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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3일(주일) 시편 7:1~17 방패되신 하나님을 의지하자.
오늘은 시편 7:1~17말씀을 중심으로 ‘방패되신 하나님을 의지하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편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시가 등장하는 데요, 그 시를 간단히 분류하면, 찬양시, 탄원시(개인, 민족), 참회시, 감사시, 지혜시(토라시, 교훈시), 축복과 저주시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시편 7편은 개인적인 ‘탄원시’의 하나인데요. 탄원시는 시편의 1/3에 해당하고,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원래 명칭은 ‘기도’나 ‘간구’의 뜻입니다. 탄원시에는 개인탄원시와 민족탄원시로 나뉘는데요. 오늘 본문은 개인 탄원시입니다. 주로 개인 탄원시의 내용은 주로 원수들의 자신에 대한 부당한 박해와 또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본 시는 개인탄원시의 주된 내용처럼 다윗이 그 원수들, 즉 ‘베냐민인 구사’로 인한 박해 상황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시입니다. ‘베냐민인 구사’는 누군가하니 사울왕과 같은 베냐민 출신으로 아마도 다윗을 무고하게 고소하고 중상모략한 사울의 친척 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구사의 다윗에 대한 중상모략으로 인해 사울왕의 진노와 백성의 증오를 불붙여 놓으면서 그들 모두 다윗을 향해 사자 같이 죽이려고 달려들게 됩니다. 다윗은 이와 같은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다윗과 같이 억울하게 비난당하거나 그로 인해 상처를 입어 분을 이기지 못할 때, 자신을 미워하고 모함하여 죽이려고 하는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다윗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참고하셔서 함께 기도하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대략적으로 오늘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1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하나님, 나를 모함하고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피하오니 나를 그들에게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2절에서 다윗은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2절의 기도 내용은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런 상황에서 구해주시지 않으면, 자신이 그들에게 마치 사자들에게 공격당하는 자처럼 비참하게 찢기우게 될 것임을 호소합니다. 이어서 3~5절은 자신이 어떤 비난과 중상모략 때문에 이렇게 무고한 박해를 받고 있는지를 암시해 줍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까닭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즉 자신이 받는 비난과 박해가 얼마나 부당하고 근거없는 지를 보여줍니다. 맹세컨대 자신은 그런 일을 행한 일이 없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이처럼 말씀에 따라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근거도 없는 미움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없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법정에서 자기 양심을 지키며 오늘 본문의 다윗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1~5절에 나타난 다윗의 ‘탄원’은 6~11절에서 이제 ‘간구’로 바뀝니다. 6절~11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6절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절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절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하심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절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10절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절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 밖에는 의지하고 피할 곳이 없으니 여호와께 진노로 일어나사 나를 괴롭히는 대적들의 노를 막아주시길 기도합니다. 자기 죄로 인해 이미 하나님의 진노와 그를 통한 징계를 경험한 다윗은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경험한 후 깨끗한 양심을 갖게 되는데요, 그런 다윗은 이제 그 주님의 심판과 징벌을 만민에게 행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진노로 다윗을 징계하신 사건을 통해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그 마음과 양심이 깨끗해되어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나의 죄와 허물로 인한 주님의 진노와 징계가 나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는데요. 여기서 막대기는 지팡이보다 긴 것으로서, 옛날 목자들은 자신의 키보다 더 길며 그 끝이 굽어져 있는 것을 사용했습니다. 막대기의 기능은 이중적인데, 짐승들이 양들을 공격할 때 그것으로 짐승들을 내리치거나 던져서 쫓아낼 때 사용했습니다. 즉 양들을 보호할 때 사용했구요. 또 다른 경우는 자신의 양떼들이 잘못할 때에나, 엉뚱한 길로 갈 때, 이 막대기로 그런 양들을 가볍게 때려서 바른 길로 이끌었구요. 또한 양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끌어올리는 데사용하기도 했구요. 때로는 다른 길로 가는 양을 지팡이의 구부러진 끝을 사용해서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 앞에서 슬퍼하고 낙담할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아주신 그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무고히 음해하며 괴롭히고 죽이려고 달려는 자들에게 직접 보복하려 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욱 분노하시는 하나님께 그들을 공의로 심판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의 미움과 분노을 하나님께서 대신 쏟아부어주셔서 처참한 멸망에 이르기를 원하는 것보다도 심판의 사건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무고히 죽이려고 달려드는 자들에게도 심판을 행하여 그들도 그 심판 앞에 회개하고 돌아올 때 구원을 베푸실 하나님을 믿으며 심판을 간구한 것입니다. 다윗의 심정을 우리도 본받아서 우리를 무고히 괴롭히고 해를 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을 베풀되, 그들이 그 심판을 통해서 회개하고 주의 구원을 경험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11절의 다윗의 ‘간구’는 이제 12~17절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감사와 찬양’으로 바뀌면서 시편을 마무리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악인들을 ‘응징’하실 것이며 필경 ‘의’를 바로 세우실 것이므로 ‘감사와 찬양’을 마땅히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12~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2절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절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4절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절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절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절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지금까지 시편 7편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시편 7편의 다윗의 탄원시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억울한 비난과 불의한 중상모략을 당할지라도 이로 인해 두려워하거나 분을 내지 말고 ‘방패되신 하나님’을 찾으며 그에게 아뢰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10절과 11절은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은 다윗의 방패이시며, 의로운 재판장이 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방패가 되시고, 의로운 재판장이 되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자를 반드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을 ‘나의 방패’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방패'로 삼는다는 고백이 시편에는 여러 군데 나오는데요. [사무엘하 22:3]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시편 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시편 7: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시편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아멘. 고대의 방패는 자신의 몸 하나를 능히 감출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다. 전사였던 다윗은 전쟁을 하면서 비 오듯 쏟아지는 적군의 돌이나 화살, 창 같은 것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방패가 얼마나 요긴한지를 몸소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여러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의 방패’로 고백하며 방패되시는 하나님께 피하는 방법을 몸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 속에서도 다윗처럼 원수들의 무고한 공격으로부터 믿음을 지키고, 믿음의 승전보를 올릴려면, 나의 방패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방패삼아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을 책임져주십니다. [시 115:9]에 보면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오 너희 방패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지’라는 단어는 ‘기댄다’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어 살도록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야 행복한 인간이 뱀의 유혹에 꾀어 넘어가 하나님을 떠나 자기 자신과 사람들을 의지하고 기대어 살면서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욕심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의지하고, 돈에 기대고,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생의 목적에 결코 도달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죄를 쌓아가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죄로 인해 저주와 심판과 영원한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에 창조주 하나님, 구원주 하나님께 돌아와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때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할 때 계획하신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있지 않고 '거룩'에 있습니다. '거룩'이란 세상과 구별됨입니다. 바라기는 세상이 쾌락을 좇아 살아갈 때, 절제함과 금욕함으로 거룩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남을 희생시킬 때, 나를 희생함으로써 남에게 행복을 주는 거룩을 좇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들이 점점 세상의 가치와 태도와 모습과는 점점 멀어지고 달라지는 것이 성도의 거룩한 인생의 방향성입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부담도 되고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주지 못할 것 같고 그래서 나만 손해보고 힘들어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거룩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나의 방패 삼아 살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할 때 거룩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거룩을 추구할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5장에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상 중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후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세상의 향락과 죄악된 영화와 부귀를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저들의 ‘방패와 상급’이 되어 주십니다. 다윗도 지금 비록 자신이 부당한 비난을 당하고 고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의인들의 ‘방패’가 되셔서 그들의 ‘불화살’을 모두 막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실천하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방패’가 되어 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인생의 방패’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가 되어 주셔서 나를 대신하여 비난을 당하고, 나를 대신하여 변호해주고, 나를 대신하여 원수를 갚아주고, 나를 대신하여 대적들을 물리쳐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나 자신을 맞추어 가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을 ‘내 인생의 방패’로 삼고, 내 ‘인맥’을 내 인생의 방패로 삼고, ‘내 지식과 경험’을 내 인생의 방패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이 좋으려면 요즘말로 하나님과 ‘케미’가 잘 맞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맞춰줘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시라고 여러분이 고백하신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맞춰드리는 것이 옳은 것이요, 순리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방패’가 되어 주신다고 하시면, 우리가 그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방패'로 삼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미있는 예화입니다. 소와 사자가 결혼을 했답니다. 소는 사자를 위해 매일 싱싱한 풀을 열심히 뜯어 사자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답니다. 사자도 매일 사슴, 토끼, 등을 잡아서 소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도 역시 쳐다보지도 않았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다투고 둘은 이혼하고 말았답니다. 소와 사자는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혼했을까요?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소는 '초식동물'이라 풀만 먹고 살지 동물을 먹질 않지요, 반연에 사자는 '육식동물'이라 아무리 맛나고 싱싱한 풀이라고 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죠. “내 입장, 내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상대방이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이나 뜻은 고려하지 않고 ‘내 생각, 내 방식’으로 열심히 섬긴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좋아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방패 삼아서 그 분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보호해주고, 지켜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그 분의 '입장'이요, 그 분의 '뜻'입니다. 그 뜻에 따라 다윗이 고백하듯이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은 '나의 방패'라고 고백하면서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어떤 사람이, 아니면 어떤 문제가 불화살과 같이 여러분을 공격해서 힘들게 하고 있나요? 이 일로 인해서 억울하게 비난당하거나 상처를 입어 분을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을 품지는 않았습니까? 다윗은 정의롭지 못한 이 세상에서 까닭없이 자신을 미워하고 모함하여 죽이려는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반격하는 대신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며 정직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방패삼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그 부분에 대한 옳고 그름을 가려 내가 그들을 심판하고 싶지만,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그들을 맡겨드리고 원수가 회개하기에 이르도록 인내하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에게 해를 끼치고 나를 위협한 악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한다면, 그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불화살에 의한 죽음과 스스로 불러온 재앙으로 부터 건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진정한 승리'입니다.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부터 나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을 방패삼아 남은 삶을 살아가시기를 결단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