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인사동 북쪽에 <歸天>이란 다방이 있다. 거기 진주 문인 선배들과 가끔 가봤는데, 선배 중에 어떤 분은 '가난이 내 직업'이라고 밝힌 천상병 시인과 술 마시고 돈 꿔준 분도 있었다. 나는 평소 천상병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하는 말에 관심이 많다. 임종시에 이 얼마나 평화로운 유언인가.
나는 고등학생 때는 주로 평행봉에 매달려 살았다.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그래도 대학 철학과 들어갈 실력은 있었다. 당시 K대 철학과는 세계적인 동양철학 교수 두 분이 계셨다. 한 분은 북경대 최우수 졸업생으로 당시 중국은 공산 권력이 공자를 매도하던 실정이라 학자가 없어, 교수님이 대만대학 박사 학위 논문을 채점해주시곤 했다. 또 동양을 대표하여 하와이 동서문화연구소 교수로 계셨다. 그런데 내가 졸업 후 조선일보와 KBS 두군데 시험쳐서 낙방을 했다. 그런 세계적인 학자 밑에서 매학기 장학금 받은 사람이 너무 황당해서, 불교신문에 입사했다가, 후에 어느 재벌 자서전 써주는 작가로 자릴 옮겼다. 그러나 나는 이 두 직업 선택에 모두 실패했다.
첫째, 불교신문에 갔으면 지긋이 눌러앉아 불교방송 사장을 하던지, 동국대 교수가 되던지 해야 했다. 둘째, 기자 월급 적어 재벌회사 갔으면 계속 거기 눌러앉아 처자식 보살펴야 했다. 그런데 자서전 집필 끝내자말자 은퇴했으니, 왜 그랬나? 비서실 근무하니 세상이 복마전 이었다. 찾아오는 사람 모두가 괴물이었다. 돈 뜯으러 오는 국회의원. 신문사 광고부원. 사내 중역 모두가 안팎으로 괴물이었다. 말 잘하는 사람은 속마음 다르고, 말없는 사람은 속이 컴컴했다. 알량거리며 회장 칭찬 잘한 사람일수록 뒤에서 욕을 잘했다. 화통한 사람은 경거망동 잘하고, 신중한 사람은 더러 좀스러웠다. 이게 인간 군상의 실체인지 모른다. 불교용어로 말하면 火宅地獄 이다.
오너한테도 실망했다. 아들 회장은 알량한 지출 줄이려고 창업 때부터 어려움 같이 한 공신을 홀대했고, 아버지는 자서전 써주고, 단 한 건 부동산 취득으로 그룹에 5천억을 벌어준 전무후무한 공신을 홀대했다. 20년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나는 재벌이란 뱀과 개구리 같은 냉혈동물임을 깨달았다. 그래 그들을 떠난 나는 수많은 밤을 불면으로 새운 후 자연에 눈을 돌렸다. 그때 법정, 광덕, 월주스님과 불교신문이나 만들 걸 하는 후회에 깊이 빠졌다.
그후 나는 이놈의 개떡같은 세상 딱 75세까지만 살리라 고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지금 팔순이다. 정이란 무엇인가. 고등학교 시절 단짝은 20에 자살로 갔고, 대학 시절 단짝은 한국 최초의 희랍철학 박사였으나 재직 중 골수암으로 갔다. 남강문학회서 가장 친하던 정총장님도 떠나셨다. 울고왔다가 울고가는 인생인가. 내마음은 <산장의 여인> 권혜경처럼 쓸쓸하다.
그나마 문장에 마음을 의지해서 수필집 10 권 낸 것은 위안이다. 넉넉치 못해서 여행도 못했고, 서울 출신 아내 때문에 지리산 전원생활도 못했다. 이렇게 어물거리다가 팔순이 되고말았다. 그런 내가 천상병처럼 이 세상 소풍 와서 잘 놀다간다고 평화롭게 말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러지 못할 것 같다. <歸天>이란 시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첫댓글 김교수는 이세상 잘 사시었습니다.천상병의 귀천에 빗대어 말씀하실 사항은 아닌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건승 하소서.....
이창국 동대문 사단장님 감사합니다
거사가 진주고등하교 1학년 시절에 나와 한반에서 지냈는데 우람한 체구에 평행봉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이 돋보였다
조정제 선생님 체육시간에 농구장에서 우리가 말다툼을 하였는데 조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뺨을 때린 적이 있었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왜 김창현을 우대하였는지 감을 잡았다
그것이 뭐냐면 조선생님은 나를 밉게 보고 김창현을 잘 봤다는 점이다
인생은 잠시 지나간다 고대 철학과를 졸업한 것도 성적이 우수해서이고 서울처녀하고 결혼한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산유수의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뛰어난 재능이다
인생은 살아있는 시점이 시작이다
남은 세월도 재미있게 보내시길 바란다
양장사는 진주 씨름판의 대부 양점배 선생의 기를 받아 체력이 장대하고 운동도 잘 했는데, 노년에 같이 글쓰는 쟁이가 되어 여기서 만나니 반갑다. 이제 팔순 고개 넘어가니 지금도 건강 유지하는 자네가 몹씨 부러우며, 끝까지 건강 유지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