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달교수의 역사칼럼(55)
避將安往
피한들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사람은 살다 보면 자기가 저지른 일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될 때가 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업보(業報)라고 말하여 자기가 지은 만큼 받아야 한단다. 자기가 저지른 일이 잘못이라면 업보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그에 대한 응분(應分)의 책임을 져야 맞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 책임을 지우는 사회 시스템으로 사법적(司法的) 조치가 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를 때는 언제인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라면 이리저리 빠져나가려고 애를 쓴다. 소인(小人)이라면 윤리가 무엇인지,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관심 밖이니까 그렇다고 치부하더라도 대인(大人)을 자처하는 사회지도층은 그래서 안 된다. 대인을 자처할 터라면 떳떳하게 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에도 자기가 저지른 일로 곤경에 처하였을 때, 이를 모면할 방법을 찾으려는 소인이 있고 또 의연하게 대처하여 곤경 중에서도 최후까지 체면을 유지하는 대인이 있다.
금(金)나라의 네 번째 황제인 완안량(完顔亮)은 희종(熙宗)을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에 오른 사람으로 12년간이나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황제로 있는 동안 항상 과거 금(金)이 송(宋)을 공격하여 완전히 무너트리지 않고 화의(和議)한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의 정책은 보기에 따라서는 금(金)의 국위를 선양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목적이 좋다고 하여도 어떤 일을 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는 마음에 품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고통에 몰아넣으면서 남송을 정벌하려는 준비를 진행하였고, 끝내 남송 정벌군을 일으켰다. 그 위에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하려고 전선에 나아가기까지 하였으니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황(戰況)은 그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송군(宋軍)과의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하게 되었고 전쟁으로 고통을 받는 백성들의 원망은 하늘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불만을 품은 세력이 황제가 도읍을 빈틈을 타서 새 황제를 세웠고 결국 다른 사람을 추대하여 황제로 올렸는데, 이렇게 황제에 오른 사람이 금(金)의 5대 황제인 세종(世宗)인 완안포(完顔褒)이다.
전쟁 중에 황제가 두 명인 상태가 된 금(金)이 남송군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장강(長江) 전선에 나가 있는 완안량의 입장에서는 다시 군사를 돌려서 새로 등극한 완안포를 공격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남송과의 전투를 계속해야 할 것인가의 기로(岐路)에 서 있었다.
결국 완안량은 일단 남송을 멸망시킬 수만 있다면 도읍에서 새로 등극한 황제쯤이야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남송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아니, 더욱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 명령을 듣고 죽기로 싸워야 하는 병사들의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다.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기회만 있으면 도망하려고도 하였다. 드디어 사건이 발생했다. 완안량이 장강을 건너 태주(泰州)를 침범하려고 도강작전(渡江作戰)하려고 하는데, 효기(驍騎)장군 고승(高僧)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지휘하는 무리를 유혹하여 도망가려는 사건이 었다.
이 일은 발각되어 관련자들을 모두 참형(斬刑)으로 다스렸지만, 이후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는 초조하였고, 이에 군령을 더 강하게 만들어 발표하였다. “군사(軍士) 가운데 도망한 사람이 있으면 그 영대(領隊)를 죽이며, 부장(部將) 가운데 도망한 사람이 있으면 그 주수(主帥)를 죽이라.”
그뿐 아니었다. 다음날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감히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있으며 사형에 처하겠다고 하였다. 병사들의 입장은 어떤가? 강 건너에는 남송군이 금(金)의 도강(渡江)을 막으려고 잔뜩 준비하고 있는데 제일 먼저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은 죽으러 가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즉, 완안량은 병사들에게 죽음을 강요한 것이다.
금(金)의 도읍에서는 새 황제가 등극하였는데, 전선(戰線)에 있는 황제는 병사들에게 죽기를 강요한 셈이니 도망하여 새로 등극한 황제 편에 서겠다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절서로도통(浙西路都統)인 야율원의(耶律元宜)가 완안량에 반대하는 변란(變亂)하기로 결정하자 많은 사람이 참여하였다. 드디어 새벽에 완안량을 호위하는 병사가 교대할 시간에 바로 변란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주도자인 야율원의가 먼저 그 무리에게 말하였다. “새로운 천자가 이미 요양(遼陽)에서 옹립되었으니, 지금 마땅히 함께 대사(大事)를 거행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온 군사가 북쪽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사, 즉 큰일이란 변란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병사들은 크게 찬성하였다.
다음 날 새벽에 야율원의·야율왕상이 무승군총관(武勝軍總管)인 도극탄수소(圖克坦守素)·명안(明安)인 당고오혈 등과 더불어 무리를 인솔하고 완안량이 묵고 있는 어영(御營)으로 범접해 갔다. 완안량이 어지러운 소리를 듣고 송군(宋軍)이 엄습하여 도착한 것으로 여기었지만 근시(近侍)인 대경선(大慶善)이 말하였다. “사태가 급하니 마땅히 나가서 피하십시오.”
이 말에 변란임을 바로 알고서 완안량이 말하였다. “피한들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스스로 난병(亂兵)과 싸우려고 활을 잡으려 하였지만, 그 전에 난병이 쏜 화살을 맞고 땅에 넘어졌고 난병의 칼날은 그 몸에 꽂혔다. 그래도 수족(手足)이 오히려 움직이자 목을 매어 죽였다. 그를 위하여 진압하려고 효기지휘사(驍騎指揮使)인 대반(大磐)이 군사를 정돈하고 달려왔지만 이미 그가 구원하려 한 완안량이 죽은 상황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완안량은 독재하였고, 혹독한 정치를 하여 잘못한 것이 많았지만 최후에 자기가 도망할 길이 없음을 알고 도망치지 않고 죽었다. 그래도 대장부(大丈夫)의 기개(氣槪)는 살아 있었다고나 할까?
요즈음 정치하는 사람 가운데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기소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기소되어도 요리조리 피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한다. “피한들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하면서 대장부답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다만 아버지가 농지법 위반하여 땅을 샀던 것이 밝혀지자 기소되지 않았는데도 서슴없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여자의원만이 이 진리를 아는 사람 같다. 잘못이나 실수는 저지를 수 있지만, 이것을 알았을 때, 떳떳하게 대하고 책임지는 지도자가 많기를 바랄 뿐이다.
첫댓글 좋은 사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