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watch?v=sQ2v5FBwDJQ
2023년 10월 15일(주일)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주일설교
레위기 16:1~22 ‘거룩한 삶을 살려면' 새찬송가 266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오늘은 레위기 16:1~22 본문을 중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려면’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어 합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가 SNS 사용경험이 있는 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간관계’와 관련한 전반적인 인식을 평가해본 결과, 평소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대상으로는 ‘직장동료’(40%, 중복응답)가 첫손에 꼽혔습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의 스트레스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30대(50%)와 40대(47.2%)가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불특정 다수의 ‘타인’(22.3%)도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대상으로 꼽혔는데, 다른 연령층에 비해 20대(31.2%)의 일상적인 스트레스 수준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밖에 배우자(15.1%)와 어머니(11.2%), 아버지(9.3%)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50대는 배우자(29.2%)에게, 20대는 부모님(어머니 14.8%, 아버지 16.8%)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특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친구나 직장동료, 지체로 인해 스트레스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스트레스는 자연스럽게 죄를 유발하게 됩니다. 1절에 보니 두 자녀의 죽음으로 스트레스는 받은 대제사장 아론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하다 죽은 아론의 두 아들처럼 아론도 잘못하여 죽게 될까봐 모세에게 속죄일의 규례를 일러주십니다. 7대 절기 가운데 제일 중요한 절기가 바로 레위기 16장이 정하고 있는 ‘속죄일’입니다. 이것은 ‘대속죄일’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16장 34절을 보면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다른 절기들은 대부분 축제의 절기입니다. 그러나 이 대속죄일 만큼은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며 슬퍼하는 날이요, 죄를 속죄 받는 그런 날인 것입니다. 금식의 날이요 회개의 날이요 슬픔의 날입니다. 속죄일의 규례를 주신 것은 죄로 죽어가는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랬습니다. 우리 죄가 너무나 참혹해서 우리의 삶을 파괴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속죄일을 통해서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드림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깨닫게 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각종 인간관계를 통한 상처와 스트레스 및 갈등으로 지은 죄를 하나님께 늘 고백하며 예수님의 보혈로 늘 정결하게 되어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거룩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거룩한 삶을 살려면,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가져와 속죄해야 합니다(1~10절).
대제사장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자신과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가져가야 하는데, 본문 3절에 보니 자신을 위하여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가져가야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을 위해서는 5절에 보니 속죄제물로 삼기 위해서 숫염소 두 마리를 가져와야 하고, 번제물로 삼기 위해 숫양 한 마리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 중 여호와를 위해 제비 뽑힌 염소는 회중을 위해 속죄제로 드려지고, 아사셀을 위해 뽑힌 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지고 광야로 보내집니다. 여기서 죽임당하는 염소는 ‘나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나타내고, 쫓겨나게 된 염소는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구속’을 상징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로마서 8:1~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100%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되려면 오늘 아론이 속죄제를 드리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특별히 아론은 하나님 앞에 두 아들을 심판으로 먼저 보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녀를 신앙으로 잘못 키운 것이 누구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탓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자녀의 영적 상태가 ‘내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당면한 아론에게 처한 죽음 같은 고난이 저주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게 속죄제를 드리게 하시는 기회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믿음의 공동체에서 나의 숨은 죄를 고백함으로 그 죄가 완전히 소멸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있는 내쫓아야 할 부정한 생각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고백함으로 죽임당하는 염소와 쫓겨나게 된 염소처럼 나를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 또한 나의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용서해주심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적용) 내가 하나님 앞에서와 믿음의 공동체에서 고백함으로 소멸되어야 할 숨은 죄는 무엇이며, 내쫓아야 할 부정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둘째로 거룩한 삶을 살려면 피뿌림을 통해 나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11~19절).
대제사장 아론은 먼저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백성을 위해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립니다. 15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18,19절 말씀도 같이 읽겠습니다. 이처럼 대속죄일의 속죄제물의 피는 지성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처소인 속죄소까지 뿌려집니다. 이는 예수님이 흠 없는 속죄제물이 되어 내 죄를 대속하시고,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나의 죄를 자백하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피로 성결하게 해주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내 마음에 뿌리는 것은 나의 부정함을 인정하는 회개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평생에 세 가지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첫째는 죄의 고백, 둘째는 믿음 고백, 세 번째는 사랑고백입니다. 그 중에 첫 번째와 죄의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갈릴리 어촌의 어부였습니다. 그는 처자의 생계 유지를 위해 날마다 배를 띄워 고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던 그날도 베드로는 생계유지를 위해 밤새도록 일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밤에 잡히는 고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눅 5장 5절에 보면 “밤이 새도록 수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밤새도록 수고를 했지만 헛수고 한 것입니다. 날이 밝고 더 이상 고기잡이를 할 수 없는 시간이 되어 이제 그물을 씻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바닷가에 나오셨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예수께서 가시는 곳 마다 언제 어느 때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 날 아침도 일찍부터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갈릴리 바닷가는 소란스러웠습니다.
주님은 그물을 씻고 있던 베드로의 배로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육지에서 조금 뛰기를 요청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주님의 요청대로 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께서 갑자기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에게 고기를 잡기 위해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밤에 잡는 고기는 해가 뜬 낮에는 잡히지 않습니다. 이미 고기를 잡을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이미 밤새도록 그물을 안 던져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던져봐야 헛수고 할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 말은 좋게 해석하면 그의 ‘순종’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사실은 “하나마나 뻔한 일입니다. 밤새도록 수고했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곳에서 무슨 고기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말씀이 정 그러시니 한 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혔습니다.
베드로도 놀라고 보는 모든 사람들이 놀랬을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보십시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기대도 않고 그물을 던졌는데 상상할 수 없는 만큼의 고기가 그물에 걸린 것입니다. 감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 감격의 현장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행동을 보게 됩니다.
눅 5:8절의 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는 고기를 끌어 올리던 손길을 놓고 주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울었다는 말은 없지만 아마 그는 울먹이며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행동에서 약간은 의아스럽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에게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잠깐 배를 빌려서 사용하고 그 댓가로 기적을 베풀어 많은 고기를 잡게 하였다고 생각한다면 베드로는 그저 엎드려서 고맙다고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야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기적의 현장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힘써 수고했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자신의 한계성 앞에 쓸쓸하고 허탄한 마음으로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말씀 한마디에 갈릴리 바다의 수많은 고기떼가 몰려오게 할 수 있는 그분의 능력 앞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깊이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가장 나약하고 연약한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연약함과 나약함’, 그리고 ‘자신의 악함과 죄성’을 깨닫고 솔직히 자신의 ’연약성과 죄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고백이 아닌 은혜 받은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드려야 하는 첫 번째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 어떤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까? 베드로처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의 이 고백이 없이는 주님을 온전히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주님을 만난다 해도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는 한 나그네로 지나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베드로처럼 고백하여야 하겠습니다.
적용)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뿌림을 통해 거룩하게 되어야 할 내 삶의 영역은 구체적으로 어디입니까?
세 번째로, 거룩한 삶을 살려면, 아사셀 염소처럼 가족과 지체의 짐을 나누어져야 합니다(20~22절)
21절~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은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전가합니다. 여기서 ‘아사셀’이란 백성의 죄를 씻고자 취해진 두 마리의 염소 중,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광야로 보내지는 속죄염소를 뜻합니다. 이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보내 죽게 하므로 이스라엘이 범한 모든 죄가 완전히 소멸됨을 나타냅니다. 아사셀 염소는 '버려진 염소'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제사장이 제물에 안수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그 짐승에게 덮어씌우게 됩니다. 이때 아사셀 염소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게 됩니다. 이 제물은 선택된 한 사람에 의하여 예루살렘 중앙 통을 통과하면서 수난의 행보가 시작됩니다. 거리를 지날 때 군중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사셀 염소를 향해 저주를 퍼붓기 시작합니다. 어떤 자는 털을 뽑고 어떤 자는 침을 뱉으며 어떤 자는 돌팔매질을 하기도 합니다. 아사셀은 어느새 피투성이가 되고 맙니다. 마침내 이 염소는 끌려오다시피 하여 요단강 건너편 광야에 버려집니다. 날이 저물 때 피투성이가 된 아사셀 염소는 맹수들에 의해 찢겨 죽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잔인한 광경과는 정반대로 예루살렘에서는 속죄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아사셀 염소는 우리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세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의 이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분명히 알리기 위한 광야에서 외치는 하나님의 나팔이었습니다. 여기서 ‘지고 가는’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죄의 결과인 사망에 깔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하여 그 무거운 죄와 사망을 대신 들어올리시고 그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시어 먼 곳으로 옮겨 치워 버리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에서 확증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에도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도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죄를 대속하시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아사셀 예수님처럼 가족과 지체와 교회의 짐을 나눠져야 합니다. 무거운 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안 지려하고, 혹은 가볍게 지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얄밉게 자기 짐을 남에게 떠넘기고 이리 저리 잘 피해 다니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 6장 2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기꺼이 짐을 지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보면 “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 따라, 예수님을 거룩함을 닮으려는 마음으로 사는 우리들은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음을 인정하고 기꺼이 지고 가야 합니다.
적용) 누군가의 잘못이나 불의를 보면서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침 뱉고 판단하고 정죄하십니까? 아니면 나에게도 그들과 같은, 아니 더 악한 죄가 있는 지를 돌아보며 회개할 뿐 아니라, 그들의 죄의 짐도 내가 짊어지고 대신 회개할 수 있는 그런 자로 살아가십니까?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1:15,16) 하신 말씀처럼 내 인생의 목적, 결혼의 목적,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하는 목적이 거룩함이 되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회개로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가 거룩해지며, 나의 죄를 선포함으로 죄가 힘을 잃고 소멸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사셀의 염소’가 되어 처참하게 죽임당하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되신 예수님의 거룩의 효력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내가 거룩을 이루어갈 때 내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교회공동체 역시 거룩하고 거룩해 짐을 믿습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들의 삶에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