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찌해야 할까? (로마서 7:18-25)
나는 어찌해야 할까?
만물의 영장답게 사람은 세상 속에서 아름다운 일과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대단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가까이서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보아라. 한편으로는 그 숨겨진 진면목이 샅샅이 드러나면서 실망스러운 대상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정직하게 질문해봐야 한다. 이런 질문을 회피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자신을 적당히 합리화하지 말고, 끝까지 진지하게 정직한 질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대면해 보아야 한다. 악을 극복하고 이겨가면서 끝까지 선을 실천할려는 선악간의 싸움을 치러 보아야 자신의 모습이 파악이 된다. .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철저히 선을 행할려고 발버둥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하고 있는 절망적인 자신의 모습에 놀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옳은 길을 찾으려고 발버둥치며 살았는데,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 안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 “나는 어찌해야 할까?”
악 - 적당히 선하면서, 적당히 쉽고 편한 길을 추구하는 성향
바울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악을 공공연하게 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하니 선하지 못한 내면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악이 무엇일까? 인간은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계속, 그리고 끝까지 선을 순전하게 붙잡으면서 행하기를 너무 힘들어 한다. 그래서 요령을 피우고 적당히 타협한다. 선의 모양은 갖춰가되, 좀더 쉽고 편한 방법을 찾아간다. 선한 의지는 있는데, 힘든 것은 피하고 쉬운 것을 선택하고 싶은 유혹에 끌리는 것이다. 선한 의지를 갖고 선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는 수고하고 애쓰는데, 결국은 적당히 쉽게 하라는 유혹에 넘어가면서 선한 의지는 광탈당하고 형식적으로만 선을 행하고, 마음 중심은 쉽고 편한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악하다고 탄식하는 것이다. 선하다는 모양은 내지만, 마음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결국은 악한 죄의 권세에 굴복하는 죄인의 비참한 모습인 것이다.
누구를 주인삼을 것인가?
하나님은 사람이 수고하면서 선을 행하는 과정 중에 행복을 찾도록 만드셨다. 선을 행하다가 이런 저런 어려운 과정에 부딪히더라도,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 하나 이겨가는 과정에서 더욱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힘으로 그런 과정을 끝까지 지켜갈 수 없다. 선한 길을 걷다가, 언젠가는 자기 안의 악한 죄의 권세에 굴복하면서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기 때문이다. 쉽고 편한 길을 받아들이고 타협할려는 속성을 이겨내지 못하면 행복을 지켜갈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만, 자기 내면에 붙어 있는 심각한 악을 ‘스스로는’ 이겨낼 수 없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특별히 선한 일을 행하는데서는 더욱 그렇다.
죄의 권세를 철저히 이기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자기가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악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죄의 권세를 이기셨다. 내 선한 의지를 예수님께 의탁해야 한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탄핵하고,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자기 자신을 예수님의 뜻에 조정하고 복종하며 살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죽여야 가능한 일이다. 이 지점이 가장 어렵지만, 죽으면 사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죄의 권세를 발견하고, 나를 내려놓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 진정으로 "나는 어찌할까?" 가슴을 치며 자기를 내려놓고 죄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열린다.
주님과 철저한 주종 관계가 되면, 주인이신 예수님이 내 속에 붙어 있는 악을 이기게 해주신다. 어려운 일로 마음이 심란해질 때도, 주인되신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분이 원하시는대로 순종하면, 비록 순종의 과정은 힘들지만. 점차 좋은 길이 활짝 열린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선포하며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은, 주님의 성안에 거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성안에 거하는 사람에게, 죄의 심판과 저주의 화살이 미치지 못한다. 모든 위험에서 건져주시고, 모든 것들을 다 탕감해 주시는 은혜가 임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한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다. 예수님은 나의 힘이고, 나의 미래고, 나의 영원한 생명이다."라고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짐하기를 축복한다.
적용 나눔) 선을 행하되, 끝까지 행하면서 달콤한 행복을 누린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모습이 불행하거나 힘든 것으로 보이기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으면 나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