勸勉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 때에 勸勉의 말씀을 드립니다.
당신이 믿는 그곳에는 救援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쏟을 정성을 그리스도 예수께 돌아와 精誠을 다 하십시오
當身의 靈魂이 救援을 얻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새 삶이 있습니다.
그 새 삶이 永遠히 죽지 않고 사는 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만이 當身을 살리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단의 무리들은 이 세상의 곳곳에 올무를 놓고 있습니다.
산이나 도시에 퍼져 있는 사찰에서 들어오는 수입 되는 곳은 신도들이
스스로 자발 적으로 가져 오는 施主金과 국립공원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入場料를 받는데 그 입장료에는 사찰에 비치한 문화재라고 해서
오래된 부처를 구경을 하고 걷어 들이는 文化財感想料 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원 입장료 중에는 이런 것이 붙어서 싫던지 좋던지 이 돈을 내야
공원 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돈이 적지 않게 많이 있습니다.
이런 문화재 감상료는 모두 사찰에 입금되고 있고
이 돈을 모두 주지가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부처의 생일 때에 종교적인 행사로 걷어 들이는 등 값이라고 해서
한 개의 등을 달 때 마다 얼마의 돈을 내야 하는데 그 돈의 액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돈이 사찰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눈먼 돈들이며 절에 주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돈 때문에 사찰이 부패 되고 많은 부정이 생기고 있습니다.
장소가 좋은 사찰의 주지가 되면 그의 지니고 있는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어느 절에 주지는 부인을 여러 명을 거느리고 살고 있고
슬하에 자식들도 많이 있는 주지들도 많이 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불교가 부패(腐敗) 된지 오래 이며
이것을 단속할 법적(法的)근거(根據)가 없다는 것이 지금의 실태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문화재 감상료의 부당함을 제기 했다가
불교계의 거친 반항 때문에 철회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힘이 있는 자들이 모두 선거 때에 표를 의식(意識)해서 흐지부지 되어
더 이상의 문제(問題)를 제기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돈으로 산속의 중들은 유흥비와 갖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탁발승(托鉢僧)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구걸(求乞)하는 형식으로 먹을 것과 돈을 걷어 들이는 중들이 있었습니다.
이 중들을 일컬어 탁발승(托鉢僧)이라 했는데 수행의 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탁발승(托鉢僧)이 걷어 들이는
물질(物質)과 돈이 사찰(寺刹)에 수입원(收入源)의 전부(全部)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중들과 다른 점은 절대로 결혼(結婚)을 하지 않는 다는 것과
물질에 욕심을 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아래 글중에서)
탁발승(托鉢僧)과 파계승(破戒僧)
글 조 처음
세상은 참 요란(搖亂) 합니다.
산에서 수행을 해야 할 억대 도박(到泊)을 하다가
덜미를 잡혀 世上을 떠들썩하게 합니다.
돈이 좋기는 좋은가 봅니다.
그것도 불교계(佛敎界)에서 지도자(指導者)라고 하는 사람들이
도박(到泊)을 했으니 그럴 만하기도 하지요!
우리는 중들을 복도 偶像崇拜자라고 하지만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사람이 말하기조차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세속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중이 되기 위하여 계율(戒律)을 받는데
그 과정(過程)에서 많은 고생(苦生)을 감내(堪耐)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이 삭발(削髮)을 하기 전에는 백여 가지의 계율(戒律)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는 중이 절에서 주는 계율(戒律)을 어기게 되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속에서 일컫기를 파계승(破戒僧)이 되는데 수행(修行)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 중에서 남녀 간에 결혼이 금지되어 있고 향이 나는 물건과 세상의
모든 것과 단절해야 되는 것이 그들의 계율(戒律)인 것입니다.
세상을 보지도 말고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으며 모든 것이
분별하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그들이 믿는 것이 위로 부처를 믿고 스스로 성불(成佛)을 한다고 하는 것인데
우리는 佛敎의 佛像들을 등신불(等身佛)이라고 하는데
아무 생명력(生命力)이 없고
글자 그대로 부처는 나무토막에 불과 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에 대고 절하고 福을 빌고 福을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존재(存在)자체(自體)가 하나의 죽은 宗敎이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불교(佛敎)의 敎理이고 모두 부질(婦姪)없는 짓이지요!
불교에서 금기되어 있는 것 중에 개고기와 도박과 술과 여자와 담배는
그들의 절대적으로 금기 사항인데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모두 금하지 않고
기호품(嗜好品)으로 즐기기 때문에 불교(佛敎)를 믿는 불자들에게
늘 지탄(指彈)의 대상(對象)들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아세라 목상(木像)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우상이 지금의 불교의 시원이 아닌가 합니다.
그 종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죄악(罪惡)의 온상(溫床)이 되고 있고
그 속에는 잡신(雜神)(마귀(魔鬼) 사단(寺檀))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이 단체들을 이끌고 있는 중들이 도박을 했으니
당연히 세상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중들이 금기(禁忌)상항(常項)인 도박(到泊)을 했으니
말썽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중들도 우리 사회에서 부를 때에 성직자(聖職者)라고 합니다.
오래전에는 지금ㄴ의 부처의 생일날이 공휴일이 아니었는데 어느 불교를 믿는
어느 변호사가 주축이 되어 없었던 공휴일을 만들어서
지금의 부처의 생일을 공휴일 화 했습니다.
그 전에는 우리의 그리스도의 성탄일을 정하고
그 날을 기념하여 공휴일 화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세계만국이 통일 되게 성탄절을 기념했는데
지금의 부처의 생일을 제정한 것은 군사 정권 시절인
박정희 대통령시대 때에 누군가에 의하여
그 법이 제정되지 않니 했나 생각 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군대에 입대하면 군목이 있었는데 지금은 군 대안에 군목과
군승(軍人僧侶)과 군신 (軍人神父)가 생기고 이 제도는
이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나라의 특유(特有)의 제도(制度)입니다.
이 制度를 만든 정권(呈券)은 주 하나님의 진노로 비참(悲慘)하게 쓸어 졌고
제기(提起)불능(不能)하게 만들었습니다.
주 하나님은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偶像)이고
우리는 거기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을 보고 많은 사탄(詐誕)의 종들이 댓글을 달고 가겠지요?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람들 치고는 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중들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돈을 좋아 하겠지요!
그들이 중들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사람들이 입으로 떠들까요?
이렇게 사단의 무리들은 이 세상의 곳곳에 올무를 놓고 있습니다.
산이나 도시에 퍼져 있는 사찰에서 들어오는 수입 되는 곳은 신도들이
스스로 자발 적으로 가져 오는 施主金과 국립공원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入場料를 받는데 그 입장료에는 사찰에 비치한 문화재라고 해서
오래된 부처를 구경을 하고 걷어 들이는 文化財感想料 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원 입장료 중에는 이런 것이 붙어서 싫던지 좋던지 이 돈을 내야
공원 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돈이 적지 않게 많이 있습니다.
이런 문화재 감상료는 모두 사찰에 입금되고 있고
이 돈을 모두 주지가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부처의 생일 때에 종교적인 행사로 걷어 들이는 등 값이라고 해서
한 개의 등을 달 때 마다 얼마의 돈을 내야 하는데 그 돈의 액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돈이 사찰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눈먼 돈들이며 절에 주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돈 때문에 사찰이 부패 되고 많은 부정이 생기고 있습니다.
장소가 좋은 사찰의 주지가 되면 그의 지니고 있는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어느 절에 주지는 부인을 여러 명을 거느리고 살고 있고
슬하에 자식들도 많이 있는 주지들도 많이 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불교가 부패(腐敗) 된지 오래 이며
이것을 단속할 법적(法的)근거(根據)가 없다는 것이 지금의 실태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문화재 감상료의 부당함을 제기 했다가
불교계의 거친 반항 때문에 철회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힘이 있는 자들이 모두 선거 때에 표를 의식(意識)해서 흐지부지 되어
더 이상의 문제(問題)를 제기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오는 돈으로 산속의 중들은 유흥비와 갖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탁발승(托鉢僧)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구걸(求乞)하는 형식으로 먹을 것과 돈을 걷어 들이는 중들이 있었습니다.
이 중들을 일컬어 탁발승(托鉢僧)이라 했는데 수행의 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탁발승(托鉢僧)이 걷어 들이는
물질(物質)과 돈이 사찰(寺刹)에 수입원(收入源)의 전부(全部)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중들과 다른 점은 절대로 결혼(結婚)을 하지 않는 다는 것과
물질에 욕심을 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성(精誠)을 쏟을 것이면
주 하나님께로 돌아와 주 하나님을 섬기면
모두 천국(天國)에 들어 갈 터인데 무척 안타깝습니다.
많은 중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신학을 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주의 종으로 목회(牧會)를 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잘했다고 했고 전혀 개종(改宗)함에 있어 후회(後悔)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기도 하면서 회개 하고 부처에 정성(精誠)을 쏟는 것처럼
주 하나님을 섬기면서 복음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파계승이 예전에 탁발승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모두 버리시고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주 하나님께서는 파계승(破戒僧)이신 당신의 영혼(靈魂)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영혼(靈魂)을 거두어 주실 것입니다.
Giovanni Marradi - gypsy e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