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165호 왜 속수무책으로 당하느냐? Let’s go back to the Bible! (요15:14~15)
제게 직접 찾아와 상담하거나 전화로 상담하는 내용의 90%는 병들었다고, 아프다고 기도해달라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제 속은 답답할 뿐입니다. 왜냐고요? 해결책이 있는데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쳤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게 속상해서 그럽니다. “당하다니요? 누구에게요?”라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힘들게 하는 놈이 있습니다. 바로 마귀의 추종자, 귀신입니다. 성경을 보면 귀신의 작태가 잘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쫓아내는 법도 다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Let’s go back to the Bible!”
여러분, 성경에 답이 다 있습니다. 성경에 해법이 다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여인이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 하는 세례 요한에게조차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가르쳐주셨습니다. 왜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한 이제 종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예수의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4~15). 단,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자 하나님을 그를 ‘나의 친구’라고 하신 것처럼(약2:23). 그리고 그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고 하신 것처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18:17).
맞습니다. 정말 친한 친구에게는 비밀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에게 모든 비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답안지를 넘겨준 셈이지요. 해답지를 주신 겁니다. 그런데 답안지를 보고도, 해답지를 가지고도 문제를 못 풀어요. 왜냐? ‘설마 이게 답이겠어? 더 좋은 답이 있을 거야.’, ‘너무 쉽잖아? 이렇게 단순할 리가 없어.’ 그러면서 답안지를 무시하기 때문에 문제를 못 푸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답만 달랑 던져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오셔서 몸소 이를 실행하심으로 시각적인 교육까지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거란다.’ 하시며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보지 않으면 믿지 않기 때문이죠(요4:48).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 잘 봐라. 요즘 너희들 코로나 때문에 힘들지? 그거 다 열병이야. 귀신이 그러는 거야. 그러니 먼저 귀신을 쫓아라. 그러면 나간단다.” 하시며 우리에게 마태복음 8장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데 그에게 손을 얹고 귀신을 쫓으니 열병이 떠나간다는 것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또 “못 보게 하는 것도 귀신이야. 그러니 귀신을 쫓으면 소경이 눈을 뜨게 된단다.” 하시며, 마가복음 8장 22절 이하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에 침을 뱉으며 안수하자 소경이 눈을 뜨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귀먹고 말 못하는 자에게는 ‘에바다’ 하시며 손을 입에 넣으시니 그가 귀도 뚫리고 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예수님과 똑같이 합니다. 소경의 눈에 침을 발라 눈을 뜨게 합니다. 입에 손을 넣고 ‘에바다’ 합니다. 그러면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입을 엽니다. 그런데 이를 보는 사람들은 ‘비위생적’이라고 하지요. 그게 문제입니다. 당신의 상식과 편견과 알량한 세상적 지식이란 잣대로 재니 당신에게 이 복음은 쓸모없고, 소용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위생 관념이 없어서 그리하신 것이 아닙니다.
왜 예수님이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신 줄 압니까?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8:9)라는 이 말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이 뭔지, 순종이 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아, 가라.’ 하시면 귀신도 그 말씀에 따른다는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예수님의 말씀 아래 복종한다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지시하는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가진 문화적인 지식은 하나님과의 견고한 진이 될 뿐입니다. 그것을 파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4~5). 그러니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내 지식, 내 상식을 배설물로 생각하고 버리세요.
또 예수님은 이렇게 자상하십니다. “얘들아, 한 번에 귀신이 안 나가거들랑 나갈 때까지 안수하고 귀신을 쫓아라.”고 하시며, 안수받은 소경의 눈이 아직 희미할 때 다시 안수하는 것까지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막8:22~25). 왜? 친구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답안지를 주시고, 또 시범도 보여주셨는데 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까? 왜 속수무책으로 귀신에게 당해서 병들고, 가난하고,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그게 하나님 뜻이라고요? 천천만만의 말씀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병들기를 원하겠습니까? 어느 부모가 자식이 가난하고 고통받기를 원하겠습니까? 저도 여러분이 병들어 아프고, 가난하여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데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우리가 구원받고, 건강하고, 잘 사는 길을 여셨는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살길은 오직 하나님 말씀, 곧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66권의 성경 중에서도 특히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예수님이 어찌하셨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2/3를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권능이 무엇입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성령이 오심은 이 세상의 주관자 마귀와 그의 추종자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즉 예수 이름의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면 됩니다. 한 번만 쫓으면 되냐고요? 아닙니다. 이 귀신이란 놈은 우리가 요단강을 건널 때까지 쫓아옵니다. 홍해 앞까지 애굽군대가 쫓아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놈은 우는 사자처럼 늘 우리를 삼키려 하는데, 어찌나 많은지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늘 쫓아야 합니다. 잠시 방심하면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눅11:26). 이건 제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발 성경을 상고하세요. 성경이 인생의 해답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고,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세요. 그러면 만사형통입니다. ‘누가 이러더라, 누가 저러더라’, 여기에 현혹되고, 미혹되지 말고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지에 주목하세요. 쉬지 않고 기도하면 성령충만하여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할 수 있고, 이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요14:12). 병에 걸렸습니까? 무조건 먼저 귀신을 쫓으세요. 일이 잘 안됩니까? 예수님이 풍랑을 꾸짖으신 것처럼 꾸짖으세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듯이 동일하게 귀신을 쫓으세요.
무기를 줬는데도 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이란 총으로 귀신을 쏘세요. 100% 도망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무병미락장수하다 천국에 갑시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 (엡6:17~18). 할렐루야!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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