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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5월 초반에 책 추천 남긴 뒤로 5월 말에 인사드리네요.
네, 저 돌아왔습니다. 일단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건강도 무사하고요.
그동안의 몇 주를 회고하면, 선거는 이제 그만 좀 했으면 하는 바람밖에는 안 떠오르는군요.
약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남은 듯요. ㅋㅋ!
그럼 이제 슬슬 오늘 소개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도서명: 조선 마술사
저자: 이원태, 김탁환
* 이 작품은 시각장애인의 재활을 위한 사이트 넓은마을의 도서관 코너에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최근 월간 간행물 인터뷰가 정해졌다. 7월호인데, 그 대상이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은 인물 중 한 사람,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마술사였다. 다큐멘터리나 예능 프로에도 출연한 적 있다.
그런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현듯 이 책 《조선 마술사》가 떠올랐다. 예전에 한 번 읽었던 작품인데, 당시에는 감상문을 남기지 않았다. 영화화까지 된 경우라서 제법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당시 내가 서평을 쓰지 못할 만큼 분주했었지 싶다. 이제라도 인터뷰를 계기로 인연이 닿고 이어져서 감상을 남기게 되었으니 됐지 뭐.
이번에 깨달은 건데, 수작은 유행에 개의치 않더라. 잘 쓴 작품은 시기가 지나서 읽어도, 두 번 읽어도 재미있었다.
사진 설명: 영화 <조선 마술사>의 한 장면.
아마도 물랑루일 듯한 마술 공연판에서 주인공이 관중 앞에서 마술을 펼치려 하고 있다.
《조선 마술사》 - 마술판에서의 만남, 마술 같은 사랑, 마술 같은 인생
“소문은 편견을 낳을 뿐입니다. 폐하! 카타리나 파인이 이렇게 폐하의 궁에 왔습니다. 지금까지 저에 대해 듣거나 읽은 말과 글은 모두 잊으십시오. 폐하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 것만 믿으셨으면 합니다. 제 마술이 정말 마음에 드신다면, 저 아름다운 공책에 한 가지 진실만을 남겨 주십시오.”
이야기는 누군가의 회고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바로 19세기 영국을 이끌어온 빅토리아 여왕이다. 그녀는 자신의 대관식 전날을 술회하며 어떤 만남을,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전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식을 앞둔 날, 19살의 여왕은 침실에서 고대하던 인물을 접견한다. 바로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마술사 카타리나 파인이었다. 대관식 연습에 지친 빅토리아 여왕을 위한 멜버른 경의 깜짝 선물인 셈이다.
실제 역사관과는 별개로 빕토리아 여왕이 어릴 적부터 마술이나 신비로운 이야기 등에 관심이 많았다는 작가들의 설정이었다.
사실 이 대목이 흥미로웠던 한편, 조금 위화감을 느끼기도 했다. 19세기 즈음의 영국과 서양 세계는 아시아인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는 있을지언정, 한 명의 인격체로 대우하고 존중해줬다는 사회상은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도 아니고, 과연 동양에서 온 정체 불분명한 이국인과 영국의 여왕이 1:1로, 그것도 즉위식 전날에 대면하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설정이기는 했다. 어떤 면에서는 주인공들이 어떤 서사 끝에 먼 이국의 땅까지 오게 되었을까 하는 흥미가 솟기도 했고 말이다.
카타리나 파인은 초반부터 욕조를 요구하며 연꽃 마술을 선보이고, 여왕의 책을 감쪽같이 바꿔치기해서 여백 많은 노트로 만드는 등의 화려하고 신기한 마술을 선보인다. 그리고 19살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자신도 대관식에 참관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의 이야기이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조선의 옹주 ‘청명’과 조선 마술사 ‘환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닮지 않은 구석도 적지 않으니라. 네 어미는 문이나 벽을 기어오를 만큼 억센 팔은 지니지 못했느니라. 네 어미는 호위 내관을 따돌릴 만큼 날랜 다리를 가지지 못했느니라. 네 어미는 높은 다락에서 비스듬히 기대 누울 어깨가 없었느니라.”
그랬다. 조선의 공주, 아니 정확하게는 옹주인 청명은 그런 옹주였다. 어둠에 숨은 존재, 순해 보이지만 암투가 일어나는 궁궐에서 제 처지를 알고 몸을 숨길 줄 아는, 제법 강단이 있는 성격이었다. 더불어 알게 모르게 왕의 애정을 받는 막내딸이기도 하다. 왕은 지키지 않음으로써 옹주를 지킨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청명의 삶이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청명은 밤에 궁궐을 산책했다. 빛보다 어둠을 선호했다. 아니,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빛으로 나서는 걸 두려워했다. 버려지다시피한 별당에 외로이 기거했고, 유일한 낙은 소설책 읽기와 이야기 상상하기였다. 그나마 사촌이자 친구 은미가 없었다면 청명의 나날은 더욱 외로웠고 한층 어두웠을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친구 은미를 따라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장소, ‘물랑루’를 찾게 된다. 그토록 신기하다는 조선 마술사 환희의 마술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청명은 그곳에서 조선 으뜸 마술사 환희의 제안을 뺨까지 때리면서 거침없이 거절한다.
“환희? 기이한 놀이라, 곧 마술이란 뜻 아닌가? 안 될 건 없지만, 엄청난 자신감이거나 한심한 자만이지. 소설가가 자기 이름을 소설이라고 짓는 꼴이니. 어쨌든 좋네. 자네가 그 이름을 고집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어. 실력이 출중하면 환희란 시건방진 이름이 관객을 더 끌어 모을 수도 있으니까.”
환희는 환희단의 제일인 마술사였다.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공연도 당연히 제일 마지막 순서에 배정되어 있었고, 이름이 20번 이상 불리지 않고는 무대에 올라서지 않았다. 그는 물랑루 마술판에서 가장 반짝이는 존재였다. 말 물, 밝을 랑, 정자 루. 빛이 없는 곳, 그리하여 마술을 펼치기에 가장 최상인 판. 그 판에서 가장 빛나는 마술사.
그런데 어느 날의 공연 중 자꾸만 하얀 목을 가진 관객이 눈에 띄었다. 빛나는 무대보다 그 위와 아래와 옆과 안쪽을, 그에 깃든 어둠을 살피는 시선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눈에 밟혔다. 자존심이 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대 위로, 빛나는 공간으로 불렀다. 그리고 단호하게 뺨을 맞는 거절을 당했다. 마내자 기탁이 어찌저찌 수습을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환희의 물랑루 공연도 불투명해졌을지 모른다.
사실 청명과 환희의 첫 만남은 좀 흔한 클리셰인 대목이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재벌가 도련님에게 세상 그따위로 살지 말라며 뺨 후려치는 여주인공 또는 비웃음 날리면서 넌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며 사라지는 여주인공 같은 거.
독서하다가 청명의 행동에서 어째 그런 설정이 연상되어 혼자 폭소했다. 물론 약간 변주되어 소설 속에서는 청명이 귀한 신분이고 환희가 낮은 계급에 있긴 하지만.
덤으로 환희의 행동에서도 약간 웃음을 뿜었다. 그 왜 있지 않나. 내 제안을 거절한 건 네가 처음이야 하는 남주인공 혹은 날 무시한 건 곧 내 능력을 무시한 거라고 생각하며 발끈하는 남주인공 같은 거.
솔직히 흔해빠진 전개 방식이긴 한데, 구관이 명관이라고 자꾸 등장하는 거 보면 독자들의 니즈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면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그 니즈에서 몇 보 떨어진 감성의 소유자라 한번 웃고 넘어가는 대목에 지나지 않았지만.
좌우간 환희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은미를 통해 청명에게 다시 한번 만나줄 것을 청하고, 청명도 어떤 심경의 동요로 인해 환희의 제안을 수락한다.
마술판에서의 첫 만남, 그것이 마술 같은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둠 속에 머무른 옹주 청명과, 무대 아래 어둠에서 마술을 꿈꾸었고 현재 누구보다 빛나는 마술사 환희, 두 사람의 마술 같은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했다.
사진 설명: 영화 <조선 마술사>의 어떤 장면.
주인공 마술사가 손에 불덩이 공 같은 것을 들고 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마술에서 사랑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마술처럼 변화하는 - 《조선 마술사》
“마술사는 판에서 모든 것을 바꾼다. 마술사의 ‘변치 않는 진심’을 논하는 일이 우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마술사의 진심은 변화한다. 만물을 더 멋지게 바꾸는 것으로 마술사는
진심을 드러내는 셈이다. 변화가 마술사의 진심이란 사실을 알아차리는 이가 매우 적더라도, 단 한 사람뿐이라 해도, 단 한 사람도 없다 해도, 그래도!”
《조선 마술사》는 이원태와 김탁환, 두 작가들의 합작으로 창작된 소설이라고 한다. 어느 작가가 이야기의 골자를 짜고 어느 작가가 살을 붙였는지 그런 디테일한 작업 과정은 잘 모른다. 누가 이 글에 더 많은 지분을 투자했는지도 솔직히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나는 이 마술 같은 이야기가 재미있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로맨스적인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마술에 대한 묘사가 풍성한 점이 그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하기사 조선 마술사가 주인공인데, 마술에 대한 대목이 빠져서는 곤란할 것이다.
특히 내가 ‘북인북’이라고 부르는, 약간 액자식 구성 같은,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은근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청명은 책 읽기를 즐겨 그런지 이야기를 듣는 청자로서도 탁월했다. 그래서 환희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기도 하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외에 마내자 기탁의 수다맨 같은 이야기와 환희가 겪은 이국에서의 모험 등도 이 《조선 마술사》라는 소설에는 담겨 있다. 심지어 ‘울보 왕’이라고 불리는 왕의 애틋함도 들어 있어 안타깝기도 했다. 사랑하는 딸을 대놓고 사랑할 수 없게 만든 왕의 자리, 딸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아비의 마음 같은 게 아직도 깊게 여운이 남는다.
또한 청명과 환희가 만나서 마술이 펼쳐질 때마다 그 마술의 이름과 마술에 엮인 이야기들이 덧붙여진다. 토와술, 낙분술, 무영술, 오작술, 연쇄술, 잉화술, 집환술 등 다양한 마술들과 함께 두 주인공의 감정이 오가고 이야기와 사건도 전개된다. 또 각 마술에 담긴 의미, 마술사의 마음, 그런 게 녹아 있어 소설의 서사적인 부분이 참 돋보였다.
개인적으로 낙분술 마술이 가장 예쁘고 신기했다. 변주도 다양하다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연쇄술은 그 기술보다 그 마술에 담긴 의미가 좋았다. 그리고 오작술은 그림은 멋질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위를 걸어보고 싶지는 않다. 난 발밑이 탄탄하고 안정적인 게 좋다. 서양 마술에서 흔히 비둘기가 단골로 사용되는데, 조선 마술사 환희의 마술에서는 까마귀와 까치가 애용된다. 이름부터가 오작술이지 않는가.
덧붙여, 토아술은 진심으로 보고 싶지 않은 마술이었다. 손장난이나 눈속임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입에서 메뚜기나 지네 같은 게 나오는 마술은 내 정신적 건강에 유해하다. 자고로 마술이란 건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시각장애인에게 마술은 참 난해한 영역이다. 마술사든 관객이든, 모두 그렇다. 최근 인터뷰를 한 국내 유일의 시각장애인 마술사 ㅇㅇ 씨도 간단한 마술을 익히기까지 50회 이상 반복하는 수고를 했다고 한다. 그뿐인가, 마술을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마술이란 즐기기 까다로운 공연이다. 일단 마술은 관객의 이목을 마술사 혹은 다른 소품에 집중시키고 그 찰나의 틈에 펼쳐지는 기술 내지는 기-예이다. 시각적인 면모가 아무래도 강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인 즉, 시각장애인 관객에게는 참 보기 난감한 공연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조선 마술사》는 각 장면마다 시각화가 잘 되어서 정말 마술이란 공연을 흠뻑 즐길 수 있었다. 솔직히 영화로 보는 것보다 그냥 책을 읽는 게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훈륭한 영상이라 해도 글을 재료로 시각화된 내 상상력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조선 마술사 환희의 그림자로 청명을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각설하고, 우여곡절 끝에 환희와 청명은 조선을 떠난다. 청명이 청나라 태자의 후궁이 될 뻔한 위기와 환희가 한쪽 팔을 잃는 등의 고난을 겪었지만, 어쨌든 둘은 열하를 지나 유럽을 거쳐서 영국에 이르렀다. 그동안 청명은 마술사 카타리나 파인이 되었고, 환희는 그녀의 조수 이븐 폴로가 되었다.
이쯤에서 《조선 마술사》의 장르적 구분을 좀 짚고 가야겠다. 이 소설은 마술 소설이 아니다. 마술을 소재로 삼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로맨스 소설에 더 무게가 실린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술, 사물을 더 좋은 무언가로 바꾸어 보여주는 기술, 환상이나 눈속임일지라도 관객을 위한 재미를, 감동을, 위안을 선사하는 기-예. 그런 마술의 특징을 절묘하게 사랑과 엮었다고 해야 할까.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게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위하는 것, 상대방이 더 나은 무엇이 되도록,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마술과 사랑의 공통점을 찾아 조합한 서사적인 구도가 퍽 인상에 남는다.
그러나 환희와 청명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서로 발맞춰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마술의 시작인 ‘어둠’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무엇보다 화려해서 빛나는 마술은 어둠에서 시작되니까.
청명은 어둠을 볼 줄 아는 옹주였고, 환희는 그 어둠에서 빛을 자아내는 마술사였으니, 둘의 만남이 제법 절묘한 셈이다. 아니지, 이런 이야기 구도를 짠 작가님들의 스토리텔링이 절묘한 건가.
그런 의미에서 어둠 속에서 마술을 펼치는 우리나라 1호 시각장애인 마술사 ㅇㅇ 씨의 마술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마술, 환상, 그것들의 고향은 ‘어둠’이다. 마술은 그 어둠을 이용해 빛나는 기술을 펼치는 것이고. 또한 더 나은 무언가로 변화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 마술의 본질은 변화라고 하니까.
환희가 청명을 빛나는 존재로 만들었듯이. 청명이 어둠에서 환한 무대로 나왔듯이. 사랑이라는 마술 같은 일이 둘의 삶을 변화시켰듯이. 우리 삶에서 가끔은 이런 마술 같은 일들이 일어나듯이. 시각장애인 마술사 ㅇㅇ 씨에게 마술은 그런 것, 변화의 계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 문장을 적는 순간 들었다.
《조선 마술사》의 단점을 꼽자면, 전자도서 제작 과정에서 그런 건지, 묵자책 원본이 원래 그런 건지는 몰라도, 오타가 제법 많다는 점이다. 이야기 재미있게 읽다가 오타 나올 때마다 맥이 툭 끊기며 내 몰입도가 깨지면서 환상도 금이 쫙 가는 이 안타까움.
“삶은 마술이 아니지만 마술은 삶의 일부다.”
소설의 처음과 끝을 열고 닫는 문장이다. 이 책을 덮은 후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졌다.
“사랑은 삶이 아니지만 사랑은 삶의 일부다.”
PS. 서평에 이은 부록
사진 설명: 국내 1호, 유일의 시각장애인 마술사 김병휘 시의 모습들.
- 이 글을 등록한 시점에서 기사 관련 인터뷰는 마친 상황이다. 시각장애계 월간 소식지 7월호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77호 ‘사람의 향기’ 코너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
7월에 발간되는데 왜 5월 말부터 6월 초 사이에 인터뷰하고, 기사 쓰고, 마감을 치는 등 난리냐고?
원래 그렇다. 점자는 손이 많이 가는 세심한 글자고, 특히 점자와 묵자(일반 한글)이 함께 출력되는 혼합 간행물은 더욱 디테일한 공정 과정이 필요하다.
준비 기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는 뜻!
그 부작용으로 가끔 오늘이 몇 월인지 헷갈리게 된다.
7월이었나 했는데, 아직 5월. 7월호 기사 원고 쓰고 있는데, 아직 달력은 5월. 나는 이따금 남들보다 몇 달 앞선 미래를 산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