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동인
6.25 전쟁 중에 부산에 모여든 시인 중에 김경린, 조향, 박인환, 김규동, 감차영, 이봉래 등이 동인 ‘후반기’를 결성하여 모더니즘 시 운동을 펼쳤다.
그들은 사회 현실은 외면한 체 자기의 감성만을 노래하는 전통적인 시정신에 반발했다. 어두운 현실이 나를 에워싸고, 물질적인 것만 끝없이 추구하는 시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시정신을 찾으려고 하였다. 1950년 대는 전쟁의 불안, 공포, 살육과 파괴로 점철된 시대였다. 이런 시대 상황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각성에서 시작하였다. 그때의 전통파 시인들은 현실 세계는 외면한 체 자기 자신의 시정신만 노래했다. 대표적인 시인들이 청록파 시인들이다. ‘후반기’ 동인은 이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청록파 시인을 이렇게 비판했다. 시의 음악성에 집착하고, 개인 정서의 취향만을 따르며, 시적 언어들이 단순하다. 이러한 비판은 ‘후반기’ 동인들의 시운동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기 정서보다는 현실에 더 밀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수파 시로서는 현대시를 진정하게 해석해낼 수 없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후반기’ 동인들은 1930년 대의 모더니스트(김기림이 대표이다.)의 시정신과 방법을 계승한다고 했다. 언어와 소재를 확대하여 언어는 즉물적(다듬지 않는 시중 언어 그대로)이며, 소재는 도시 문명의 어두운 부분을 직접 가져왔다. 이러한 시는 시가 정서에만 갇혀 있는 폐쇠성을 벗어났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들의 의욕이 실험적인 단계를 벗어나서 새로운 시 세계를 구축한 것까지는 아니라는 비판을 받는다.(실험만 했을 뿐이다.) 이들이 시에서 표현한 것은 현실을 암울하고, 허무와 절망만으로 점철하였었지, 적극적으로 현실애 대응한 것은 아니었다. 패배의식과 현실 도피만을 드러냈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시 형식에서도 이들이 만든 시는 단조롭고, 무기력하다는 평이다. 새로운 시 형식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첫댓글 시 형식에도 단조롭고 무기력하다는 건...
전쟁 후의 막막한 현실 탓일 것입니다.
그 당시 뭐 새로운 대안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