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8,토요漫筆/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찌 하리오 /김용원
친했던 초등학교 동기 중 하나가 옛 또래들의 근황을 알려왔다. 2,3일에 한 차례 꼴로 만나 식사도 하고 여기저기 놀러도 가고, 그렇게 보낸다 했다. 문득 그리움이 몰려들면서 그들에게 끼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하지만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그들은 충청도 뻐꾹새 우는 고향마을에 살고 나는 강원도 감자바위 밑에서 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거의 반나절을 가야 하고, 차를 몰고 간다 해도 굼벵이운전 타입인 나로서는 적어도 세 시간은 족히 걸릴 거여서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곳에 살거나 가까이 산다고 해서 그들과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자마자 마음머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옛날 어렸을 때도 난 혼자 있길 좋아했다. 혼자의 세계에서 혼자 빠져 허위적거리는 걸 좋아했다. 학교 갔다 오면 뒤꼍 대나무밭 속에 만들어놓은 내 아지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한켠에 아카시아숲이 있었는데, 그곳에도 아지트를 만들어놓고 혼자 있곤 했다.
잠도 여려서부터 혼자서 자야 편했다. 혼자 자다가 가위가 눌려 힘들었던 때가 많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결혼 후에도 짝꿍과 반 백 년을 살아오면서 같이 한이불을 덮고 잔 회수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혼자 누워 혼자 상상에 빠져있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고, 그러다 어느 순간 일어나 ‘두시럭’을 떤다. 아닌 밤중에 클래식기타를 친다. 새벽 한두 시에 전등 모두를 켜놓고 책을 읽는다. 또는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다 잠깐 누웠다가 정확히 5시 반이면 일어나 주방에 나가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이른바 내 주특기인 반숙에 야채비빔밥이다.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나눠먹고,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라는 도움말을 지키려 노력했고, 대체로 아침식사만은 철저히 지켜온 편이다. 이때만은 짝꿍의 도움을 철저히 거절하는 편이다.
그 습관은 늙어버린 지금까지 여일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그런 중에 아이를 만들어낸 걸 보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어쨌든 이런 나와 살아준 짝꿍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찌하리오.
그러저러한 생각 끝에 각자의 삶에 대한 자세를 인정하고 관여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에 귀결되고 만다. 그들과 만나 술잔을 나누며 담소를 즐기는 거 참 좋다. 그러나 그러는 일은 그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면 내 적성에 맞는다. 만약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규칙적으로 만나야 한다면 나는 이내 질려버릴 것이다. 희희낙락거리며 여행을 즐기는 것 참 좋다. 그러나 그 회수는 일 년에 한두 번으로 족하다. 그 회수를 넘어서면 난 이내 질려버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빠질 것이다.
그게 나다.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찌하랴! 짝꿍은 그런 나를 두고 이렇게 정의를 내려주었다. “원래 고독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난 고독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할 뿐이다. 만약 죽음까지 혼자 죽을 처지가 못 되면 난 결코 죽지도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일상적 패턴 자체가 혼자 죽는 연습과정일 수도 있겠다. 마치 애지중지 기르던 개가 늙어 죽을 때가 되면 주인 몰래 어디론가 사라지듯이.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