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놈의 시 / 이승훈
용기도 없고
사랑도 없고
기쁨도 없다
눈도 없고
코도 없다
밑빠진 나날
입도 없다
입도 없다
아아 사랑했던
너의 얼굴도 없고
기차도 없고
다리도 없고
건너야 할
다리도 없고
오늘도 없다
오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시를 쓴다
시를 어떻게 쓰나
망할놈의 시를
쓸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없는 얼굴이
나를 감싸면
없는 해가 생기고
없는 풀이 생기고
없는 시가 생길 테니까
없는 내가 마침내
없는 기차를 타고
없는 너를 찾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걸 믿고
살아온 게
말짱 애들 장난 같고
그런 걸 믿고
살아온 게
망할놈의 시
시 같다!
- 시집『환상이라는 이름의 역』(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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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에 대한 불안감을 이승훈 시인만큼 수시로 느끼고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는 시인도 아마 없지 싶다. 그의 ‘모든 사람이 쓰고 싶은 시에 대해’란 글을 읽고 있자면 시를 쓰라는 건지 말라는 것인지, 시를 왜 쓰려고 하는지, 시가 뭔지 본격적으로 모호해진다. ‘말짱 애들 장난 같은’ 시를 왜 쓰려고 하는지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더구나 난 그 '망할 놈의 시'에 붙여 매일 잡담이나 늘어놓고 있으니. 그럼에도 시인들은 끊기 힘든 마약 같고 신기루 같은 가늠할 수 없는 갈증으로 시를 부여안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황망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승훈 시인은 ‘시의 본질은 없고 절대적 가치도 없고 시라고 명명하는 목소리, 시라고 정의하는 제도가 있을 뿐’이라며, ‘아직도 무슨 시의 본질이니 가치니 진리니 하며 폼을 잡는 시인들, 평론가들, 이론가들을 보면 한심할 뿐’이라며 쏘아붙였다.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시와 비시의 경계도 흐릿하여 도대체 시를 평가할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의 부재가 오히려 시의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의 지론에 의하면 ‘현대시의 역사는 끝나고 현대 시론도 끝났다.’
남은 것은 시에 대한 자의식이며, 본질주의는 철수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제 시론은 철학이고 시 쓰기는 시에 대한 방법론적 회의, 자기 성찰, 자기비판만 남았다고 한다. 시와 비시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에 시를 고집하는 것은 폭력이고 우리 시단엔 그런 의미의 조폭들이 너무 많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시인은 고교시절부터 자신의 괴로움과 고독을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이 ‘망할 놈의’ 시를 쓰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어려서부터 시를 읽고 또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런 고독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한다.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는 이상의「아침」이란 시를 읽었을 때의 충격으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한 시인에게 있어서 삶이란 그저 병드는 과정의 다름 아닌 것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은 오랫동안 하루에 담배를 한 갑 이상 태우고, 맥주도 2병씩 거르지 않고 마시는 버릇이 있다고 들었다. 그 연유를 시인은 ‘불안해서’라고 했는데 시를 쓰는 것도 같은 이유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일이 '28회 시의 날'이라는데, 날이 날인만큼 시인이 말한 '망할 놈의 시'는 일단 지독한 시사랑의 반어적 수사라고 해두자.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