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도로를 중심으로 골목들이 갈비뼈처럼 뻗어나간다. 가슴께로 흘러들던 그 아련한 소리를 찾아 한 골목 입구에 들어선다. 백여 년이 넘은 종소리를 들으며 내 완악한 마음을 깨우고 싶은 것이다. 설핏 휘도는 골목 흙돌담 아래 연둣빛 강아지풀이 꼬리를 내밀며 마중한다. 길 따라 들어서니 영천 화북면 자천교회 안내판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거기, 백여 년 전으로 들어서는 시간의 문이 열려 있다.
1903년도에 설립된 자천교회는 지방문화재 452호로 목조 단층인 한옥이다. 조선의 유교양식을 바탕으로 지어진 일자형 건물이 아담해 보인다. 유교를 뛰어 넘어 이상세계인 개신교를 품고서 세기를 뛰어넘는 정신적인 가교 역할을 했던 자천교회다.
대문 앞에 서자 기와지붕 처마 밑에 ‘예배당’이라 씌어진 작은 현판이 눈에 띈다. 커다란 간판이 아닌 조그만 현판과 작고 노란 흙마당이 안으로 불쑥 들어서기가 조심스러울 만큼 적요하다. 마당 입구에 서서 머뭇거리는데 오른쪽 마당 한 켠에 보고싶었던 종탑이 우뚝 서 있다.
사뿐사뿐 나무종탑 가까이로 간다. 널따랗고 높은 사다리모양 네 개를 비스듬하게 세워 놓아 탑모양을 이룬 꼭대기에서 종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종매를 묶은 밧줄은 흘러내려 나무탑 종아리 께에 걸쳐져 있다. 이 종소리로 유년의 종소리를 불러내어 다시 태어나고 싶다. 오래된 시간을 잡아당기듯 줄을 잡는다. 백여 년의 시간이 그냥 흘러간 게 아니라는 듯 밧줄은 단단하고 묵직하다. 팔에 힘을 주자 종은 기다렸다는 듯 온 몸으로 울음을 토하고 만다.
어린 날 신새벽에 나를 찾아오던 그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달빛을 가로질러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맑은 종소리에 잠이 깨어 나도 모르게 흐느꼈다. 식구들 모르게 숨죽여 베갯잇을 적시곤 했던 것이 남다른 감성이나 사춘기의 감상이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만신창이가 된 후 알았다. 딱딱한 몸을 때려 흘러나오는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는 내 영혼을 향한 신의 음성임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제 멋대로 살기에도 적절하다. 이른 나이에 부모를 떠나 스스로 어른이 되고 삶을 결정짓고 무거운 책임감에 눌리며 살아왔다. 모든 것을 나의 의지로 움직였다. 반대가 일어나면 설득시키고 아부와 애교로 부모형제와 직장 상사의 권위까지도 어느 정도 무너지게 하는 완악함이 무섭게 쌓여갔다. 이런 마음대로의 시간들은 타인을 향한 나의 마음을 점점 메마르게 만들어갔고 마음이 딱딱해질수록 삶은 자유롭고 즐거웠다.
그 맑은 가락이 가슴으로 흘러들어 영혼을 깨우던 내 유년의 종소리는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귓전과 가슴이 기억하는 그리운 종소리를 찾아 헤맸다. 새해 벽두에 울려 퍼지는 보신각의 종소리는 일 년의 희망을 불어넣으며 경주 박물관 앞 에밀레 종은 신라 천년의 얼을 살려낸다. 그런 텔레비전 화면으로 일 년에 한 번 듣는 종소리로는 마음을 녹여내기 힘들었다. 마음을 깨뜨리는 게 쉽지 않음을 자각하고서야 내 안에 사라진 종소리를 찾아 헤맸다. 모름지기 종소리란 가슴으로 들어야한다. 완악한 마음을 유순하게 만들어내는 울림으로 들려올 때 그것은 한낱 종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존재를 깨우는 음성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종탑 앞에서 나는 마음 한복판에 뚫려있는 구멍 하나를 본다. 이 땅의 삶이 끝난 후에는 아무런 부질없을 물질과 헛된 사랑으로 채우려했던 커다란 구멍이다. 욕심의 크기는 ‘조금만 더’라고 하는 말이 있듯 그것은 밑이 빠진 채울 수 없는 크기다. 내 마음에 모질게 자리잡은 이 구멍을 들여다보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조선 말, 유교의 관습으로 뭉쳐진 가슴에 이 새로운 이상세계는 얼마나 낯설었을까. 관습이 때로는 완악함으로 자리를 잡아가며 새로운 것과의 부딪힘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고 부르는 그 맑은 음성이 화북의 신새벽에 울러퍼졌을 테다. 신의 음성 같은 종소리가 골목골목을 휘돌아 나가면 사람들은 새 세상에 홀린 듯 예배당으로 나와 앉았을 지도 모른다. 구한말의 내면을 흔들어 잠자던 이들을 깨쳤을 종소리는 아집을 내려놓으라는 음성이다. ‘잠자는 자여, 일어나 우리가 새 나라의 주역이 되자.’라며 울리는 외침이다. 그러다 곧 일제치하에 들어섰고 화북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를 내려놓은 채 광복을 위한 기도에 전념했으리라.
자천교회의 종은 그 당시 면장 부인이 헌금을 하여 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종소리도 한 때 비운을 맞이했다. 일제가 무기를 만들기 위해 조선의 놋 재품을 강제로 거두어들임으로 공백의 시간이 있었다. 이 아픈 시간은 내 마음의 완악한 시기와 맞닿는다는 생각이 든다. 해방이 된 후에야 다시 종탑을 세우게 됐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자신을 버리려 나아가는 예배자리로의 부름이다.
검푸른 새벽을 달려와 내 안에 안기던 유년의 종소리가 살아난다. 살며 묻은 두터운 때가 벗겨지는 듯하다. 눈시울이 젖는다. 딱딱하고 얼어붙었던 마음에 해방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
종탑을 잠깐 뒤로한 채 마당을 가로질러 예배당 앞으로 다가선다. 동그란 문고리를 쥐고 당겨본다. 세월의 더께가 묻은 통나무들이 서로 깍지를 끼고 천장과 벽을 이어준다. 남녀유별을 보여주는 칸막이가 예배당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백여 년 전의 통념이 거미줄에 걸려 있다. 여러 가지 기물은 박제된 듯 고요하다.
다시 내려 선 뜰에 시간이 멈춘 듯하다. 개인과 집단의 혁명은 부르짖음이 아니라 그윽한 소리 하나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다시 생각한다. 자천교회 대문 너머 푸른 보리밭이 지나간 시간을 출렁인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전거 한 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간다. 순간, 시간은 자전거의 작은 바퀴를 타고 금새 21세기로 돌아와 버린다. 나는 백 년의 시차를 담기 위해 얼른 카메라를 연다. 새로운 신새벽을 깨우는 유년의 아름다운 종소리를 가득히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