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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 장 < 2 > )
성경말씀 읽기는 반드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의 지식 없이는 결코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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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죄로 인해서 죽어야 할 자신의 실체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죄와 죄의 결과를 보지 못한다면 그에게
예수님의 겉모습은 보일지 언정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그리스도는 결코 보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임을 안다면
그는 먼저 자신의 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피흘리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감사함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증거는 사람을 대하는 것에서부터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자신의 허물을
안다면 그는 자기 의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앞에서는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누군가를
대했을 때는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자로 있고 싶어한다면
그가 과연 진심으로 자신의 허물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자신이 죄인임을 마음깊이 인정하지 못하면서
죄를 대신해 죽으신 그리스도라고 말한다면 말은 맞지만 다만
기독교인의 상식에서 나온 말로 그쳐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앎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는
'내가 곧 죄인이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되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어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어주기 위해서 오셨다면 세례 요한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하겠습니까?
차라리
'보라 세상의 인생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1. 하나님의 어린 양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한복음 1 :28-30)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과 요한 간에
대화가 있었던 장소를 목격자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어낸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 다음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한 첫번 째 증거는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메시야께서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보인 대로 속죄제물이 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보다 앞선 자이시며 자기보다
먼저 계신 자 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시고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나신 신적 존재이시라는 뜻입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한복음 1 :31-32)
세례 요한은 물 세례를 통해
메시야의 길을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메시야를 드러내고 증거하려 하였습니다.
또 요한이 증거하여 말하기를
나는 성령께서 하늘로부터 비둘기
같이 내려와 그 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고 증거했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
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1 :33-34)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으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
하시기를 성령이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보리니
그 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하셨다고 증거 했습니다.
성령 세례는 성령께서 실제로
죄인들을 불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들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새 생명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을 통해 죄인들의 죄를 씻으시고
새 생명을 주셔서 거듭나게 하시는 예수님은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님은 신적인 구주 이십니다.
2. 어린 양을 보라.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요한복음 1 :35-38)
세례 요한은 오늘도
예수님이 거니시는 것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속죄제물이란 뜻입니다.죄인들에게
죄사함을 주고 참된 평안과 영생을 주는 속죄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다시 증거했을 때
이번에는 그의 두 제자들이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두 제자는 이미 세례 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고 죄를 회개하고 요한이 증거
한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다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지만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분명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들 역시 정말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며 죄사함과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가 돌아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십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요한복음 1 :39-4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 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함께 지내보면 다 알것입니다.
그 제자들은 그날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일이었습니다.
그 교제를 통해서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던
의심의 상태에서 메시야라고 부르는 확신의 상태로 변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자신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
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
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한복음 1 :41-42)
그들은 예수님과 교제를 통하여 그가 메시야 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하고 그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데려온
그의 형제 시몬을 알아 보시고 말씀
하시기를"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하셨습니다.
게바는
반석이란 뜻인데
그것은 그의 믿음과 인격이 굳세고 든든해질 것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요한복음 1 :43-44)
"이튿날"은
안드레와 다른 제자가 예수님을 따랐던 그날로부터 계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보시자 마자 나를 좇으라고 하신 것이 우리
인간의 눈에는 우연으로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께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다 작정하시고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그 작정하신바를 현실 가운데서 그대로 남김없이 다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님은 베다니 부근에
유숙하셨던 것 같고 그때 안드레 요한 시몬 베드로
그리고 빌립까지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셔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안드레와 베드로와 더불어 빌립은 벳새다 사람입니다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 북쪽 해변의 마을입니다. 요한도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의 어부이었으니 그들도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요한복음 1 :45-46)
빌립은 예수님을 따르게 된 그 날
자기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 갔습니다.그리고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를 우리가
만났는데 바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시라고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의 처음 반응은 많은 사람들 처럼
부정적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은
성경에 예언된 바 있지만 나사렛은 예언된 바가 없지 않은가?
나다나엘에게 나사렛은 메시야를
기대할 만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래서 나다나엘은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은 그를 알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는 자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
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
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 :47-49)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미리 아시고 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표현 하셨습니다.
그의 속에 간사함이 없고
경건하고 독실한 인물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 적합하게 준비된 인물입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말씀 드리기를 '주께서
언제부터 나를 아시나이까? 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심을 보시고
참 이스라엘 사람이며 그 안에 간사함이 없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은
나다나엘로 하여금 모든 의심을 떨쳐
버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확신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자신의 중심을 보신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하였습니다.안드레와 요한과
시몬과 빌립에게 생겼던 동일한 믿음과 확신이 그에게도 생겼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 :50-51)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그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고 하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그가 그보다 더 큰일을 볼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예수님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나다나엘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나다나엘은 장차 예수님의 신비한 신적 영광을 더 보게 될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빌립과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구약 성경이 예언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했듯이 우리들도
성경의 모든 증거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성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의 말씀들이 반드시 지켜 지고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성품을 따라 바르고 참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계속되게 하셔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하시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도록 인도하시고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5. 20.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