서방을 따라 혈혈단신 불모지나 다름없는 일본으로 이사를 간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조센징"이라 한국인을 업신 여기는 일본으로의 이사는 밀림속을 탐험하는 모험 같았다.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잘사는 선진국이다.
(※추후 일본에 대해 자세히 말하겠읍니다.)
그리고 인사성 밝으며 친절하며 여자는 남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전통이 있고, 지진과 해일로 바람 잘날 없는 국가였다.
제2차세계대전중 동남아와 환태평양을 정복하는 전성기 시대도 있었으나 미국으로 부터 핵폭탄을 두번 맞고 항복하며 패전국으로 전락한 비운의 국가 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면과 성실 단합으로 뭉쳐진 국민성은 영국및 몇몇 국가가 신봉하는 황제 제도를 유지하며 특히 일본은 황제를 "천황"이로 칭함과 동시 "하늘 같은 황제"라며 절대 복종하는 여왕벌 같은 국가였던 것이다.
그들은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높은데도 작은 주택과 작은차를 선호하였다.
우리는 아파트 평수와 길거리에 다니는 자동차로 부를 과시하나 일본은 우리와 정반대 였다.
그들은 검소함이 몸에 배웠고 절대 자동차로 부를 과시하거나 주거지 평수로 부를 저울질 하지도 않는다.
"정"이가 그런 국가로 이사를 간것이다.
검소함과 단합력이 세계 으뜸인 선진국인 일본으로의 이사는 어찌보면 잘된것이다.
한국에서는 경험해 볼수 없는 선진국의 예법을 터득하고 그들만의 삶의 공간을 엿보며 인생의 철학을 배워갈수 있는 기회이니 말이다.
그리고 올해 "정"이는 산고끝에 교토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딸네미를 낳았다.
"한채담"
나중에 명명된 외손녀의 이름은 참으로 예뻤다.
발음 하기도 편하였고 이름 만치 깜찍한 사진이 대한 해협을 건너 날아 올시면 인형 같은 외손녀의 사진을 보며 감격에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그리고 한달여 "정"이의 뒷수발을 하여준" 아내와 한서방" 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뿐 입니다.
"모두 타지에서 고생하셨읍니다."
올해는 겹경사가 생긴 해다.
"정민이"의 돐잔치와 더불어 일본 교토에서 날아온 "채담이"의 탄생으로 우리 가족은 행복이 넘치고 즐거움이 즐비하고 얼굴에는 함박꽃이 만개하는 시발점이 되는 해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