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서는 하나님을 매우 자비롭고 은혜로운 분으로 묘사하기는 하지만 반대로 격노하시기도 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강조되어 있다. 이점들을 조화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잠시 성서를 떠나 스피노자의 관점을 빌리고자 한다.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에덴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묘사한다. 직관적으로 생각할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그런 과일을 만들어 가지고 인간을 시험하고 벌을 내리실까라는 의문을 가지는데, 스피노자는 이렇게 답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벌을 내리시기 위해 선악과를 먹지 마라고 한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을 때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가 나빠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는 자신의 일관된 속성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뿐이며 무언가를 해롭게 하거나 편익을 더 많이 제공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속성을 잘못 이해하여 행동할 때, 관계가 나빠진다는 진리를 드러낸 것이라는 뜻이다. 스피노자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으나, 그 말의 속 뜻은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속성을 유지한다라는 뜻이다. 이에 괸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오직 사랑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의 관점으로 대하셨다. 이 사랑의 관점은 사랑으로 대하는 모든 대상이 자신과 하나됨을 인식할 때, 완전히 가능하게 된다. 대상이 나와 별도라는 관념은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하루 종일 다니다가 집에 들어온 사람의 발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그 사람은 자신의 발을 미워하지 않는다. 깨끗하게 씻어서 자신이 하루종일 무사히 다니게 해준 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전달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은 대상을 전체의 부분으로 나와 동일시할 때 저절로 사랑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나의 상황을 대상으로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지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이 경우, 농부: 몹시 기다리던 비가 내리니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가 보다. 일용 노동자: 오늘 일 못나가면 양식이 떨어졌는데 굶어야 되나, 하나님이 자식도 안 키우냐 왜 나를 미워해! 이때 스피노자가 나서서 설명한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만일 인간을 사랑하거나 미워해서 어떤 일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타의 원인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결코 신일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오직 자기 원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말은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들린다. 사실 성서에도 그런 말씀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 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주신다.(마5:48) 그러나 그와 같은 하나님을 단순히 자기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속성의 표현 자체를 사랑이라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에 의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적인 사랑이다. 어떤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직관은 그 대상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해석에 따라 다음에 전개될 일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변치 않는 사랑의 관점으로 직관하고 사물을 바라볼 때, 우리 역시 사랑으로 사물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