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4,토요漫筆/ 꼴까닥 그날까지 /김용원
오래 전 이름이 알려진 모 래퍼가 부모가 진 빚을 갚아달라는 말에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것 가지고….”라는 투로 말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산 일이 있었다. 그 반면 한쪽 가십란에서는 중국의 유명 배우가 8,1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였으면서도 한 달 용돈이 겨우 11만원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이 두 에피소드에서 대번 같은 연예인이라도 그 격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느끼게 했다. 이를 두고 품격이라고 하는구나! 즉 품질과 격조에 수준 차이가 있다는 말이겠다.
그 가십란을 훑어보면서 미국의 스포크 박사를 떠올렸었다. 육아혁명을 일으켰던 그는 육아서를 5천만 부나 팔아 엄청난 인세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그가 육아서에서 아이들을 자유방임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자신도 자유방임한 결과로 말년에 그의 아내 모건으로 하여금 ‘스포크박사 구원기금’을 모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평소 사치스러웠던 데다, 그 뒤 늙음이 찾아왔을 때 특식과 특진, 특별 마사지로 당시 돈으로 매월 1만 달러씩 의료비를 지출하여 탕진한 결과였다.
그는 말했다. 아이들이 뭣엔가 열중하여 밤늦게까지 잠을 안 자더라도 억지로 재워서는 안 된다. 제멋대로 내버려 두다 보면 스스로 깨우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야만 칸트가 되고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된다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가지 일에 정신이 팔려 남의 가게에 들어가 새장을 갖고 가는 칸트, 지네며 버러지들을 해부하며 그려내는 지저분한 다빈치의 후유증에 대해서는 되레 그들의 천재성을 인정하여 참아주고 지켜봐줘야 한다는 투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크 박사가 거론한 칸트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 두 천재들은 성장기에 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극기능력을 충분히 갖추도록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 다만 재수없이 천재로 태어났을 뿐이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경우, 어렸을 때 너무나 소극적이고 우울한 아이였다. 그때 부모 대신 그를 맡아 키우고 있던 할머니는 다빈치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이렇게 속삭여 주었단다.
“스스로를 다듬어라.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난 너를 믿는다.”
그 말을 죽는 그날까지 염두에 두고 실천하려 노력했다 한다. 칸트 또한 당시 대표적인 경건주의의 도시였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철저히 경건주의적 교육을 받았다. 칸트가 스스로 회고하고 있듯이, 그의 어머니 안나의 정직하고 경건한 삶의 모범, 그리고 평범한 마구장인이었던 아버지 요한 게오르그 칸트의 부지런함과 덕망 있는 인품의 경건주의적 삶의 태도는 어린 칸트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었다고 한다. 그렇도록 칸트와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스포크 박사가 주장한 것처럼 자유방임 상태로 자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절제의 성장과정을 거쳤으므로 인류사에 커다랗게 공헌하고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발자취를 남겼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예로 든 주윤발은 가난으로 중학교 중퇴 후 행복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품성이 자라고 자라 결국 많은 팬과 시민으로부터 존경 받는 일을 해냈다. 반면 모 래퍼는 초등학교 졸업 후 열세 살에 상경하여 그 또한 숱한 고생을 감내해 낸 건 같다. 그러나 그의 삶의 자세는 주윤발과 달랐다. 내가 번 돈 내 맘대로 쓰는 데 왜 너희들이 시비야, 하는 조였다. 즉 품성적 덕목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 스포크처럼 자유방임적이었다. 그리하여 이름과 재물을 얻자 그는 외제차 7대를 사서 여봐란듯이 과시했다. 말인즉 “내가 이러는 것은 허세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것”이라고 변명조의 말을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었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없다면 그건 곧 죽음의 질주에 불과하다. 모든 기계에는 제어장치가 필요조건이듯 우리에게도 제어장치가 필요하다. 그건 바로 절제정신이다. 굳이 극기정신까지는 필요없다. 그저 알맞고 걸맞게 행동하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절제정신은 어렸을 때, 가속행동이 체질화되기 이전에 제어능력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 더불어 나이가 들었더라도 죽는 날까지 절제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또한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 본다. 자식들이 “엄마 아빠가 애써 번 돈이니까 다 쓰고 가세요.”라고 하더라도 그 말만 믿고 스포크처럼 자신을 ‘자유방임’했다가는 막판에 굴욕적인 삶으로 마감될 수 있다. ♣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