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평안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정말 그림에 감상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일까?.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의 실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고민은 늘 안고 있다.
그림에는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기게 마련이다. 그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 감상자는 감동에 희열에 빠져든다. 그림에 담긴 내용이 다름 아닌 평안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화가에 따라서는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향한 평안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그림은 감상자뿐만 아니라 화가 자신을 절망으로부터 평안케 하는 치유의 영약이 될 수가 있다. 그림은 승화된 현실로서의 이상을 추구하는 까닭이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사물에 빠져드는 몰입에서 온다. 예술가가 표현한 창작품은 보는이로 하여금 평안함을 느끼게 해준다면 작가는 감상자와 함께 더욱 행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표현한 작품이 감상자와 상관없다고 함이, 좋은 작품이라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삶이 결코 부를 축적하거나 성공적인 삶이 아닌 것처럼, 좋은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표현된 작품 앞에서 감상자의 정신이 가만히 서 있을 때, 정신이 자기 안에 편안히 머물러 있을 때, 좋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의 작품 제작에 앞서 자연의 내면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일 것이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를 위하여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의 넉넉한 품처럼“ 자연의 깊고 고요한 내면의 소리를 표현하려고 몰입할 것이다. 그리고 자연세계의 몰입활동은 하늘과 산능선을 뭉개버려 마치 삼투현상으로 내가 의도한 은사적 표현이 근경에 까지 덮게하여 신선한 공기를 느낄 뿐만아니라 머리를 맑게 치유하는 그림이 되길 원한다.
나는 항상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조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자연속에 묻혀, 자연의 형태를 기만하지 않으면서 인간과 자연의 원천적인 심안으로 영감이 표출되는 순간 순간들을 표현할 것이다. 현기증 나는 산업사회에서 고잡스러울 정도로 고집한 색면대비 공기원근법 표현도, 언젠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나의 작품도 변할 것이며 그 변화의 흐름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