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의 실종신고
밤을 팔거나
어둠을 따는 유통구조는
햇김에 참기를 바르듯 빤지르르하다
코르크 마개가 기억을 더듬자
프랑스산 나폴레온 코냑 세 병이
푸석대는 알프스를 핥는다
혀는 휘어서
활처럼 휘어서
갈고리 달린 작살처럼 휘어서
누구 하나 꿰기만 하면 결단 나겠다
갈라진 입술이 희도록 뺨 한번 맞고 싶다
내 발긴 생선처럼 피를 쏟고 싶다
나의 시간은 힘이 모자라
마른 안주를 삶아먹은 불빛과
두 사람의 어깨가
한 사람의 어깨를 낚는다
골목과 간판의 이름들이 꼬리를 꿴다
실종신고의 신호음이 물귀신 소리로
불가능을 모르는 알프스를 토악질 한다
쌍봉사* 범종 앞에서
낯 선 곳에서 길을 잃다가
난 길 속에서 발자국을 누른다.
한낱 시 한 줄 낯설지 않으려
뼈만 남은 몸이 등불을 켜든다
사자산* 바람과 비는
부처를 탓할까 두려워 텃밭에 소채를 다듬고
한 천 년 다 핥지 못한 목덜미를
한사코 둥글게 핥고 있다
빛나는 형체로 가부좌를 틀고
목숨의 핏줄을 말려 득음을 보려는가
가끔 산도 넘지 못하는 빈 목숨을 넘기려는가
한 벌의 옷을 벗겨 나비가 되는 꿈이 여문다
당신
무엇으로 시를 쓰는가?
무엇으로 시를 덮어 뼈마디 저리도록 길을 내는가?
쌍봉사*/전남 화순(본인의 고향)의 고찰
사자산*/쌍봉사를 품어안은 영산
-무엇으로 시를 쓰는가? 무엇으로 시를 덮어 길을 내는가?
한밤을 지새며 내게 던지는 화두는 결국 두 마디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문학단체가 있고 수많은 동인지가 있고
수수많은 문인들이 있습니다. 밤새워 쓴 두 시로 던지는 화두는 <방황>입니다.
하나는 육신과 또 하나는 영의 <방황>을 내려놓습니다.
내가 겪었거나 겪을 길들에서 누군들 <방황>없이 길을 냈겠습니까?
<방황>의 끝에는 망설임이 있지요. 망설임이 설렘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회의로 귀착되기도 합니다.
"용기있는 사람만이 절망할 수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현실적 고통과 고뇌의 극복 없이 절망은 극복될 수 없다"는
단언 앞에 늘 숙연해지는 삶입니다.
"기회의 땅은 아무곳에서나 열리지 않는다"는 말을 신봉하면서
팔도문학의 앞날을 기약해 봅니다.
초등 소풍 때마다 다녀오던 내 고향 쌍봉사 범종 앞에 설레거나
지친 발거음을 놓던 마음으로, 나와 문우님들에게 작은 화두를
놓아 봅니다.
10월 하고도 9일 한글날 아침에...
첫댓글 위 두가지 방황이라는 화두가 왠지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방황, 그 방황의 끝이 망설임으로 절어있기도 하니까요 왤까요?
즐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