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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왕시)월남참전전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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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의 관련자료 스크랩 이래저래 항구는 사연도 눈물도 많은 곳이던가
희연 추천 0 조회 43 09.10.26 08: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중1때일이다.

 

6월 하순경으로 기억하는데 전교생 단체로 월남 파월장병 환송식에 간 부산항  3부두엔

우리군을 싣고 갈 태산같은 미군 수송함이 정박해 있었다.

 

어지간한 덩치의 화물선은 태어난 동네가 부둣가라 어려서부터 많이 보았는데

크도 크도 그렇게 큰 배는 처음 보았다.

3층으로 되어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맨 꼭대기인 마스터를 볼려면

고개를 거의 90도로 꺽어야 될 정도로 높았고 또 가물가물했다.

 

나중에 해병대에 입대해 훈련시 해군에서 지원하던 상륙병력과 LVT(수륙양용 장갑차),중화기등을

실어 나르는 수송함인 동란시 인천 상륙작전에도 사용된 LST는 그것보다 훨씬 작았고

지금도 그 당시 선종이 궁금한데.


그건 그렇고.

 

전국 각지에서 온 뭇 남녀노소 그리고 군인들이 모여 사람끼리 치여 다닐만큼 북적대는 부두에서

고개 쳐들고 바로보는 바다에 떠있는 그 어마어마한 쇳덩어리엔

이미 승선한 군인들이 콩나물 시루처름 빡빡하게 서로 새카만 머리를 맞대고

1,2,3층 갑판의 난간에 닥지닥지 붙어 모자를 벗어 흔들고 있었다.

아마 족히 수천명은 되었지 싶다.

 


 

 

 

뭐라고 외치는지 핏대를 세워 고래고래 지르는데 철석이는 파도소리, 끼륵데는 갈매기떼,

그 넓은 부두를 꽉 메운 환송인파의 주고받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도 들리지도 않게 내질러데는

군악대의 우렁찬 나팔소리와 북소리에 묻혀 도통 들리지가 않았다.

 

부산시 남녀 각 중고교에서 온 학생들이 흔들어데는 5원인가 주고 산

길이가 한 두뼘쯤 되는 가느란 갈대에 붙인 종이 태극기에 맞춰 부르는 환송가,

부두중앙의 가설무대엔 빤짝이 옷을입은 가수들의 마이크 소리와 뺀드의 쿵짝거리는 소리.

 

부두 한쪽 어느 여학교에서

“자유통일 위해서 님들은 가셨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하는 합창이 들리면

저쪽 다른 남학교에선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을 간다~~~”며 받아치고

 

또 승선한 군인들이 잘 보이게끔 부두중앙 무대에선

“아~ 아~ 아~아 잘있거라 부산 항구야~ 미스김도 잘있어요 미스리도 안녕히~~“하며

요즈음으로 치면 주현미같이 불세출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의 이름모를 여가수의 코에걸린 소리가.

한마디로 북새통도 그런 북새통은 머리털나고 처음 보았다.

 

드디어 배가 출항하려는지 붕~~붕~~하는 굵은 뱃고동 소리를 연신 내지르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뭉클뭉클 솟아 오르며 선미의 시퍼런 바닷물을 울컥울컥 밀어낸다.

그리곤 철선 한가닥 굵기가 장정 팔뚝만큼 엄청나게 굵은 앵커 체인이 스스히 끌려 올라간다.

환송식의 크라이막스인지라 부두는 소리. 소리. 소리들로 달구어질데로 달아 올랐다.

 

“자유통일 위해서~~” “

삼천만의 자랑인~”

“아~아 아아아 잘있거라 부산 항구야~~”

“빰빠빰빠 빰빠바바 ~~둥둥 ~~칭칭~”

“야 !!살아서 돌아온나”

“꼭 돌아오세요. 꼬오옥”

“이놈아 우?던가 설치지 말고 니 몸조심하고 그 부적 꼭 몸에 지니고 다녀라~!!”

 

어린 내가 보아도 입에 두손을 대고 듣는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군함을 향해 외치는 그 모습은

측은했고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는 살아서 이 땅을 못밟을지도 모를 생사의 기로에서 가물가물 형체만 보이는 군인들이

생의 최후 몸부림인듯 모자를 손에들고 어디엔가 부두의 인파에 파묻혀 있을 사람을 향해

고래고래 외치며 죽어라 흔들어덴다.

 

........

 

학창시절 보았던 대단한 장관중의 하나였는데

50이된 지금도 나에겐 그때 파월 환송식 중 또렷하게 각인되 있는 두컷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거리가 너무 멀어 가물거렸지만 우리 軍民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여유만만하게

마치 사회 교과서에 본 맥아더 원수같은 모습으로 수송함 제일 꼭대기 마스터옆에서

파이프 입에물고 담배연기 파란 창공으로 내뿜던 아래위 하얀 제복의 풍체좋은

족히 완스타는 되었지 싶은 미해군.

 

그 사람을 성적표에 부모들 도장 찍어 오라면 덜덜 떨든 몇놈들이 “와 !!!맥아더 원수다”하고

서울대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가 좌우명이며 중1 수학이 시시해 시와 공을 초월해

홍성대저 수1도 아니고 수2의 정석을 보던 공부의 달인이자 가공할 초고수였던 나는(?ㅎ)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새끼들. 골에 똥 낑?나 맥아더 원수가 나이가 몇 살인데?

그리고 그 유명한 명언.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뿐이다란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이 무슨 3부두 시멘트 바닥에서 개 풀뜯어 먹는소리 하고있노 ㅋ”하며

나름대로 함장이라 추정했던 그 이방인의 모습과

 

또 하나는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홀로서서 연신 흐르는 눈물이 뺨을 타고 내리며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참던 20대 후반으로 보이던 한 여자의 모습이다.

 

늘씬한 키에 꽤 미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이로 보아

死地로 보내는 어린 남동생의 누나인지

아니면 때깔로 보아 하사관 마누라는 아닌것 같고 장교 마누라인지 둘 중 하나인것 같은데

어?든 어린 내가 보기에도 참 안스러웠다.

 

무슨 사연으로 혼자 왔는지 벌겋게 충혈되고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부은 눈.

울음을 참으려고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던 그 모습.

지금도 너무나 눈에 선하다.

 

그런데 나의 사감인지 몰라도 사람은 타인의 여유로움보단 연민에 더 끌리는가 보다.

 

한눈에 부산항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꼭대기 마스터에서 파이프 입에물고 담배연기 내뿜던

외국 영화에서나 보았던 그 멋들어진 금테두른 하얀 모자에 하얀 제복의 함장보다

그 당시 나에겐 젊은 아줌마로 보이던 그 여인에게 글이 자꾸 그쪽으로 가려고 하는걸 보니.

 

그때 부두의 그 여인이 눈물로 떠나보낸 그 사람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살아남아 돌아 와

재회의 눈물을 흘렸을까 ?

아니면 전사 통지서를 받고 오열에 또 오열을 했을까?

 

625동란시 우리를 위해 피흘린 혈맹의 보은과 수출할거라곤 개뿔도 없어 단 1달러라도 더 벌이려고

젊은이들을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죽여야만 되는 용병으로 전장으로 보내야 했던

먹고 살기위한 우리의 근대사.

 

그 한조각이 누렇게 빛바랜 종이가 되어 그때 눈물바다가 되버린

이별의 부산항에 펄럭펄럭 날아와 추억이란 놈으로 덮이며

그 여인의 애닯은 모습과 소리없이 흘러 내리던 눈물이 예의 그 누런 종이에 젖어 

이래저래 항구는 사연도 눈물도 많은 곳인란 생각으로 물드는 밤이다.

 

이래저래 항구는 사연도 눈물도 많은 곳이던가.

 

 

(클릭)

 

1930년대 이 땅의 트롯트 개척자이자  일본 앤까의 아버지 "고까 마사오"씨와

동시대에 쌍벽을 이룬 작곡의 황제 고 박시춘선생이 곡을짓고 남인수 선생이 부르신

“울며 헤어진 부산항"을 

김용임이 리바이벌한 노래를 올리며.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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