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제71회 / 이명자)
온갖
악행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지르면서 잘난 척 얼마나 날뛰었던가. 그런 자식에게 따귀를 얻어맞았던(빚을 갚지 않는다고.) 증오스런 장면을 나는 내 발바닥 중앙지점 오목하게
들어 간 곳에 숨겨 놓고 있었다. 때를 기다렸다는 말이다. 한방에
두 배 세 배로 나의 증오심을 분풀이 하는 날이 오기를 말이지. 그리고 했다. 나는 죽은 녀석의 복수를 해주었다. 더불어 발바닥 오목한 곳에 간직해
두었던 나의 증오심도 간접적으로(내 힘으로는 피터를 걷어찬다거나 밀어부친다거나 할 수 없어서 말이지. 변명치고는 너무 어수룩하지만 내게 뭔 힘이 있었겠는가.) 복수해
주었다. 솔직하게
털어 놓자면; 나는 경찰들과 모종의 협상을 했던 것이다. 고발하는
자에 대해 일체의 비밀을 지킬 것과 향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시는 협상 테이블에 나를 부르지 않기로 말이지. 협상은
지켜졌고 디-데이는 정해졌고..... 피터는 무기를 지녔고
마약을 지녔고 천하가 공노할 가장 사치스런 생활을 대학생 신분으로 함부로 하고 있었으니까..... 경찰의
눈이 번뜩인 것이 피터를 검거하는데 팔십 프로 정도 나의 고발이 이십 프로 정도 기여했다. 그리하여
피터는 제 운명대로 산 것인지..... 가혹하게 운명을 끝낸 것인지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목메어 자살한 피터 자신도 말이지. 피터가
자살했던 곳에는 여러 가지 마약이 나뒹굴고 있었으나 중독자들은 자살에 용기가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 이름 밝히고 싶지 않은 억울하게 생을 마친 녀석과 피터 중 세상은 누가 피해자라 피의자라 지목 할 수 있을까. 나의 어머니는 늘 이렇게 나에게 완곡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가 피해자야. 마약을 만들어 내는 그 악마들을 씨도 남기지 말고 처단해 버려야 돼. 어린 너희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재민아 좀 돌아다 봐. 너희들은
악마들에게 이용만당하고 있을 뿐이야.” 그러나
어머니의 말은 한 번도 사실이 아니었다. 나를 예로 들더라도 나는 피해자도 아니고 피의자도 아니니까. 마리화나는 쓸데없이 욱하는 신경질을 토닥여 주어 눈동자에 사랑이 가득차고 코케인은 쓸모없는 나도 제법 쓸모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니까. 말이 되지!
이런 말을 너무 남발했기는 했지만 왜 자살을 하느냐고 말이야.
그 후 나는 피터를 애도한다는(거 왜 벌레를 죽이고 나서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벌레를
향한 짠한 기분이 드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의미로 거꾸로 떠벌리곤 했다. 경찰들의 과잉 수색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피터가 목숨을 끊었다고 말이지. 올바른
세상은 피터에게 자업자득이라는 딱지를 붙일지 모르겠지만 하여 그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피터에 의해(나중에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이다.) 꽃다운 목숨을 잃어버린 그 녀석에게는 피터의 자살이 조금은 위로가 될지..... 그리고 그 후(고발하고 나자마자.) 나는 멀리 떠나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한 번의 흡입을 위하여 어찌어찌 해가며 살고 있었다. 탐탁하지 못한 나의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부연할 말이 있다. 마약은
두 가지의 성격을 만들어 낸다. 나처럼 눈동자에 가득 사랑을 담고 없는 듯 구석에 박혀 평화를 지향하는
종류가 있고(실은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랑이니 평화니, 마약의
독성은 환각에서 벗어나면 마약을 찬양하는 나라고 하더라도 어떤 극악무도한 행동이 튀어나올지 장담 못한다는 것을 세계인구의 절반이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았던 그 녀석처럼..... 뭔가를
흡입하고 나면 행복에 겨워 아무 곳에서나 아무에게나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천당을 노래하고 천국에 어마어마한
집을 지어 함께 살자고 아무에게나 손 내밀어 꼬드기는 힘이 넘쳐나 보이는 체구로 주위의 공기를 흐려 놓는 괴물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후자는 흔치않다. 아무튼지 간에 그렇게 행복을 겨워했던 녀석이
오만가지 불순물에-아주 짧은 순간의 행복을 얻고- 목숨을
잃었다는 게 아이러니다. 아버지의
진정이 가득 담긴 말, ‘청춘시절’이 불러내온 나의 기억이
그만 길어졌다. 그러는 중에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마리화나에 나의 사족이 좀 쑤신다.
그 녀석의(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녀석 혹은 피터.) 죽음이
억울한 것이어서 분연히 일어나 나의 정의심 아니면 짜 잔한 나의 복수심으로 인한 모종의 협상 때문에 박살난 피터의 시절인지 뭔지..... 독 묻은 피터의 손길을 배회하던 것이 청춘시절이라면?..... 다시
그런 일이 지금 시작된다면..... 그 시절이 바로 청춘시절이라면.....
똑 같은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온다면 나는 그 청춘시절을 맞이할까? 말까? 나도 모르게 모르겠다는, 고개를 젓는다. 헷갈리는 정신력 때문이리라. 방밖에서 방안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민에게는
못된 친구밖에 없어요.” 뒤이어
아버지가 말했다. “남
탓할 때가 아니요. 우리가 좋은 친구를 재민에게 붙여주지 못했던 거지.
왜 그랬을까? 아이들이란 저절로 커가는 줄로만 알고 나는 왜 돈 버는 데만 여념이 없었을까. 변명하고 싶지 않지만 남의 나라에 뿌리를 내리기가 얼마나 힘든 건지. 나는.....” “그리고
당신은 아내도 저절로 아내가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잖아요.”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지 않고 어머니가 불쑥 말했다. “그럼
어떻게 했어야 옳았을까?” “나도
모르죠. 내 일생에 이런 험난한 일이 주어지리라고 어디 생각이나 했겠어요. 나에겐 모든 것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아내이며 엄마이며
그리고 한 인간이라는 거며 이 모든 것이 힘에 부쳐요.” “당신은
나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거야.” 아버지의
고뇌가 뚝뚝 묻어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고뇌스러워 하는 게 분명했다. 두 분의 고뇌에 힘입어.....
이제 바야흐로 나의 상처를 치료하는 시기가 열리려나. ‘상처라고? 너는 배가 터지도록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먹었어. 외면한
건 너야. 그 좋은 친구들 다니엘이나 도날드나 너를 스쳐간 그 많은 좋은 친구들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외면했어. 그런 주제에 이백 페이지가 다 되도록 변명을 늘어놓고도 아직도 너 자신을 변명할 게
있다고 생각하니? 한번 중독자는 생명이 막을 내리는 날까지 영원한 중독자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인가. 그건 너를 두고 세상이 지적하는 거야. 중독자 너 하나로 인해 주위가
파탄으로 끝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뇌는 너로 인해서야.’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가 모든 걸 나에게 떠민다. 누구일까? 빙 둘러
앉아 우리들의(마약에 살갗까지 찌들어 이야기 거리를 잃어버린 우리중독자들.)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하여..... 중증 환자들의 말속에서 치료할
수 있는 해답이 나오기도 한다는 오랜 연구 끝의 주장에 의하여..... 입조심하고 귀 기울여 주기 위하여
우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카운슬러는 아니다. 그럼 누구일까?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똑 같은 부류만 주위를 어슬렁거릴 뿐이니까.
‘그렇담 나의 상처는 어디서 시작된 거야?’ 나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묻는다. ‘묻지 마, 물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너는 알아. 상처란 어머니의 자궁을 뚫고 나올 때부터 누구나 자연스레 입는 거야. 피를
묻히고 나오잖아. 그때는 할 수없이 다른 사람의 손이 상처를 닦아 주지만 걸음을 떼놓을 무렵부터는 자신의
상처는 자신이 닦아내야 하는 거야. 뭐? 네 귀에는 이상하게
들릴 뿐이라고? 이상할 것 하나 없어 겁내지 말고 밀어내지 말고 조금만 귀 기울여 봐. 삶이 바로 상처라는 거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나로부터 모든 이유가
비롯되었다고 떠미는 사람 곁에 서있던 지혜로운 다른 누군가가 들려준 말이다.
‘삶이 바로 상처’라는 말이 나를 조금 위로한다.
그래도
너무 힘들다.
순간의 뉘우침으로 의기양양하게 퇴원을 했지만..... 아직 떠는 수족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무의식적으로 떨어대는(나의 큰골 작은골 두 곳 다 마약이 상처를 입혀 기능을 떨어뜨렸다.) 내 팔과 다리를 보는 순간 어머니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힌다. 어머니의
손이 살그머니 내 다리위로 놓여 지면 다리가 떠는 것을 멈춘다. 그나마
아슬아슬 몸에 남아 있는 자제력이 순간적으로 긴장해서다. 나는 안다.
나는 철저하게 마약을 찬양했고 그 길만이 나의 길이라고 우겼으니까. 하필이면 왜 너를 망가뜨리는
마약을 찬양했니? 라고 묻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인생의 어릴
적시기를 이런저런 비유와 이유와 나 혼자만의 곡해와 해답과 상상과 주위에 널려있는 쏘삭거림과 유혹과 눈에 띄는 신비한 것들(신비했고말고. 마 악 담배와 마약의 신비에 눈을 떴으니까.)을 향해 돌진했으니까. 신기하게도 뒤로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엎어지지도
않고 말이지. 마약이 지니고 있는 가장 음험한 신비일(?) 것이다. 누가 알았나 뭐. 나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상을 아직 뿌리칠 재간이 없다.
위장 속의 모든 것을 토해내도 끝없는 악몽이다. 악몽을 씻어내기 위해 위장 속으로 물을
연신 쏟아 붙고 달콤한 주스로 달래보아도 토해내고 토해 낼 뿐이다.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고통이다. 참을 수없는 고통이 신비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불을 지핀다.
나는 뛰쳐나간다. 방문 뒤에서 쿵하고 요란한 소음이 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현관문을 박차니 눈보라가 회오리를 일으키며 밀려든다. 헉하고 숨이 몰아쉬어지고 고통이 주춤거린다. 갑자기 열린 방문 때문에
뒤로 나자빠진 아버지가 뒤따라 나와 두 팔로 내 등 뒤에서 나를 껴안는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시에
나를 다독인다. “괜찮다. 괜찮다.” “그래
괜찮아 질 거야. 괜찮아지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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