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가 막내아들은 취급도 안 하고 사무엘 앞에 아들 7명을 다 지나가게 했으나, 아들이 그게 다가 아니었죠. 아버지 이새의 입장이 여기에 개입이 됩니다. 인간의 뜻이 개입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사례를 하나님께서 뽑아내는 거예요. 인간의 생각 곧 그것이 마귀의 생각. 인간의 생각 곧 그것이 하나님께 반대하는 생각. 이 사실을 인간들이 모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을 벌이시면서 꼭 뭘 들추어내느냐 하면은, 인간의 생각을 자꾸 동반시킵니다.
근데 그 인간의 생각을 동반시킬 때 목적이 있어요. “그래서 니가 엉터리잖아.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모든 생각들이 하나님의 생각과는 틀어지잖아. 아니잖아”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 속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님, 하나님의 뜻이 아님, 하나님이 뜻이 아니니까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것이죠. 이것이 나온다는 말은 반대되는 생각이 안에 잠복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눈에 보이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반대되는 뜻이 여기에 합류되어 있는 겁니다. 이게 기쁜 소식이에요.
그래서 성경 전체의 원리가 뭐냐 하면은 지옥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천국은 안 보이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지옥이라는 사실을 모르게 되면, 지옥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가는 천국은 전부 다 지옥의 한 골목, 한 부분이 돼요. 왜냐하면 인간들이 기대한다, 희망한다, 참 기대, 희망이 문젯거리에요. 이게. 인간은 이거 없이는 못 살거든요. 또 하나 인간은 보람을 느낀다. 기대, 희망, 보람, 이런 인간의 속성은 그 취지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은 나는 이기리라! 끝까지 싸워서 이기리라! 끝내 이기리라! 인간은 이길 필요가 없어요. 주는 대로 받아 처먹으면 되지. 지가 왜 독자적으로 이겨야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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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 질래, 앞에 ‘나’가 있어요. 성경을 아무리 동원하고 해석을 해도 이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해요. 니 때문에 내가 치인다는 겁니다. 인간들 때문에 내가 치여서 못 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은 선지자가 고난 받는 길입니다. 인간들은 기대, 희망, 보람이 자기의 본성이니까, 본성은 본능이거든요. 본능적으로 나오는 것이 주님을 힘들게 하는 것만 나와 있어요. 주님이고 뭐고 나만 이기게 해주면 까짓것 다이아몬드가 문제겠습니까? 바치겠습니다. 헌금. 이런 식이에요.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은 뭐냐 하면은 구약에서 나오는 이 경우들을 인간들이 너무 감정적이고 평범한 삶들이 나열되어 있거든요. 그걸 굉장히 흉내를 내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때 그거 하나님을 사랑하면 되지. 이래 돼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한다고 인정하는 사랑과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과 별 차이점을 못 느낍니다. 흉내를 내기 때문에. 성경대로 흉내를 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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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은 차기 왕을 뽑기 위해서 오긴 왔는데, 그럼 후보감을 제시할 때, 여기에 인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다 동원시킨 겁니다. 적어도 7명 가운데는 있겠죠. 후보감을 넉넉하게 정한 거예요. 그런데 후보감 전체가 거부당한다는 것은, 인간이 끄집어낸 모든 생각과 뜻은 하나님께서 일단은 거부하고 가는 거예요. 거부하고. 인간의 보기에 대수롭지 않고 그렇다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거부하고 가는 거예요. 여기서 다윗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근데 다윗을 커버하고 있는,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죠. 인간의 뜻이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그냥 다윗에게 피해서 가면 되는데, 사무엘도 모른다니까요. 사무엘조차도 이 커버에 장벽, 스크린에 막히도록 만든 거예요. 하나님께서.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이 된다는 것은 심지어 선지자의 마음까지라도 거기에 보탬이 되지 않고 참조되지 못하도록 막아버리는 겁니다.
우리가 보통 교회 올 때, 저 형제는 천당 간다, 저 형제는 지옥 간다, 이렇게 판정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판정이 지금까지 자기가 알던 사람에 대한 판정이에요. 알던 사람에 대한 판정. 예를 들어서 흉악한 인간인데, 예수도 안 믿는데 교회 나왔다. 누가 봐도 저거는 가룟 유다 같아서 지옥 간다, 라고 한 것이 4월 30일인데 5월 1일에 은혜를 받았어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필 5월 1일에 은혜를 받아서, 4월 29일에 은혜를 받았으면 4월 30일에 그런 평가를 안 내리는데, 일단 모든 인간의 평가는 결론지어졌어. 쟤는 안 돼!
근데 5월 1일에 그 사람을 새 사람 만들었다면, 이것은 한 개인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뜻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 종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소유화시킬 수 없다는 거예요. 인간은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그걸 분명히 하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부터 줄곧 내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다는 그런 건방진 생각은 못하게 만듭니다.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이 개입하고 있는 이상은, 내가 아는 하나님의 뜻을 내가 소유화시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구원파가 이단인 것입니다. 언제 구원받았다는 그 생각, 그 생각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일방적인 생각이에요. 하나님과 거래한 거라니까요. “하나님. 구원주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이거 죽을 때 가져가겠습니다.” 이래 돼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그다지 하나님이 필요치 않잖아요. 그 다음부터는 구원받은 사람이 알아서, 지가 알아서 하면 되거든요. 이거는 구원파도 그렇지만 기존의 소위 정통 장로교 합동측, 침례교, 감리교, 개혁주의 신학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이 일단 성령 받아 구원받았으면,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성령 받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이래 나와 버려요. 그게 성화론이라 이 말이죠.
누구 마음대로 지켜요?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 지도 모르는데 뭘 지켜요? 억지가 된 거예요. 지키지도 못하면서 지켰다고 우기는 겁니다. 복음이야기 하니까, 다 안다는 거예요. 뭘 알아요? 어제의 나를 믿지 말아야 되는데,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스크린 역할을 해요. 오늘 주신 은혜를 어제의 내가 훼방하고 있다 이 말이죠. 늘 버림을 받아야 새로움이 오는데, 버리지 않으니까, 새로움이 튕겨져 나가버린다니까요.
그래서 오늘 첫째 시간은 버림받은 자에요. 다윗이 버림받은 자에요. 공식은 뭐냐 하면은 지옥을 거치지 않으면 천국은 보이지 않는다. 버림받은 자는 어디에 가느냐? 지옥에 가잖아요. 지옥을 먼저 이 세상에서 다윗으로 하여금 경험케 하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게 인간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구원이기 때문에 그런데, 말씀 구원이라고 제가 그냥 내뱉어버리면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죠.
창세기 8장을 한번 봅시다. 20절,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졍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지금 누가 봐도 노아는 살았어요. 사람들이 어디에 꽂혔는가 하면은 다른 사람은 다 죽었는데 노아는 살았대. 노아 본인은 참 다행이다. 참 좋겠다. 여기에 꽂혀 있잖아요. 노아도 인간이고 우리도 인간이니까 우리도 노아처럼 되면 좋겠다, 라는 것에 꽂혀버리니까 제단을 쌓았다는 것을 놓쳐버린 거예요.
이미 성경을 볼 때 사고방식이 은근히 노리는 것이 있어요. 자기 이익과 자기 행복과 자기 운명을 확고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인간의 욕심인데, 이게 욕심인줄 몰라요. 인간이 구원받겠다고 하는 것이 욕심이에요. 목사님, 마귀일이 뭡니까? 라고 물으면 답변은 딱 하나에요. ‘나를 위해서’ 하면 다 마귀일이에요.
하나님의 관심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왜? 자기를 부인하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십자가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십자가에요. 십자가 백날 안다고 해도 십자가를 이용해서 자기가 구원받겠다고 하는 것은, 그건 십자가 근처도 안 간 사람이에요.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악마의 일이에요.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을 근사한 종교적 형식으로 만든 단체가 뭐냐, 교회잖아요. 교회가 마귀 일을 하는 단체가 되는 것은 거기에 온 사람들 전부 다 자기이익을 위해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요. 목사부터 해가지고. 심각한 문제에요.
첫댓글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장 7-9절.
"인간 구원이 아니라 말씀 구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