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한계시록 11장 14-19절 일곱 번째 나팔: 왕이신 그리스도의 판결
이제 두 증인에 관한 설명을 끝내고 다시 나팔재앙의 마지막 부분으로 돌아갑니다. 여섯 번째 나팔로 둘째 화가 지나가고 이제 일곱 번째 나팔을 붑니다. 이 일곱 번째 나팔에는 다시 일곱 대접의 나팔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하늘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큰 음성들이 나서 이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이것은 많은 하늘에 속한 천사들과 성도들의 외침일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이신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자기 나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인 양 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왕노롯 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 성가 중에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의지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는 찬송입니다. 오늘 큰 음성과 더불어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바로 그것이 진리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요한계시록의 특징이 재앙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발견이 됩니다.
큰 음성들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있던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 17-18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것은 15절에 대한 화답입니다.
그리고 이십사 장로들의 경배와 함께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립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언약궤가 보입니다. 그와 동시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게 됩니다(19절).
여기서 24장로들이 고백하는 고백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감사의 내용의 첫 번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갖는 경외심은 하나님을 섬기는 행동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란 온갖 죄악으로 땅을 망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마치 가나안 백성들이 땅을 망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땅을 망쳐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땅은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내칩니다. 그래서 땅을 망친 사람들이 그 땅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를 말씀드렸는데 둘째부터 네 번째의 내용들은 첫 번째인 예수님이 왕이 되셔야만 했던 이유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왕으로써 행하신 일 때문에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을 누구라고 합니까? 17절을 보면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하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옛적에도 계신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옛적부터 지금까지 선한 일을 해오셨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십사 장로에게 감사 거리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감사할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이후로 가르쳐 오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악은 벌하시고 믿음으로 선한 일을 행한 사람들은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믿음으로 참된 예배를 드렸던 아벨의 제사에 응답하심으로 아벨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없이 제사를 드렸던 가인의 경우는 그 마음을 드러내셔서 그의 제사를 드리는 그 행동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해 침묵하셨습니다. 그런 가인은 하나님에게서 감사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의문을 가질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참된 제사를 드린 결과가 죽음이었잖아요?“ ”그래서 죽인 자인 가인은 이 땅에서 잘 살고 죽임을 당한 아벨만 억울한거잖아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가인의 죽음이후에 가인의 생명이 역사하는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의인을 죽인 악인으로 언급될 뿐입니다. 그러나 아벨의 영혼은 살아있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제단 아래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런 아벨을 의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5절입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여러분들의 생명이 만일 이 땅 뿐이면 어떻게라도, 또 단 하루라도 더 살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생명은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까지 계속해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 죽는다고 할 때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자신을 드릴 수 있는 것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 주시면서 여러분들을 살리신 예수님이 온 땅의 왕이 되셨을 때 여러분들의 기쁨은 충만하며 감사히, 그리고 즐거이 자신을 예수님의 종으로써 자신을 내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들을 괴롭힘으로 고난 가운데 살게 하였던 수많은 악인들을 공의로써 보응하시는 예수님의 정의를 여러분들은 믿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인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셨다는 것이나. 세 번째인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이든지, 네 번째인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는 예수님의 행동이 공의롭고 정의롭다는 것을 찬송하며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왕이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여러분들 역시 선을 행하고 공평과 정의로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설사 그것 때문에 어려움이 오고 고난이 오고 박해가 온다 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믿음을 보시고 여러분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특히 여기 두 번째를 보면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누구를 향하여 분노했습니까?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분노했습니다. 유대교를 믿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던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것처럼, 그리고 로마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것처럼, 천주교가 개신교를 박해 했던 것처럼,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인들을 향해 박해했던 것처럼, 이슬람이 기독교에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역사는 수많은 신앙을 갖지 않은 이방인들이 일어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분노했고 박해를 가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이유가 무엇때문이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행한 것은 그들의 거짓에 동조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을 믿고 그 진리를 전파하며 진리가 증거하는 내용의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마치 아버지의 뜻을 알고 아버지의 뜻을 전하며 아버지가 행하라고 말씀하신 일을 이루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였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인 이방인들은 눈에 가시처럼 여기면서 박해를 가하고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당하는 처음부터 나서서 막아주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중 하나는 악을 멸하실 때 그 죄악의 무게를 달아보시고 도저히 용납이 안될 때 심판하시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수많은 고난을 참고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인내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인내가 아니면 이길 수 없는 길고 지루한 싸움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비록 육신은 온갖 억울한 고난과 죽음에 넘겨져도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하시지만 고난을 겪도록 내버려주시고 구원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원하시지 않으시고 눈을 질끈 감으시고 참으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고난 때에 당장이라고 구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시면서 예수님은 눈을 질끈 감으시고 참으십니다.
그로 인해 악인들의 악이 더욱 더 많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안에 믿음이 없었던 것을 드러냅니다. 자기의 육신을 구원하고자 하여 스스로 예수님을 배반하여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후에 가장 많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고발하는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그 영적인 이방인들인 불신자들과 교회에 다니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난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의 특징은 죽은 자들에 대한 공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졌던 마음과 행한 말들과 행한 행동들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그렇게도 두 증인들이 외쳤던 마지막 남은 용서의 기회를 발로 차버린 자신들의 그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갖게 되었는지를 그제서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죽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그들 안에 없는 것입니다. 그 죽은 자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은 절대로 가볍게 여겨지면 안되는 날입니다. 세상은 몰라도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것을 매우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요 절박한 심판을 앞두고 있는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의 날과 구원의 날에 하나님께서 내미신 손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 왕의 손을 잡을 때 왕의 손을 잡은 그 믿음이 자신들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는 것을 보는 그 날에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십사 장로들이 시인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도래하고 이루어질 때 하늘에서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면서 이 땅 역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19절입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립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 있는 언약궤가 보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믿는 자에게는 믿는 자에게 맞게, 믿지 않는 자는 믿지 않는 자에 맞게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왜 중요합니까?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일점 일획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19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입니다. 그와 동시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사람의 손에 의한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에 의한 재앙으로 어마어마한 재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재앙 때 피할 사람들은 아주 없습니다. 오직 왕이신 예수님께 피한 사람들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중요하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임하셨음을 감사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