拿 捕 (잡을 나 / 잡을 포)
- 공해상에서 어선을 잡으면 拿捕가 아닌 拉致 -
1989년 일본의 히로히토국왕이 죽었을 때, 국내언론에서 ‘일본천황 崩御(붕어)’라는 표현을 썼다가 황급히 逝去(서거)로 바꾸었다. 崩御는 황제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로, ‘텐노헤이까’(=천황폐하)라고 깎듯이 존경을 표하는 일본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인 때문이다.
이렇듯이 대상을 어떻게 부르는가의 문제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따금 언론에서 접하게 되는 ‘동해 공해상에서 일본 순시선에 拿捕되다’라는 기사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拿捕는 자국의 영토를 침범한 배를 붙잡는다는 뜻이고 죄인을 잡는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따라서 그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공해상에서 우리 어선을 잡았을 때에는 拿捕가 아니라 拉致(납치)라 해야 옳은 것이다. 이는 우리가 동해를 ‘니혼가이’(=일본해)로 부른다든지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라고 부르지 않고, 백두산을 長白山(장백산)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조선후기에 서인과 남인 사이의 당쟁의 빌미가 되었던 禮訟(예송)도 결국은 죽은자에 대해 산자를 어떻게 호칭하고 服喪(복상) 기간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격렬하게 싸운 것이었다. 이 禮訟으로 인해 결국은 오늘날의 정권교체에 해당하는 換局(환국)이 초래되기도 했다. 이렇듯이 대상을 어떻게 부르느냐 하는 것은 정권의 향배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문제인 때문으로 공자는 정치의 핵심을 正名(정명: 이름을 바르게 함)에 두었던 것이다.
拿는 본디 拏의 속자로, 손을 모아 물건을 잡다는 뜻이 된다. 拏의 奴는 ‘노예’이니 노예처럼 붙잡아둔다는 뜻이다. 그러니 漢拏山(한라산)은 은하수라도 잡을 수 있듯이 높은 산이라는 뜻이 된다. 銀漢(은한)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漢은 은하수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捕는 잡는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捕盜廳(포도청)은 지금의 경찰청처럼 ‘도둑을 잡는 관청’이며, 그 대장은 捕盜大將(포도대장)이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部將(부장)은 捕校(포교), 그 말단 병졸이 捕卒(포졸)이다. 요즘 경찰서마다 붙어있는 ‘포돌이’ 마크는 이 捕卒이라는 말을 요즘 정서에 맞게 바꾼 말이다.
흔히 허황된 일을 도모하는 것을 일러 捕風捉影(포풍착영)이라 하는데, 捉 역시 捕와 마찬가지로 ‘잡다’는 뜻이므로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것을 바람과 그림자를 잡으려 애쓰는 것에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