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마라톤 경기를 보면 각종 해프닝을 찾아볼 수 있다.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25명의 주자 중 대부분이 페이스 조절 개념이 부족한 터라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전력질주 하다 1Km를 지나자 마자 기권하고 말았다. 제2회
초기의 마라톤 경기를 보면 각종 해프닝을 찾아볼 수 있다.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25명의 주자 중 대부분이 페이스 조절 개념이 부족한 터라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전력질주 하다 1Km를 지나자 마자 기권하고 말았다. 제2회 파리 올림픽에서는 줄곧 선두를 달리던 미국 선수가 결승점에
골인을 하니 경기는 이미 끝나있었고 그를 맞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워낙 복잡한 코스라 선수들이 제각기 엉뚱한 코스를 달린 것이다.
줄곧 일등을 한 그 선수의 기록은 우습게도 4시간 10분대였다. 정작 우승을 차지한 사람은 파리의 빵집 배달원인 테아토였다. 동료 두 명과
더불어 출전한 그는 단지 이 생소한 경기를 내기의 수단으로 삼아 출전한 것이었다. 승리하는 사람 대신 열흘간 빵 배달을 해주는 조건이었다. 파리
대회와 마찬가지로 만국 박람회의 부대 행사로 전락한 3회 세인트루이스 대회는 기록 저조가 심했다. 이전 두 대회의 기록은 현재 기록에 비해 훨신
저조했지만 두시간 대를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대회에선 놀랍게도 3시간 28분 35초가 우승 기록인데, 36.5도까지 수은주가
올라가는 극심한 무더위가 그 원인이었다. 우승자인 힉스는 결승점을 1Km남기고 코치가 건네준 일종의 흥분제인 스트리킨 알약을 먹고 라스트
스퍼트를 했던 것이다. 한편 미국의 로쯔는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15Km지점에서 앰뷸런스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가 탄 앰뷸런스가 엔진
고장으로 멈췄을 때, 정신을 차린 로쯔는 다시 뛰어 결승점을 통과했지만 아마추어 자격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런던 올림픽에서도 웃지 못할 해프닝은
계속되었다. 결승 테이프를 끊은 것은 이탈리아 선수 도란도였다. 흥분제 주사를 맞고 능력 이상의 실력을 보였던 그는 결승점을 300m 앞두고
거의 정신을 잃게 됐는데,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진행요원의 도움을 받아 거의 기다시피 해서 결승점을 통과한 것이다. 하지만 2위로
골인한 미국측의 항의가 받아들여져 도란도는 실격 당하고 말았다. 한편 파리 올림픽에서 공식 마라톤 코스의 길이가 확정된 이후보스톤 육상협회
관계자들도 올림픽 기준에 맞추어 1924년 보스톤 코스를 조정했는데, 몇 년 후에 그 코스가 161m가 짧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세인을 당혹케
만든 일이 있다. 이는 즉시 수정되었고 보스톤 마라톤의 공식 풀코스 기록은 1927년부터 인정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