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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권세있는 사역, 최고의 기쁨과 영광은
주님과 친밀함에서 나옵니다.”
시118:14-21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내게 의의 문을 열찌어다 내가 들어 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 가리로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아멘
1.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항상 마음을 열고
주님을 사모만 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 여러 가지 위험, 곤란, 적들의 공격가운데서 무수한 나날을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광야의 삶을 살았던 다윗,
그때마다 주님이 능력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 주님이 오른손으로 힘을 주셔서, 주님이 능력을 베푸셔서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 빼내주셨다,
보호해주셨다, 건져주셨도다는 뜻입니다.
. 그래서 주님은 나의 찬송이 되셨도다! 감사하고 찬양하고 주님의 위대하시고
아름다움을 날마다 평생에 주님의 광대하심을 송축하리라! 고백합니다.
. 사람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많이 경험합니다.
. 하나님은 너무나 다양하고, 폭이 넓고 깊기에 하나님은 저렇게도 인도하시구나!
서로 간증을 통해서 위로도 받고, 자기가 받은 은혜를 확인도 하고,
도전도 받고 유익을 얻습니다.
. 어떤 사람은 자신은 별로 믿음이 없었는데
확신있는 분의 간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확신이 없었는데 당신을 통해서 나는 오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런 고백을 했다합니다.
.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메시지를 통해서, 자신을 기도를 통해서,
회개를 통해서도 만나고 하나님을 경험한 방법들이 많습니다.
. 항상 마음을 열고 주님을 사모만 하면 내 개인에게든지, 환경을 통해서든지,
누구를 통해서든지 주님의 광대하고 영화롭고 아름다우신 주님을,
치유의 주님, 응답의 주님, 구원의 주님, 능력의 주님, 놀라운 다양한 주님을
그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 오늘 시118편 주님은 나의 능력이시라!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에게도 은혜를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도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데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서로가 은혜가 되게, 위로가 되게, 도움이 되게 하십니다.
2. 내가 충만하면 그 은혜가 내게만 머문 것이 아니라 신앙은 흘러가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소개해줄 수 있는, 경험시킬 수 있습니다.
. 이것을 통해서 나도 누구에겐가 간증이 되어야 되고, 도전이 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듣고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나도 은혜를 받아서
주의 이름이 내게서 높아지면서 주님의 사랑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위대한 사랑임을 설교하든지 간증하든지 할 때
내 말을 들은 사람이 내게서 그것을 얻는,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영광의 도구, 은혜의 도구, 위로의 도구, 치유의 도구도 될 수 있습니다.
. 그렇게 해서 주님이 나를 통해서, 나를 사랑하는 자 그를 통해서
나를 나타내리라 하듯이 내게서 머문 것이 아니라 신앙은 흘러갑니다.
. 본인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소개해줄 수 있는, 경험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능력을, 여러가지 은혜를,
각양 좋은 은사를, 하나님의 선물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배우고 경험하게 됩니다.
. 메시지를 들을 때나, 간증을 들을 때나, 설교 들을 때,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감동이 됩니다. 그
래서 성령안에서 더 새로워지고, 아름다워지고, 충만해지고, 변화되면서
첫째는 내가 복을 받고, 내가 은혜를 받고,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그만큼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3. 중보는 더 폭넓게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중보가 훨씬 더 위력있고 효과가 있습니다.
. 말을 안하고 가르칠 기회, 간증할 기회가 없어도 중보하면
그만큼 주님과 가까워지고, 변화되고, 친밀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이 사람에게 말할 때나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분량대로 똑같이 하나님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내주십니다.
. 구원의 하나님에 감격해서 영혼들이 구원받지 못해 죽어가는 영혼을
안타까운 마음을 더 갖게 될 때 전도나 설교하면 하나님이 그만큼 역사하십니다.
. 중보는 전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직접 말은 안하지만 설교할 때
성령님께서 실질적으로 그에게 회개든 감동감화로 하나님을 경험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사용하듯이 중보도 그렇게 사용하십니다.
. 중보는 더 폭넓게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때로 말은 상대방이 거부반응 할 수도 있고, 시간낭비일 수도 있는데
중보는 거부가 안되고 마음대로 하니 주님께서 알아서 합당한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 여러분의 생각보다 중보가 훨씬 더 위력있고 효과가 있는데
우리가 직접 가지 않고 안가는 지역까지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고,
하나님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성령안에서 사로잡히고 변화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고
또 그와 함께 일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 그만큼 성령안에서 사로잡히고 변화된 사람들을 통해서
또 그와 함께 일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 밖에서 나가 일을 하든 여기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든 상관없고
문제는 본인이 얼마나 주님안에서 주의 사랑과 은혜에 감동되어 있느냐
하나님에 의해서 감동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만큼 그 사람을 어떤 부분이든 쓰십니다.
. 그래서 중요한 것은 주의 일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있게 하시고
그리고 나가서 전도도 하고 귀신도 쫓게 하시는데 함께 하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쓰실만한 도구가 됩니다.
. 사랑의 깊이 넓이 높이를 경험시켜서 이전에 알 수 없는
더 친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경험시키고, 하늘의 영광도
뭐든지 더 깊이 넓게 경험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그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큼 주님을 알게 해줄 수 있고, 나타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아는 만큼, 변화된 만큼, 경험한 만큼, 깊이 만큼!
그러니 우리가 더 변화되고 성장하면 자동적으로 써주지 말라고 해도
쓰실 수밖에 없습니다.
. 누구든지 이런데서 자기를 깨끗케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하듯이
깨끗함, 주님을 더 사랑함, 더 주님을 가까이함, 영화롭게 함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5. 진정한 사역은, 권세있는 사역은 친밀함에서 나옵니다.
주님을 알면, 주님을 사랑하면, 영혼을 사랑하면,
주의 성령이 그와 임재하시고 함께 하시면 귀히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진정한 사역은 친밀함에서 나옵니다.
진짜 권세있는 사역은 친밀함에서 나옵니다.
. 목회자나 선교사님들이 주로 보이는 사역들, 외적사역들을 좋아하고 꿈을 꾸는데
이것이 주님과 친밀함에서 나오지 않으면 별로 가치가 없고, 능력도 없고,
열매도 없고,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 신앙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나를 사용하시는 것인데
우리가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시골이든 섬이든 선교지도 보면 아주 열악한데
복음이 전혀 전도가 안된 데가 있는데 무슬림지역 같은데는 전도하기 힘든데
답답할 정도인데 그런데도 주님의 나라에서 볼 때 그분이 주님을 그만큼 알면,
주님을 사랑하면, 영혼을 사랑하면, 주의 성령이 그와 그만큼 임재하시고
함께 하시면 눈이 보이든 안보이든, 열매가 있든 없든
귀히 쓰임받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나 많은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한다고 할찌라도 주님과 멀어져 있을 수 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면 귀히 쓰시지 않습니다.
6. 주님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자신이 변화될 때 진정한 충성이 됩니다.
은혜안에서 그만큼 진정한 충성의 마음이 솟아납니다.
. 성도들 역시 달란트 비유처럼 몇 달란트를 받았든 간에
서머나교회에 죽도록 충성하라 하시듯이 다 맡은 일이 있는데
충성한 만큼 상을 주시는데 그 충성이 정말 주님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자신이 변화될 때 진정한 충성이 됩니다.
. 여러분도 경험하고 있지만 변화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충성이 안됩니다.
무엇이 충성인지 모릅니다. 그냥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충성이 아닙니다.
. 정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주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을 알면서
충성은 배에서 솟아납니다. 사랑도 기쁨도 확신도 감격도
전부 은혜안에서 성령안에서 솟아납니다.
. 은혜안에서 그만큼 진정한 충성의 마음이 솟아나는데 모든 것이 은헤안에서입니다.
.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주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7.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열심히 해도
환경은 어렵게 하는 이유는 사랑해서 입니다.
.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주님 잘 섬기고 친밀하다가
부요하고 풍요로우면 주님과 멀어지는 것이 인간의 심리고,
교회 역사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고, 오늘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 그래서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십일조해도 환경은 어렵게 하는 이유가 사랑해서 입니다.
. 주님과 친밀하지 않고 인격이 변화되지 않으면 어떤 것을 주면 위험합니다.
. 성도들은 환경에서 부요해지고 높아지고 평안해지고,
주의 종들은 능력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할만한 많은 사역을 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때는 마귀가 더 역사합니다.
8. 주님의 일은 환경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할 수 있습니다.
. 환경이 좋다고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도 더 충성하는 것도 아니고,
변화되는 것도 아니고, 더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안주십니다. 그것이 안전합니다.
. 혹시 사랑해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면 주시는데
그러나 상급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하든 믿음이 좋은 사람이
많은 헌금을 하든 주님은 비율로 보십니다.
과부는 전재산을 바치는 것이니 더 상이 큽니다.
. 종합적으로 보면 주님의 일은 환경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할 수 있습니다.
. 사도바울이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고 했는데
그대로 주님의 뜻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는 환난중에서도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성숙한 믿음입니다.
풍요해도 풍요를 사랑하지 않고, 마음을 뺏기지 않고, 여전히 똑같이 주님 사랑합니다.
. 욥이 그랬는데 내가 언제 물질의 풍부함으로 자긍하였냐고 하는데
물질이 풍요하다고 교만하고, 사치하고, 나는 부자다 하고 재물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 환경이 좋아도 그대로 주님을 경외했고, 환경이 나빠져도 그대로 경외했습니다.
신앙은 환경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 우리는 대개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 축복받고 사업이 잘 되고 열심히 하다가 사업이 망하면
여러 가지 망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이 낮추시는 방법도 있고,
그의 믿음을 테스트해보는 방법도 있고, 잘 견디면 다음에 더 주시려는 계획도 있고
여러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9. 우리 신앙은 풍요로울 때나 고난 때나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것은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이를 초월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를 초월시키는 은혜입니다.
. 그가 세상에 빠지니 위험하니 그것을 치우는 수도 있는데
결국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인데 이것을 해석못하고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챙피하다고 그 교회를 안나왔다고 합니다.
. 그러든 말든 변함없이 교회의 직분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받고 마귀도 KO패 당합니다.
. 대부분 재난은 마귀가 주는데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고, 변함없이 충성하고,
기분 나빠하지 않고 이것이 승리인 것입니다.
. 환경이 남처럼 좋게 풍요롭게 안해도 그 사람 못지않게
사랑하고 충성하면 승리이고 상이 있습니다.
. 상황을 초월한 은혜라고 하는데 빌립보에서 사도바울은
감옥밖에 있는 분에게 기뻐하라고 하는데 오히려 반대로 위로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는 상황을 초월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마게도냐교회에 주신 은혜를 사도바울이 증거했는데
극한 환난, 극한 가난과 많은 시련중에서도 넘치게 기뻐했습니다.
. 다시 말해서 우리 신앙은 풍요로울 때나 고난 때나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것은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이를 초월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를 초월시키는 은혜입니다.
. 나 가난해도 외롭지 않고 왜 하나님의 자녀이니 천국에 내 집이 있으니
소망중에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고, 주님이 주신 은혜안에서 사랑안에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결정적인 최고 긍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 주님사랑하고 천국소망이나 은혜안에서 주님을 풍성히 맛보지 못하면
항상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오직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10. 영적 친밀한 세계를 모르면 주님과 친밀함이 없이 열심히만 하면
쓰인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 주의 일을 할 때 주의 종들도 주님과 친밀함에서 오는 것이지
사역에서 사람들의 존경에서 집회초청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완전 허무를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 어떤 분은 열심히 하고 몸이 상할 정도로 간이 손상될 정도로
누구보다 일을 많이 해서 기쁘시게 하려고 했는데
천국에 가니 상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 목회 열심히 하고, 금식도 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주님앞에 예쁘게 보이려고 애썼는데
나는 네 안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하시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분의 간증입니다. 그러니 심판 때 선지자 노릇하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이
쫓겨날 때 얼마나 충격이겠습니까?
. 이분들은 사랑해서 특별한 은혜로 미리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들도 공평하신 주님은 깨닫게 해주셨을 것인데 듣지 않은 것입니다.
11. 주님은 우리와 인격적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자아로, 세상 것으로, 야망으로 꽉 차버리면 주님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 성도나 주의 종도 똑같은데 자기가 생각해서 이렇게 하면 좋아할 것이다 하는데
주님과 직접 인격적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로 하여금 교제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 교제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만나서 타협하고,
우정을 나누고, 남녀간의 사랑도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만나서 합니다.
. 주님과 사귐은 직접 만나는 것인데 성령안에서 하나님과 만남 임재인데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서, 교제도 성령안에서, 성령의 교통이 이것입니다.
.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고, 성령께서 나를 이끄셔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않고 자기가 하고 주님은 뒤에서 도와주라고만 합니다.
자기가 주인인 것입니다.
. 주님은 부수적으로 도와주시라는 것인데 주님은 그것이 아니고
주님이 앞장서시고 우리로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대부분 주님 따라 오세요 제가 할테니까! 합니다.
. 주님이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도 주님이 계실 자리가 없어 문밖에 계십니다.
자아로, 세상 것으로, 야망으로 꽉차 버리면 주님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12. 주님과 바른 관계가 될 때 개인의 마음이든 교회든 가정이든
거기에 기쁨이 있으니 본인들이 주님과 친밀해야 합니다.
. 성령안에서 의인데 성령의 인도받을 때 하나님의 자녀인데
인도받고 주님을 높이는 자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 주님과 바른 관계, 주님을 기쁘시게 섬기니 의와 희락과 평강이라!
.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었고 에베소교회도 처음사랑이 없어졌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을 사랑하고 미지근하니 기쁜 소리가 날 수가 없습니다.
기쁜소리는 주님의 은혜가 넘칠 때 의와 희락이 넘칩니다.
. 찬양하고 기도하고 하면 예배분위기가 기쁨인데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표적이 기쁨인데 은혜가 있는 곳에 영적기쁨이 있습니다.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믿음이 두 사람이 모여서 가정에서 서로 사랑하고 주의 뜻대로 살고
자녀들까지 믿음으로 살면 기쁨의 자리가 되어 기쁨의 소리가 나고 분위기가 다릅니다.
. 그러나 어떤 가정에 가면 냉랭한데 본인들이 하나님과 친밀해야 합니다.
. 본인들이 주님과 바른 관계가 될 때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 그곳이 장막인데 내 개인도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으니
성령이 거하는 장막입니다.
. 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왕이 사는 곳을 왕궁이라고 하는데
우리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13.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과 주님인데 주님과 관계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하늘나라!
. 성도라고 다 같은 성도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 안에 어떻게 거하시고 계시냐,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 도적이 사는 것을 강도의 굴이라고 하는데 집에 문제가 아니라
그 집에 누가 사느냐입니다.
. 환경이 아닙니다. 교회도 큰 교회가 아니라 거기에 어떤 성도가 있느냐입니다.
중국의 지하교회를 보세요. 문제는 외모가 아니라 거기에 모인 자들이 누구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 라오디게아 교회가 멋있게 교회를 지어놓았어도 진정한 기쁨이 없는데
주님이 기쁘셔야 기쁘고 주님이 기쁘시니
그들에게 성령을 통해서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 이는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영적 기쁨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 우리자신과 주님인데 주님과 관계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하늘나라!
. 절대 외모도 아니고 환경도 아니고 진짜 장막은 우리자신인데 너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 성경에도 주님을 제대로 못모시면 죄를 진다거나 하면 주님이 근심하시는데
그러면 기쁠 수가 없습니다.
. 사람의 마음은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주님과 연합되어 있어서
주님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 기쁠 수가 없습니다.
. 주님이 나를 그래서 기뻐할 때 그의 예배, 기도, 섬김이 그만큼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자기도 그만큼 복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많은 아름다운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고
주의 일에 귀하게 아름답게 사용되게 합니다.
. 교회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모이면 그들이 모인 곳에 항상 영적기름이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14. 하늘 왕께서 내 안에 나를 거처삼고 내 안에 거하십니다.
.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그만큼 기쁨으로 계시면 존귀한 자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 기본적으로는 다 거하시는데 주님이 그 안에 거하면서
얼마나 기쁨을 행복을 받으시고 그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느냐,
거기에 거하신 주님이 편히 거하시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 주님을 믿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그 다음에서는 관계를 잘 가져야 하는데
우정의 관계, 충성의 관계만큼 우리가 존귀케 됩니다.
.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존귀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 주십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 하늘 왕께서 내 안에 나를 거처삼고 내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니까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나를 귀히 여기시고 나와 친구되자고
연인되자고 아버지 아들로서 나무와 가지처럼 영원히 연합해서 사는 것입니다.
. 대접받고 싶으면 대접하라고 하시듯이 주님과 관계에서 잘 사시면
이 땅에 있는 동안 대접을 잘받았다고 그날에 영원히 대접해 주십니다.
.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여러분이 기도할 때 사랑의 고백을 드릴 때
주님께 기쁜소리가 됩니다.
. 여러분의 생각이 말이 주님을 기쁘시게, 늘 듣고 계시니
행동이 주님을 기쁘시게, 모든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섬기시면,
그날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 큰 존귀로 영원토록 기쁘시게 해줍니다.
아멘.
2014년 10월 28일 화요새벽 말씀중에서~^^
첫댓글 주님과 친밀함~ 얼마나 황홀하고 영광스러운지요.... 이 깊어져 가는 가을에 나만을 갈망하시고 사모하시고 사랑하시는 참 애인이시고 신랑이신 주님과 깊은 열애에 빠져보게요~~~^^
7번에 쓰여진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받습니다...주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아멘,, 주님과 친밀한 깊은 사랑을 나누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TT
진정한 기쁨과 영광이 될수있도록 주님과친밀한관계가 이루어지길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