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흔들리며 길을 간다!
인도에서 데칸고원에 속한 라열라시마지역을 순회하면서 수많은 어린이들을 만났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 “희망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하고 그들의 대답을 듣는 것으로 방문의 일정을 시작하곤 하였다. 어린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할 것 없이 한 사람을 주목하여 바라보면서 꿈과 희망을 물으면 모두들 기뻐하며 집중하였다. 분위기가 들떠서 소란해지기도 하지만 서로의 꿈을 아는 시간이고 꿈이 없었던 아이들은 주변의 친구들의 꿈을 베끼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목하며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며 격려하였다. 아이들은 용감하게 벌떡 일어서서 자신들이 꿈꾸는 직업을 자신 있게 말하였다. 유치원 아이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을 좋아하였다. 그들은 경찰, 군인, 교사, 간호사, 운전사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의사, 은행원, 공무원, 사업가, 과학자, 컴퓨터 전문가, 박사, 교수, 가수 등이 나온다. 나는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그들에게 “May God bless you!”와 “Your dreams will come true.” 라는 축복의 말을 일일이 해준다.
가뭄에 콩 나듯이 “꿈이 무엇이냐?”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목사” 또는 “선교사”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어 다시 한 번 꿈이 무엇인가를 물은 뒤에 대답이 같으면 교회 담임 목사님에게 아이들의 이름을 적게 만들었다. 그리고 전 교인들 앞에 ‘주의 종이 되고자 하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지혜와 믿음 또한 잘 성장하도록 날마다 기도할 것’을 부탁하였다.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는 아이들 또한 앞으로 불러서 다시 확인을 한 뒤에 담임 목사님께 그들의 이름을 적게 하고 교우들에게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케랄라 고산지역의 교회에서 십여 명의 아이들이 목사와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여 한 동안 그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였다.
마니푸르 느구르떼마을의 어린이들 십여 명이 목사와 선교사가 된다고 하여 그들을 위한 기도 또한 계속하였다.
카다파 기차역 뒤편에 와스데브뿌람교회의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한 동안 열심히 기도하였다.
2014년, 인도에서 쫓겨나올 무렵에는 와이에스알나가르의 희망공동체 아이들의 꿈 이야기를 귀에 담아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서 로칼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사립영어학교로 전학시키기도 하였다.
인도에서 나온 뒤에 다른 지역 아이들의 소식은 거의 들을 수가 없어 차츰 잊어 버렸다. 그러나 희망공동체 아이들의 소식은 들을 수 있어서 그들의 꿈을 붙잡고 기도하였다. 특별히 목회자가 되겠다고 한 6명의 아이들을 위해서 면면히 기도하였다.
작년 10월에 8년 만에 비자를 받고 인도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꿈을 지원하고 있는 아이들의 신앙상태와 소명과 봉사가 어떤지 궁금하였다. 이미 소문으로 데이빗은 전문학교에도 가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하여 페인트칠을 하느라 주일 성수도 제대로 못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레 접었다. 그러나 다른 두 아이는 신학교에 들어갈 자격이 될 것이므로 그들의 신학교 진학을 격려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희망공동체에 도착한지 사흘 만에 데이빗에 대한 소문이 잘못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는 이미 방통으로 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교회에서는 어린이교회학교 교사 직분을 맡아서 마리아와 함께 충성 봉사를 하고 있었다. 데이빗이 최선을 다하여 섬기며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은 나를 감동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신학교 지망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그들이 23년에 4년제 정식신학대학교인 ACTC에 입학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모세는 정식 학사과정에 있어서 24년 5월 졸업이므로 24년 여름에 3년 과정의 신학대학원 입학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모세는 24년에야 진학이 가능하므로 제치 두고 나머지 두 아이는 23년에 신학대학교에 들어가려면 22년 말에 다이어시스의 신학생추천위원회에서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들뜬 나머지 쉽게 생각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추천위원회 회장님께 마리아와 데이빗을 추천해달라고 청하는 공식문서를 보냈다.
그런데 답변은 “NO” 이었다. 우리 희망교회가 소속되어 있는 시찰에서 1명만 신학교에 추천할 수 있는데 지원자가 많고 우리 아이들은 신앙의 연조가 짧아 그들의 신앙이 검증되지 않으므로 함부로 추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의 십여 년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NO”는 다른 추천 대상의 아이들은 3대, 4대, 5대 조상부터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검증이 되지만 우리 아이들은 자기 당대의 신앙인이므로 검증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치면 실로 우리 아이들은 그들의 추천을 받기 어려울 터였다. 그들의 답변에 항변을 하며 우리 아이들의 신앙은 내가 검증하였다고 말했지만 통하지가 않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우리 아이들이 추천에서 제외되면 다른 신학대학교로 보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당장에는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마리아를 어린이교회학교 교사로 재임명하고 공부방아이들의 상담교사로 채용하기로 하였다. 데이빗은 그의 신앙을 검증하고자 하는 나의 속셈을 알았는지 우리가 제안하는 희망공동체의 직책을 맡지 않고 페인트 공으로 계속 일하겠다고 하였다. 몹시 서운하였지만 강제로 봉사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포기하였다.
마리아가 우리의 직원으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되어 노회가 운영하는 여자 전도사 과정에 입학하여 공부하도록 차출되었다. 나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책임자를 거듭 설득하였지만 그는 마리아가 전도사 과정에서 공부를 해야 그의 신앙이 검증되면 나중에 신학대학교 입학 추천서를 받는 것이 용이하다며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지도자들과 부딪힐 수가 없으므로 속이 아프지만 마리아를 하나님의 손에 내려놓았다.
데이빗에 대하여도 안타깝지만 하나님의 손에 내려놓았다.
23년 5월 마리아는 성경학교로 떠났고 데이빗은 교회학교 교사직을 그만 두고 페인팅사업에 몰두하느라 주일예배조차도 제대로 드리지 않았다.
목회자를 꿈꾸는 아이들의 꿈을 사기 위하여 노력한 10년의 세월이 무참하였다.
11월 중순 희망공동체 방문한 뒤 마리아와 데이빗 일로 인하여 심령이 상하였다.
마리아를 성경학교로 데려간 리더가 ‘마리아가 내년에 성경학교 수료 후에 목회자가 없는 교회에 전도사로 파송하겠다.’고 나에게 자랑스럽게 말하였던 것이다. 나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교직자 임명권을 가진 분의 뜻을 거슬러 말을 하는 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희망교회학교 전도사로 임명하여 그가 영어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 뒤에 4년제 신학대학교로 보낼 계획을 마음속에 조용히 담고 있어야 했다.
더 속이 상한 것은 데이빗 때문이었다.
그가 방통 학사과정에 입학해서 공부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가 페인트칠 작업을 그만두고 길거리에서 스낵장사를 시작한 뒤부터 주일 예배에 조차도 잘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 가슴이 아릿아릿 아파왔다.
내가 지난 11월, 희망공동체에 머물고 있는 동안 그가 이전과 다르게 봉사 프로그램에 얼굴을 전혀 내밀지 않아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가 장사를 시작한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일반적이라면 가난한 청년이 먹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야 하건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10년 전에 자발적으로 찾아와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는 그의 꿈을 키워주고자 학교를 사립 영어학교로 전학시켰다. 어렵고 복잡한 가정사로 인하여 그가 투션 클래스에 나오지 않을 때도 계속 지원하였다. 그 때문에 희망하고 절망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들어 우울해졌다. 무엇보다 염려되는 것은 가난한 그가 돈을 버는 맛을 알았다는 것이다. 돈 버는 재미에 주일예배조차 빠지는 그를 누가 설득하겠는가? 부자를 꿈꾸는 그에게 십년 동안 꿈꾸어온 목회자의 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를 생각하며 상심에 빠졌다.
나는 그에게 믿음의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나님과의 첫 약속을 기억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내 기분과 감정대로 편지를 쓰고 싶지 않아 미루고 또 미루었다. 기도하고 또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미루는 중에 잊어버렸고 잊어버리니 느슨해졌다. 그가 복이 있으면 첫 사랑을 회복하고 그 길로 갈 것이요, 복이 없으면 아무리 말려도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 것이니 안달하지 않기로 하였다. 마음이 차분해지며 유리바다처럼 잔잔해졌다.
오늘 새벽, 희망교회 칸 목사님으로부터 4개의 카톡이 잇달아 들어왔다.
마리아와 데이빗에 대한 놀라운 소식이었다.
선생님!
푸쉬파 비숍이 마리아를 신학 연구를 위해 4년제 정식신학대학교인 ACTC에 파견한다는 명목으로 최종후보로 선정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번 주 12월 8일에 BTh 과정 입학시험을 치룰 예정입니다.
선생님! 마리아와 그의 시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꼭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선생님께서 작년 말에 마리아가 성경학교에 들어가기 전, PROK에서 보낸 추천장으로 마리아와 데이빗을 신학대학 지원자로 추천해주셨습니다.
데이빗이 마리아가 성경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나 봅니다.
그는 자기도 하루 속히 신학공부를 하고 싶다며
푸쉬파 비숍에게 자기를 신학교 지망생으로 추천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목사가 되고자 신학교에 지원한다는 사실을 선생님께 알리고 싶어 합니다.
선생님!
데이빗이 스낵장사로 돈에 눈이 먼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년에 추천받지 못한 것에 실망하고 갈등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제 방통대학교 학사과정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빨리 신학대학교에 입학하길 원합니다.
그의 신앙고백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목회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하는 의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선생님!
그의 기도가 속히 응답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칸 목사의 카톡을 읽으면서 데이빗에게 혼자 절망하며 실망하며 슬퍼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의 달라진 태도와 변화, 흔들림의 원인과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흔들리지 않고 이루어지는 꿈은 없다!
꿈은 흔들리며 이루어진다!
꿈은 흔들리며 길을 간다!
2023년 12월 5일 화요일 묘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