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숙 선생네 강아지 고놈 영리하게 생겼네. 문득 떠오르는 몇 가지 생각들을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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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개타령
오늘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라디오의 국악 프로그램에서 오랜만에 김용우가 부른 <통영 개타령>을 들었다.
개야 개야 검둥개야
가랑잎만 달싹해도 짖는 개야
우리 님만 오시거든 짖지를 마라
멍멍 멍멍 짖지를 마라
개야 개야 누렁개야 개야 개야 누렁개야
울타리만 버석해도 짖는 개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슬근 살짝 오신 임을
개야 개야 누렁개야
짖지를 마라 짖지를 마라
멍멍 멍멍 짖지를 마라
내 생각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때 9권짜리 대하소설을 썼는데 민요를 채집하는 과정에서 이 노래도 녹음했다. 문학 인생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하고 원고지 1만 5천 장을 썼으나 나를 선택한 출판사에 큰 손실을 입히고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그 뒤 그 책을 가끔 들여다보았는데 내용이 괜찮아 문득문득 억울했다. 내 인생에 억울한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든 때문인가. 대접 받지 못한 대하소설도 이제는 억울하지 않다. 인생에 아무것도 억울한 게 없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젊은 녀석 하나이 운전하는 차가 내 차 앞으로 끼어들었고, 나는 마음이 편안한 채로 김용우의 창을 따라 부르며 혼자 웃었다.
어머니의 자장가
여섯 살 아래 아우를 낳았을 때 어머니가 자장가를 부르며 아우를 재웠다.
금자동이 얼싸동이 장군동이 박사동이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쌔근쌔근 잘도 잔다
멍멍개야 짖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잔다
꼬꼬닭도 울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잔다
그때 나는 어린 시절 들었던 것임을 발견했던 기억이 있다. 분명히 단조로운 4.4조의 멜로디와 ‘멍멍개’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어머니가 저렇게 나도 재웠구나, 인식했다.
한참 세월이 지나 딸아이를 낳았을 때 나도 이 자장가를 부르며 재웠다. 그놈 위에 첫애를 잃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금지옥엽처럼 키웠다. 1년 반 만에 동생을 본 뒤에 딸애는 엄마 곁에 못가고 내 팔을 베고 잤다. 딸애가 잠들었나 안 들었나 확인하기는 쉬웠다. ‘멍멍개야 짖지 마라’ 자장가를 몇 번 부르다가 슬쩍 가사를 바꿔, ‘코끼리야 춤추지 마라, 개구리야 웃지 마라’ 하면 딸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 코끼리 아니야. 개구리 아니야.”
하며 울며 투정을 했다.
잠들면 코끼리, 너구리, 메뚜기 마구 바꿔도 투정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안아다 아이 침대에 눕혔다.
또 한참 세월이 지나고 딸애가 아들을 낳아 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때 아이 아비가 바빠서 닷새에나 한 번 집에 오는지라 아기를 거의 우리 집에서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딸애가 아기를 재우면서 멍멍 개야 짖지 마라, 그 자장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가사도 음조도 그대로였다. 며칠 뒤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외손자 녀석을 그렇게 재워 보았다.
외손자 녀석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였다. 할아버지와 잔다고 고집을 피워 내가 데리고 자는데 잠투정하다가 문득 말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멍멍개야 불러주세요.”
그래서 그 자장가를 불러 재웠더니 뒷부분은 자기가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놈 어미가 해 온 방식이 그것이었다. 자장가 전반부를 부르고 아이 엉덩이를 툭 건드리면 고놈이 후렴을 불렀다. 멍멍개야 짖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잔다 꼬꼬닭도 울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잔다.
세상에 별일이었다. 자기를 재우는 자장가를 자기가 부르는 꼴이었다.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아가면 아이는 후렴을 대여섯 번째 부르다가 혀가 꼬부라지고 끝내 잠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방식처럼 코끼리나 개구리를 끌어올 필요가 없어요.”
나는 딸의 말을 듣고 그 기발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별 희한한 방법이로구나.
일곱 살이 된 외손자 녀석은 요즘 유치원, 미술학원, 피아노 배우느라 바빠서 어쩌다 한번 외가에 와서 자는데 잘 때 나에게 파고든다. “멍멍개야 불러주세요.” 하며.
딸아이의 기발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며칠 전에 딸네 식구가 와서 자는데 외손자 녀석이 동화책을 읽다가 혀가 꼬부라져서 잠드는 것이었다.
딸아이가 내게 말해 주었다.
“아이한테 ‘네가 어렸을 때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서 재웠으니까 이제 네가 읽어서 엄마 재워 줘.’했어요. 처음에는 더듬더듬 읽더니 이제 잘 읽어요. 읽기를 저절로 훈련 시켰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셈이지요.”
과연 그렇구나 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 시절 개의 기억과 장 그르니에
며칠 전 신문에 ‘나 때문에 개가 병들어 죽었다’고 탄식하며 주인이 자살했다는 토픽 뉴스가 실렸다. 나도 옛날에 내 몸처럼 사랑한 적이 있다.
열네 살 때 아버지가 진도에 출장 가서 순종 진돗개 한 마리를 얻어오셨다. 나는 그놈을 어른들 몰래 신문지를 깔고 방안에 들여 재웠다. 시골의 한데는 추우니까. 그 개는 15년을 내 곁에서 살다가 늙어서 갔다. 영특하고 충성스러워서 3백 미터 먼 거리에서 내가 휘파람을 불어도 있는 힘을 다해 달려와 주었다.
어머니는 나를 베트남전에 보낸 뒤 내가 사랑한 그놈(해피)을 보며 시름을 달랬고, 내가 무사하기를 기원하려고 매일 새벽 정화수를 길러 우물에 가실 때 그놈이 앞장섰다. 내가 베트남에서 돌아온 날 반가워서 미친 듯 마당을 뛰며 웃는 듯 우는 듯 소리 지르다가 내게 달려들어 군복에 흙칠을 하고 그러던 녀석이 눈에 선하다.
그 해와 그 다음해 겨울방학, 소설 쓰는 복학생이던 나는 그놈을 다시 신문지를 깔고 방안에 들여 재웠다. 그러면서 그 무렵 신간으로 나온 장 그르니에의 산문 <어느 개에 관한 명상>을 읽었고 그놈은 고개를 들고 나를 들여다보았다.
개의 주인들 애호가들은 개를 위해 특별히 고안해 낸 고유한 언어를 지니고 있는 듯하 다. 또한 그들은 개들에게 말을 건넬 때 그들만의 독특한 말투를 사용하는데 이때 말투라 는 것은 그 말 자체의 뜻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결국 그들은 개들과 그들 사이에서 일 종의 동족성을 발견하기에 이르는데 그러한 유사성은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하 지만 토템 신앙을 지닌 이들은 물론 어린 시절의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그 동족성은 당연 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장그르니에, <어느 개에 관한 명상 86>
좋은 말을 5자 성구로 만들어 놓은 추구(推句)에 ‘犬吠客到門(견폐객도문)’라는 말이 있다. ‘개가 짖어대니 손님이 문에 이르렀는 듯하다’는 뜻이다. 주인은 손님을 기다리고 개가 짖어서 도착을 알린다. 나는 그냥 이 문장이 좋다. 장 그르니에의 글에 나오는 이들처럼 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 다시 개를 키우지 못하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내가 바보처럼 개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젊어서도 아내의 고집을 꺾지 못했는데 이 나이에 감히 어떻게 아내를 거역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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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내일 모레 아침 첫 비행기 타고 북경으로 떠나 일주일 뒤 돌아옵니다.
첫댓글 우리 똥강아지 별이 덕에 선생님의 귀한 글 읽을 수 있어 기쁩니다. 더욱이 선생님의 아주 사적인 육아 일화를 듣는 일은 아주 즐거웠습니다. 사실 저도 그 자장가를 들으며 자랐고, 울 아들에게도 불러주었는데, 따님도 그렇다니 기특하기 그지없네요. / 선생님. 건강히 잘 다녀오시어요. 돌아오실 무렵엔 좀 더 시원해지겠지요.
세대가 틀려서인가요.저도 자장가를 들으며 자라긴 했지만 선생님이 즐겨 부르셨다는 자장가는 금시초문인데요.음이 어떤지..기회가 되면 선생님이 불러주시면 좋을것같아요.헤헤. 자장가로 집안의 기나긴 역사가 한결같이 이어진다니 너무 아름답네요.선생님이 더 멋져보여요. 즐거운 ,유익한 여행되시길 바래요.
[날개님에게] 걱정해 준 덕에 북경답사 마치고 잘 돌아왔어요. 세월이 막 흘러가네요. 김선생 말대로 좀 더 시원해졌어요. 집에 오니 햇바람 난 듯 밤공기가 서늘해졌어요. 가을이 오면 글을 더 많이 쓸까 운동을 더할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도림님에게]대학원 종강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학기에요. 이제 논문학기만 남았지요? 그동안 애 많이 썼어요. 내 강의룰 두 학기나 들어준 것도 고맙고 좋은 소설 쓰라고 몰아댄 건 미안하고. 좋은 결실 거두기 바랍니다.
두학기나 들은 학생 별로 없죠? 영광이예요.정말. 제가 여기 왜 왔나 ..늘 그런 생각뿐이였는데 그래도 선생님이 계셔서 여기까지라도 온거예요. 항상 감사합니다. 언쩨쯤이면 저는 이런 저런 핑꼐대지 않고 선생님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쓰는 소설가가 될까요? 뵙고만 있어도 의지가 되고 든든해요.선선한 날씨에 건강유의하세요. 운동 너무 무리 하지 마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