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주 상수의 퍼즐
우주 배경 복사, 즉 우주의 시작과 함께한 그 빛을 관측함으로써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을 꼽으라면,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에너지에 대한 것이다. 흔히 우리가 물질이라고 인식하는, 즉 주기율표에 있는 원자들 혹은 이들을 구성하는 전자, 양성자, 혹은 중성자 등이 우주에 있는 물질의 전부일 거라는 자연스러운 생각이 옳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천문학적인 관측으로 알려져 있었다. 질량이 0이 아닌 것들을, 즉 빛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모든 것을 물질이라고 통칭하기로 하면, 우주에 있는 물질의 약 6분의 1 정도만이 인류가 흔히 알고 있는 원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나머지 6분의 5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 역시 현재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숙제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우주 배경 복사를 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현재 우주의 에너지 밀도를 1이라고 하면, 이 중 질량을 가진 물질이 차지하는 부분은 4분의 1에 불과하고, 나머지 4분의 3은 소위 암흑 에너지라고 하는 질량이 없는 형태의 에너지가 차지한다는 것이다. 질량이 없는 에너지라고 하면 전반부에 언급된 빛이나 중력파를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암흑 에너지는 이런 파동형의 에너지와도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어떤 의미에서도 입자들의 모임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공간의 팽창이나 수축과 상관없이 항상 일정한 밀도를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이상한 성질은 일견 에너지 보존 법칙을 위배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으며, 특히 아래에서 곧 제기할 퍼즐에 직결된다.
우주에 암흑 에너지가 존재할 가능성은, 사실,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정립할 당시 우주 상수라는 조금 더 구체적인 형태로 제기되었다가 본인에 의하여 곧바로 폐기된 것이다. 이론적인 가능성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으나, 이후 대부분의 우주론 그리고 입자물리학 학자들 역시 아인슈타인을 따라서 이를 무시하였고, 실제로 1990년대까지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은 우리 우주에는 왜 암흑 에너지가 없어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증명하려고 무수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과거 이론학자들의 편견은, 단순히 아인슈타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현재 우주의 에너지 밀도의 4분의 3이 암흑 에너지 혹은 우주 상수에 해당한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퍼즐이 위에 말한 올버스의 어두운 밤하늘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자면 우주 상수가 주는 에너지와 일반적인 물질의 가장 큰 차이점에 대하여 약간의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우주 배경 복사의 관측이 중요한 이유 역시 이 우주의 팽창이 그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는 직접적으로 관측하고 정량적으로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공간이 팽창하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물질의 양이 변하지 않으면 당연히 물질의 밀도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공간의 체적이 두 배가 되면, 밀도는 절반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주 상수는 조금 다른 종류의 에너지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 상수로 대변되는 암흑 에너지의 밀도는 공간의 팽창 여부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그래서 “상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의 팽창이 계속되면 물질의 밀도는 계속 줄어들지만, 우주 상수는 전혀 줄어들지 않으며, 따라서 먼 미래에는 물질의 밀도는 상대적으로 거의 무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같은 현상을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서 생각해보자. 우주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과거에는 물질의 밀도가 그만큼 커질 것이지만, 우주 상수는 일정하므로 암흑 에너지의 밀도는 역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1 대 3 정도로 암흑 에너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과거로 돌아갈수록 물질의 밀도가 상대적으로 커질 것이다. 우주의 역사를 옆 사무실에 있는 우주론 학자에 물어보고, 이를 토대로 간단한 산수를 해보면, 우주의 나이가 1초였던 순간에 이 물질과 우주 상수의 밀도를 비교해볼 수 있을 텐데, 대략
<수식 4>
정도이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은 “우주는 왜 이렇게 작은 비율의 우주 상수를 가지고 태어나야 했을까?”이다.
위의 숫자가 실제로 피부에 느껴지지 않는다면, 간단한 우화를 생각해보자. 스무 살에, 혼자 사업을 하겠다고 가출했던 아들이 서른 살이 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4억 원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자. 그중 1억은 당시에 손자를 너무 아끼던 외할머니가 몰래 빌려준 것이었고, 나머지 3억은, 역시 10년 전에 빌린, 연 100%의 이자율을 자랑하는 고리의 사채였다. 아버지가 과연 아들이 얼마를 사채로 빌린 것이었는지를 역산해보니, 가출할 당시 30만 원을 사채로 빌린 것이 매년 두 배씩 불어나서 1024배가 되었고, 그렇게 3억 원의 빚이 된 것이었다. 이미 외할머니가 마련해준 1억 원을 가지고 있던 이 젊은이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30만 원의 사채를 빌리게 되었을까?
마찬가지로, 조물주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만큼의 우주 상수를 섞어넣기로 했을까? 사실 우주는 1초에 시작한 것이 아니므로 이 퍼즐은 더 이른 시기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더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이 우주 상수가 실제 0이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이렇게 작은 숫자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조금 더 이성적인 이유로 인하여 아예 처음부터 0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0인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준 1억 원을 들고 가출하면서 추가로 30만 원의 사채를 빌릴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우주 상수가 처음부터 0이었다면 차라리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어버렸으니, 이 작은 숫자를 어떻게든 설명해야 하는데, 이것이 우주 상수의 퍼즐이다.
4. 초끈 이론과 멀티버스
이제 다시 맥스웰과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전자기 이론과 중력 이론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이한 의미가 있는데, 이론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실험과 관측이 차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물리적인 현상들보다는, 이를 담는 이론 자체의 수학적 치밀함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맥스웰 방정식의 경우, 위에 이미 언급된 대로 1830년대에 대부분의 실험 결과와 이를 설명하는 법칙들이 완성되어 있는 상태였다. 맥스웰이 그 위에 얹은 “숟가락”은 전자와 같은 전하가 갑자기 소멸하는 현상이 없다는 가정을 하는 순간, 수학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이전까지 이의 중요성을 인지한 학자가 이전에 없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또한, 맥스웰 방정식이 항상 옳다는 가정하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 특수 상대성 이론이었고, 그 특수 상대성 이론과 배치되는 뉴턴의 만유인력을 대체하는 무언가가 필요해서 고안한 것이 일반 상대성 이론이었다. 물론 후자의 완성 이후, 당시까지 뉴턴 역학으로 잘 설명되지 않던 수성의 근접점 이동 현상을 깔끔하게 설명하기는 하였으나,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적지 않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가장 근원적인 것들을 연구하고 있는 물리학자들이 풀고 싶어하는 문제들 역시 한 세기 전 당시의 그것과 많은 점에서 유사해 보인다. 19세기 말 물리학자들에게 던져진 화두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과 뉴턴 역학의 충돌이었다고 한다면, 현재의 화두는 양자 역학과 중력 이론의 충돌이다. 광전효과를 광자의 존재를 통해 설명하여 양자 역학을 사실상 처음으로 구현한 아인슈타인이 노년에 이를 대체할 이론을 찾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과학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일화인데, 한편 그 이외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오히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어떻게 양자화될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이 두 목표가 모두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맥스웰 이론과 뉴턴 역학의 충돌이 상대성 이론의 출현을 예고했듯이, 양자 역학의 원리들과 일반 상대론이 공존하려면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해 보인다. 어느 쪽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방은 1970년대에 시작되어 일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으나, 지금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양자 역학적으로 담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으며, 또한 이들 중 대부분이 그 새로운 체계가 초끈 이론이라는 데 공감한다고 할 수 있다.
관심 있는 이들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초끈 이론이 가진 가장 큰 맹점은, 역시 잘 알려져 있듯이 실험적인 검증이 매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이를 비꼬아 “Not Even Wrong(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이라는 제목으로 초끈 이론을 비판한 책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을 정도이다. 현재 초끈 이론을 지탱하는 버팀목들은, 따라서, 20세기 물리학의 양대 축이 가진 상호 모순을 어떻게 깔끔하게 해결하고 있는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초끈 이론의 모습은 150년 전 처음 출현한 맥스웰 방정식이나 1905년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많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맥스웰이 고안한 그 중요한 “숟가락”의 경우 패러데이 법칙과 매우 유사한데, 그러나 그 효과가 훨씬 작아서 패러데이가 했던 종류의 실험으로는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이론의 구조적인 필요에 의하여 삽입되었고, 나중에 전자기파를 만들고 검출하면서 간접적으로 검증된 셈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 역시, 맥스웰 방정식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성격이 강하고, 그 이외에는 직접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가 1950년대 소위 소립자 가속기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고 사용되면서야 직접적인 검증이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 역시 가장 직접적인 검증은 2016년 발표된 중력파 검출이라고 할 수 있으니 실로 100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고 할 수 있다.
초끈 이론도 이와 비슷하게 이론의 구조적 필요성에 의하여 고안되고 연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의 신임을 얻고 있는 것은 이렇다 할 대안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새로운 체계가 보여주는 구조가 너무나도 심오하고 다양하며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끈 이론보다 훨씬 단순한 상대성 이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필자가 초끈 이론의 이야기까지 꺼내는 것은, 왜일까? 한 가지 이유는 초끈 이론이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세계의 근원을 밝히려는 계속되는 노력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위에서 제기한 우주 상수의 문제에 대한, 조금은 삐딱한 대답을 한 가지 언급하기 위해서이다.
초끈 이론은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물리학적인 그리고 수학적인 패러다임에 가깝다. 상대론이나 양자 역학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초끈 이론이 보여주는 다양한 현상 중 많은 부분이, 초끈 이론은 4차원이 아닌 10차원의 시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된다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사실에 기인한다. 이 때문에 초끈 이론의 체계 안에 우리 우주를 실현하자면 4차원의 시공간뿐만 아니라, 6차원의 숨겨진 공간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시공간의 모든 지점에 작게 감긴 6차원의 공간이 숨겨져 있는데, 그 크기가 너무 작아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들여다볼 수 없어, 하나의 점과 구별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얼마나 많은 종류의 6차원 공간이 4차원 우주를 구현하는 데 쓰일 수 있을까? 답은 “어마어마하게 많다”이다. 무한히 많지는 않다는 것이 중론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101000가지는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한다. 불교 경전에서 가장 큰 숫자로 언급되는 “무량수”가 1088이라는데, 이보다 10912배 더 큰 숫자이다. 이렇게 다양한 101000가지의 서로 다른 4차원 우주가 구현될 수 있는 것이 초끈 이론이 가진 대표적인 특징이다.
더구나 이런 수많은 가능성이 서로 완벽히 수학적으로 격리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10차원 우주의 각기 다른 곳 어딘가에서는 수많은 4차원 우주가 하나씩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가 유한하고 절대적이라는 사실이, 여기에도 또 다시 중요하게 다가온다. 우주의 서로 다른 부분이 공간적으로 충분히 떨어져 있으면, 즉 빛을 포함한 어떠한 물리적인 연결도 불가능하다면, 서로 관련될 이유가 없고, 서로 완전히 다른 물리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숨겨진 6차원 공간의 의미가 나머지 4차원 시공간 입장에서도 매우 지대하다는 것이 또한 초끈 이론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이 공간의 체적이 4차원 시공간에서의 중력의 세기를 정하기도 하고, 그 모양이 4차원 시공간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소립자의 종류를 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지 가능한 4차원 우주의 모습과 이 숨겨져서 보이지 않는 6차원 공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여러 가지 중 하나가 4차원 우주의 우주 상수다.
주어진 우주는 하나의 성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통상적인 생각을 버리고 나면, 상상할 수 있는 우주의 모습은 매우 다르게 다가온다. 흔히 멀티버스(multiverse)라고 부르는 초대형 우주 안에 서로 다른 우주 상수를 가진 일종의 섬과 같은 보통의 우주가 101000가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초끈 이론의 매우 특이한 주장인데, 이것이 과연 우리의 우주 상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매우 유사한 문제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구 표면의 온도는 평균 15도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데 매우 유리한 온도인 듯하다. 특히 액체 상태의 물이 가능하고, 따라서 바다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되는 지구의 생태계를 위하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지구의 온도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태양과의 거리, 그리고 대기의 구성 등등을 이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겠으나, 원래 질문은 왜 하필 지구의 위치와 환경 등이 섭씨 15도가 되도록 만들어졌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인데 이에 대한 당위적인 설명이 있을 리가 없다. 이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이 존재하고 그 각각의 행성이 가진 표면 온도는 천차만별일 텐데, 그중 특정한 한 행성의 표면 온도가 15도이어야 할 과학적 당위성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는 거꾸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이 있고, 그중에는 액체의 물이 가능한 정도의 온도를 가지는 행성이 일부 존재할 것인데, 그런 행성에서는 생태계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그런 중 하나의 행성에서 우리의 생태계가 출현했다는 관점이다. 어떻게 보면 지구가 환경적으로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원래 질문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은 지구가 특별할 것 없다는, 코페르니쿠스 원리의 우주적인 확장판에 해당한다.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한 15도라는 게 환경의 우연이고, 질문 자체가 매우 인류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말이다.
우주 상수의 문제도, 이와 유사하게 환경적인 우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멀티버스로부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론이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이유를 한 가지 들 수 있는데, 만일 우주 상수의 값이 우리의 그것보다 10배 이상 더 큰 우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면 된다.
주어진 우주에서 별과 은하가 만들어지려면 사실 매우 다양한 조건이 필요한데, 알고 보니 우주 상수가 충분히 작아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우주 상수는 공간을 매우 빠르게 팽창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물질이 중력에 의하여 서로 모이는 것을 쉽게 방해하고, 따라서 우주 상수가 너무 크면 은하, 그리고 당연히 그 안의 별이나 행성들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물리학적으로 없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기준이 되는 우주 상수의 크기가 대략 우리 우주의 그것보다 10배 정도라고 한다. 즉 10배가 넘는 우주에는 은하도, 별도, 행성도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우주 상수에 대한 원래의 질문과 위의 지구 표면 온도에 대한 질문의 유사함이 보일 것이다. 상당히 편리하게 주어진 지구 표면 온도에 대한 의문이 과학적이건 철학적이건 의미가 있으려면, 지구가 우주의 유일한 행성이거나 혹은 많지 않은 행성 중 하나이어야 한다. 많지 않은 행성 중에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환경을 가진 행성이 굳이 존재할 이유는 확률적으로 없어 보이므로 무언가 과학적인, 이성적인, 혹은 종교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십 조의 행성 중 하나가 생태계에 적합한 환경을 가질 수 있음은, 처음부터 과학적인 의문일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일한 우주의 우주 상수가 이렇게 작은 것이 무언가 설명이 필요한 문제일 수 있으나, 101000가지 우주 중 극히 일부가 이렇게 작은 우주 상수를 가지고 태어났고, 이들의 경우에 한하여 은하와 별과 행성이 가능하다면, 우주 상수의 문제는 처음부터 과학적인 대답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매우 많은 행성, 혹은 매우 많은 섬우주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태양계에 행성들이 존재하고, 은하 하나 하나에 거의 조 단위의 항성이 존재하며, 우리 우주에 보이는 그 은하의 개수 역시 비슷한 숫자임을 감안하면, 지구 표면 온도에 대한 의문은 과학적 대답이 있을 필요가 없음이 자명하다. 137억 광년보다 가까운 행성의 개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0100을 넘지는 않는데, 이에 비하여 초끈 이론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섬우주의 숫자가 101000이라고 한다면, 우주 상수의 문제 역시 동일한 이유로 과학적인 대답이 필요 없는 환경적인 우연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우주 상수 문제에 대한 옳은 대답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소위 멀티버스가 실존해야 하는데, 이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초끈 이론이 옳은 근본 이론이어야만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초끈 이론의 실험적 검증은 불행히도 아직 요원해 보이기 때문이다.
5. 에필로그
빛의 속도를 처음 재려고 한 사람은 그전에도 있었겠지만, 갈릴레이가 등불 두 개를 사용해서 시도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천으로 가린 등불을 하나씩 가지고,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두 산봉우리에 각자 올라간 두 사람의 협업이었다. 갈릴레이가 등불의 가림막을 열면, 조수도 그 불빛이 보이는 순간 가림막을 연다. 두 등불 사이의 거리 두 배를 갈릴레오에게 두 번째 등불이 보이기까지 걸린 시간으로 나누면, 빛의 속도를 잴 수 있다는, 나름 신선한 시도였다. 물론 문제는 이 실험 과정에서 가장 느린 부분이 빛의 속도가 아니라 사람의 신경계와 근육의 반응 속도라는 문제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 실험에서 갈릴레오는 빛의 속도가 소리의 속도보다 10배 이상 빠르다는 결론까지는 도달했다고 한다. 후자가 약 초속 340m이니 이해할 만한 결과이다. 이 이야기의 가장 놀라운 대목은 빛에도 유한한 속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자체가 아닐까 한다.
17세기와 18세기 초에 걸쳐서, 천문학적인 관측을 통해 간접적으로 빛의 속도를 유추한 경우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광속 측정 실험을 고안한 것은 19세기의 피조(Hippolyte Fizeau)라고 한다. 톱니바퀴와 거울을 사용한, 지금 보면 상당히 원시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1849년경의 실험의 결과가 초속 31만 3000㎞, 이를 조금 다르게 구현한 푸코(Léon Foucault)의 실험을 통해 나온 1862년의 결과가 초속 29만 8000㎞이었는데, 지금 알려져 있는 그것과 비교해보아도 많이 다르지 않다. 당시의 제한적인 조건에서도 이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실험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위에서 줄곧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라고 이야기하였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는 2억 9979만 2458m인데, 특이하게도 소수점 이하가 없다. 무언가의 개수도 아닌 바에야 조금 이상해 보인다. 속도는 진행한 거리를 걸린 시간으로 나눈 것이고, 이런 나눗셈이 정수로 떨어질 것을 기대하기는 힘든데도 말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길이의 정의 자체에 빛의 속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소위 “메트르 데 자르시브(Mètre des Archives)”라고 부르는 백금 혹은 백금-이리디움 합금으로 만든 막대를 1미터라는 길이의 표준으로 사용하였는데, 1983년에는 무언가의 길이를 사용하는 이런 체계를 포기하고, 대신 빛이 2억 9979만 2458분의 1초 동안 움직이는 거리를 1미터로 정의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소수점 이하가 있을 수 없는 것인데, 이 이야기에서 빛의 속도가 절대적이라는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맥스웰로부터 시작된 빛의 이야기를 물리학자로서의 관점에서 되돌아보았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의 의미를 바꿀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였고, 137억 년 전 우주의 시작을 지금의 인류가 직접 촬영하는 게 가능함을 알려주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PC를 동작하게 해준, 그 모든 것이 맥스웰이 얹은 “숟가락”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에, 같은 물리학자로서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작 맥스웰 본인은 이러한 미래를 전혀 보지 못하고, 그의 이론을 집대성한 저서인 『A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의 교정판을 만들던 도중인 1879년에, 48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맥스웰 전자기 이론의 가장 직접적인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벌써 한 세기가 지나서, 이제는 그의 고전적인 상대성 이론이 완벽히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가들에게 양자적인 의미에서의 중력은 아직 이해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다.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을 갈릴레이와 뉴턴의 덫에서 구해낸 1905년 아인슈타인의 기적을, 초끈 이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얼마나 충실히 그리고 얼마나 구체적으로 재현해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