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서서
기로(岐路)란 갈림입니다.
두 길 이상으로 나누어저 이리 갈지 저리 갈지
방향을 못잡고 머뭇거리는 것을 기로라 합니다.
기로(岐路)를
장소로 보면 방황할 수도 있지만
시간으로 보면 선택권이 없어집니다.
붙잡고 싶다하여 멈추는 것이 아니고
맞이하기 싫다해서 오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동지 섣달 세모(歲暮)에
세월은 아쉽고 안타가워지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선인 가운데 병자호란을 함께 했던
문곡(文谷 金壽恒)과 택당(澤堂 李植)의 작품을 통해
옛 마음을 더듬어 봅니다.
破屋凄風入 파옥처풍입
空庭白雪堆 공정백설퇴
愁心與燈火 수심여등화
此夜共成灰 차야공성회
허름한 가옥에 찬바람이 스며들고
텅빈 뜰엔 흰눈만 쌓이는데
근심은 등불과 더불어
이 밤을 세우며 재가 되어 가네.
낡고 허름한 집에 칼바람이 몸속으로 파고 드는 겨울밤
텅빈 마당엔 눈만 가득히 쌓여가는데
마음 속 근심으로 촛불과 함께 날밤을 세우다보니
등불의 심지처럼 마음 속은 새까만 재가 되어 가는구나 .
작자는 무엇 때문에 그리 속이 탔을가?
이 시는 문곡(文谷) 김수항이 17살에 지었다고 함니다.
17살이면 한창 꿈많은 청소년일 진데
무슨 회한이 있어 수심으로 밤을 세웠을가?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힉)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D0D335857316F2A)
인조와 효종 시대를 살다간 저명한 문신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9~1689)이 지었다.
문곡의 나이 17세던 1645년 한겨울의 소회를 담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방안으로 칼바람이 스며들어 오돌오돌 떨고 있을 때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마당에는 흰 눈이 소복소복 쌓여간다.
외로운 내 동반자는 오로지 등잔불뿐 밤을 꼬박 지새우고 나면
재가 되어 폭삭 스러질 것만 같다.
열일곱 청년은 흰 눈이 쌓이는 밤을 마음이 재가 되도록 새우며
무슨 걱정을 그리 많이 했을까?
밤새워 공부를 했겠지.
다음 해 2월에 치러진 진사시에 장원급제한 것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청년의 걱정이 일신의 성공에만 꽂혀 있었을까?
그해는 청나라 포로에서 돌아온 소현세자를 죽이고, 한창 세자빈을 죽음으로 몰아가던 격동의 한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김상헌이 귀국한 기쁨도 순간이고
앞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혼탁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던 정국이었다.
눈이 아무리 대지를 하얗게 뒤덮어도
나라를 걱정하는 청년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4EB83E571D9BDC27)
어찌보면 오늘의 대한민국 상황과도
엇비슷하지 않을가 싶습니다.
卽事羞前事 즉사수전사
今年悔往年 금년회왕년
無端岐路上 무단기로상
歲月幾推遷 세월기추천
당장 일을 당하고 보니 옛날 일이 부끄럽고
올해는 또 지난 해가 후회스럽네.
무단한 갈림길에서 헤메다보니
세월은 얼마나 더 흘렀는가.
卽事는 현재, 前事는 과거, 羞는 부끄럽다이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지난 일이 부끄럽고
금년들어 살펴보니 왕년이 후회스럽구나.
無端은 단서가 없다니 無端岐路上은
갈림길에 들어 갈길을 못찾고 서성대는모습입니다.
歲月은 岐路에서 얼마나 많이 헤메이고 서성댔을가.
이 글과 앞글은 병자호란 전후
나라의 극심한 난맥상(亂脈相) 속에서
갈길을 못 찼고 방황하는
사회상이 함축적으로
들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3DAE3C58560FCA03)
이식과 김수항은 병자호란시 척화파 선두에 섰던
김상헌과 연관이 있는 인물입니다.
이식은 병자호란의 척화파로 김상헌과 함께 심양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인물이고 김수항은 김상헌의 손자입니다.
김수항은 어머니가 일찍 작고하자 안동으로 내려가 김상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후에 송시열 문하생이 됩니다.
두 분 모두 병자호란이란 아픔의 역사를 함께 했던 사람으로 작품의 표현미는 달라도 주제의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김수항은 서인으로 송시열을 지지하였고 남인들과 맞서다가 진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사약를 받아 61(1689년)세로 생을 마칩니다.
(위리안치 : 위배의 최고 등급, 집밖을 나기 못한 벌)
이식(李植)(1584-1647)
한문4대가 한 분으로 문장가 예조판서 대제학을 지냄.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여
7년 뒤 선전관이 되었으나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택풍당(澤風堂, 양평군 향토유적 제16호)을 지어 학문에만 전념함.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3FD4256EB72B607)
첫댓글 우리 나라를 걱정하는 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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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6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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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에 그런 시를 지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더구나 나라걱정이라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나라사정이 뒤숭숭하니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 때부터 안다고
민족관이 투철했던 삼학사 힌 분이이었던
김상헌 할아버지 영향을 받아
문곡 김수항의 애국의식이 남달이 강했지 않나
생각됩니다. -산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