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없는 미용실
달마다 달력에 동그라미 쳤던 날짜가 있다. 하얀 머리 신사숙녀들이 기다리는 경로당에 가는 날이었다. 마당이든 방이든 보자기를 펼쳐는 곳이 미용실이 되었다. 거울이 없다고 일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앞머리를 올려, 뒷머리를 짧게 잘라.” 하면서 서로의 거울이 되어 주었다
부스스하게 왔다가 말쑥하게 간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우리도 어깨가 한 뼘 올라갔다. 사실 이득을 보는 쪽은 우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미용사 자격증을 거머쥔 우리는 대부분이 아이를 한둘씩 둔 주부였다. 취업이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자원봉사도 하고 기술도 익힐 겸 경로당을 찾았다. 알량한 실력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봉사하고 후한 대접까지 받으니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었다.
처음으로 남자 머리를 깎을 때였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 바리깡을 놓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자신 있게 해 보라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이쪽을 자르면 저쪽이 삐뚤고 저쪽을 고치면 이쪽이 올라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사람에게 가위를 넘겼다. 결국 할아버지는 스포츠머리로 변신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경로당을 찾았다. 다시는 안 오실 것 같았던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지난 실수 때문에 두려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머리를 깎아 달라고 했다. 심호흡하며 용기를 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손끝에서 일렁이다 바닥으로 내려앉으면 할아버지 목덜미가 시원해졌다. 서툰 솜씨에도 오래 앉아 있어 준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자 도리어 “미남으로 만들어 줘서 내가 더 고맙다” 했다. 그 후 할아버지는 내 단골이 되었다.
거울 없는 미용실을 운영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하면서 자연스레 경로당 가는 발걸음도 끊겼다. 가까운 식구조차 선뜻 머리를 내놓지 않았을 때 믿고 맡겨 준 그분들을 다시 한 번 찾아야겠다.