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1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같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지 않으신다. 우리의 시야는 제한되어 있으므로 전체를 살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모든 것으로 우리를 살피신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반응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마음 안까지 살핀다고 말할 수 있다. 2 엘리야뿐만이 아니라 의를 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코너에 몰릴 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그는 일시적으로 혼자가 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3 엘리야에게 하사엘을 시리아의 왕으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엘리사를 예언자로 기름부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은 엘리야에게 그만한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실제 육성이나 글을 통하여 지시하신 것이라 볼 수 없다. 4 워치타워 법인의 영업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지치는 것을 달래려고 마치 엘리야의 심정을 설명함으로써 그들이 엘리야로 느끼도록 자부심을 갖게한다. 그러한 예언자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오직 그때뿐이다. 그러다가 활동을 멈추면 무활동자로 찍히게 되는 것이다. 5 '베헤못'과 '리워야단'이 나오는데 '베헤못'은 '가축'이나 '소와 양'을 뜻하는 히브리어 '베헤마'(behemah)의 복수형으로 '거대한 짐승'이나 '뭇짐승'으로 불린다. 개역한글판에서는 하마로 표현된다. 리워야단은 오랫동안 여러 학자들에 의해 “악어, 구렁이, 뱀, 돌고래, 고래, 참치, 하마” 등의 자연계의 짐승이나 물고기로 이해되었고, 상징적인 관점에서 “사단, 악, 대적, 이집트의 왕 바로” 등으로 이해되었다.(사 27:1;시 104:26 참조) 6 마치 목소리로 대화한 것처럼 묘사된 내용들은 실제 목소리의 대화가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직접 대화했으나 오늘날에는 그런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꼭 증거가 없으니 어떻게 우긴들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맹목적 믿음을 요구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에 있었다면 반드시 현재에도 동일한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7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란,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의미이다. 진리는 특정 시간이나 특정 장소에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워치타워 종교는 충.슬.종을 특정인에게 적용함으로써 권위를 세우는데 약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의 모든 용어를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 적용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8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의미한다. 나아가 예수께서 친구가 되어주심을 의미한다. 워치타워 종교에서는 연합체를 강조하여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인간은 평소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결코 완전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 146:3)라 노래한다. 9 단 한번도 주나 하나님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다가 여기서 어쩔수 없이 하느님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왜 하느님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을까? 그것은 격언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적용했기 때문에 하늘에 해당되는 인격어가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워치타워가 특별히 내세울 그럴 듯한 가르침이 없기 때문에 이 발음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기독교 교파와 구별시키는 인상을 준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