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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하얀 도화지 위에 밑 그림을 스케치 하듯 새 마음으로 출발합니다. 독일이 낳은 시인 괴테는 말하기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중국 노자는 "천리 길도 발 밑 한 발짝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출발은 설레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 도화지위에 누구와 함께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43:19......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새 일을 행하리라!.... 자신감을 가지고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어찌 이런 담대함이 있을까요?...... 이런 외침은 실수하지 않으신 하나님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하실 때 빛이 존재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2023년 출발점 하얀 도와지에 밑그림을 그려 가면 됩니다.
미국 부통령을 지낸 험프리는 인생의 말년에 암과 투병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항상 새 출발의 정신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암과 투병하면서도 웃음과 농담을 잃지 않았습니다. 험프리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습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은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다. 역경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자극일 뿐이다. 역경은 '약간 시간이 걸려야 해결되는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은 예배 때 축도만을 기다린다. 예배가 시작될 때 가슴 설레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나는 아직 한 번도 고별연설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새 출발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 딛는 사람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주향성도여러분!! 새 출발을 하나님 손 꼭 붙잡고 출발점에서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2023년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첫 예배를 드리면서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며 2023 신앙의 첫 출발을 시작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17절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씀과 한 쌍을 이루는 말씀이 20절 하반절에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두 절 말씀이 양 날의 검처럼 우리주향성도가 말씀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17절 다음에 18-20절 세 절 말씀을 묵상하면 “화목”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그만큼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화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2023년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단어가 “화목”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화목하지 못하면 아무리 성공한 것 같아도 결국은 실패자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정에 아내와 남편이 화목하지 못하면 아이들과 친척이 모두 고통을 당합니다...... 이혼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사회기초가 붕괴되는 조짐을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면서 그 직장의 상사와 화목하지 못하면 그것처럼 괴롭고 힘든 일이 없습니다. 나라 정치도 화목하지 못하고 늘 갈등과 반목이 가득하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새해가 바뀌였지만 세계 도처에 전쟁의 고통이 여전합니다. 이것은 나라와 나라가 화목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화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파생되는 결과입니다.
신학자 에밀 브루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독교적 의미에서 죄는 존재 전체를 갈라놓는 분열이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들기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불화하니, 세상에 저주가 임하고, 자연과 관계가 깨어지고, 아내와 남편이 서로 저 사람 때문이라고 죄를 전가하며, 아내는 남편을 평생 섬기는 저주의 관계로 파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에 뼈” 였던 사람이 원수 중의 원수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자연도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서 인간의 땀 흘린 경작의 수고에 반항합니다. 결국 착취와 억압의 관계로 변하여 사랑하는 유일한 동생을 돌로 쳐 죽이는 극악한 죄악이 최초의 살인으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가장먼저 하나님과 화목이 깨어진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비극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세상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직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2022년 지난 한 해의 아픔이 나에게 있었다면 여기에는 근본 원인 있었습니다.....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진정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 있습니까? 18절을 주목하십시오.....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무슨 말입니까? 화목을 시도하신 분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화해의 악수를 청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18절 중간에....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도 화목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 내가 너희하고 화목하고 싶다” 마치 아버지 속을 상하게 하고 집에 나간 자식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외치기를 내가 용서했노라 그러니 돌아만 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성경전체의 메시지입니다.
찬송가 527장 가사를 보면 .......♩♬ “어서 돌아 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감당 못 하리요 우리 주는 날마다 밤새 기다리신다오....” ♪♭
화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이 이 노래 말에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먼저 화해의 악수를 내미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 일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죽음이 앞에 있어도 그 자존심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다가와 손을 잡고 화해 하셨습니다. 만왕의 왕 하나님이 자존심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일4: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사람이라면 먼저 화목의 악수를 내미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화목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화목을 위해서는 한 쪽의 선행적인 희생이 필수 불가결 합니다. 그 희생의 제물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이십니다.
18절 중간절 다시 봅니다......"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19절 상반절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두 절 말씀에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리스도 안에" 화목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까?
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대신하여 죄 없는 분이 죄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죄인처럼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이런 화목의 길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준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미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의 화목 제물에 대한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출20:24....."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레4:35....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어린 양의 기름을 떼낸 것 같이 떼내어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가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바로 이 화목의 제물이 바로 예수님을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고편이고,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실체가 십자가 위에 나타났으니 곳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롬 3: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요일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 같은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화목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2023년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나라를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예수님 처럼 화목을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알프스에 서식하고 있는 개미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프스에 사는 개미들은 참 특이하다고 합니다. 개미 집 속에 불타는 초를 세워놓으면 개미는 몸으로 불을 끄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개미의 몸이 불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미의 몸에 불이타면 ‘키츤스’라는 불연성의 진액이 나와 불이 꺼진다고 합니다.......미물인 곤충 개미도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릴 줄 압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보노라면 불협화음이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마치 불같이 타오르는 갈등고리가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불협화음 현장에 화목의 제물이 될 사람이 필요한 그리운 시대요 그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인으로써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했다면 내가 먼저 가정도, 교회도, 한국사회도 불협화음의 불을 끄는 화목제의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 새옷을 입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화목의 직분을 가진 사람임을 다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8절 마지막을 보면....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사명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0절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라고 했습니다. 즉 대사를 말합니다. 대사는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한 미국대사가 자기 개인을 위해 이 땅에 와 있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도 이 땅에 거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직분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명자의 삶을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 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새해 출발점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산상보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5:13a....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막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이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듯이 녹아질 때만이 가능합니다..... 소금이 녹아지는 것은 마치 화목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 어느 곳이든 서로 서로 화목을 위해 소금처럼 녹아져야 할 것입니다...... 어느 곳이든 모이는 곳마다 사람들과 관계에서 서로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화목해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끼리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화목의 관계가 꽃피워 하나님이 함께 하는 화목의 세상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